돈을 사랑하는 방법
"아빠 자존감은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잖아. 근데 자존심은 뭐야?"
"어? 그러게?"
"아빠가 항상 자기를 사랑하라고 했잖아. 근데 자존심도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 아니야?"
어느 날 목욕 중 큰 딸이 질문을 던졌다. 책에서 비슷한 단어가 나와 헷갈렸던 모양이었다. 항상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딸들에게 항상 말하던 터였다. 하지만 막상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정확히 대답을 하지 못 했다.
"아빠도 확실히 대답을 못하겠다. 아빠가 공부해서 가르쳐 줄게."
그렇게 얘기하고 나는 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가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10살 큰 딸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명확한 차이가 필요했다. 먼저 네이버 사전을 검색했다. 다른 듯 비슷한 자존감과 자존심의 뜻은 네이버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자존감: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
자존심: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
우리가 보통 자존감을 얘기할 때 ‘자존감이 높다, 강하다’ 등 긍정적인 강화의 문장으로 쓴다. 반면에 자존심은 ‘자존심이 상했다’ 등의 타인에 의해 무너지는 마음으로 쓰인다. 하지만 10살 딸에게 이렇게 설명을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뭔가 알 거 같은데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상태? 그렇게 다음 목욕시간에는 딸에게 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를 말해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김우창 교수님의 "기이한 생각의 바다"라는 책을 읽고, 순간 눈이 번쩍 띄었다! 저자가 자존감과 자존심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찾던 그 무언가가 숨어있었던 것이다.
자존감과 자존심의 공통점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둘의 가장 큰 차이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타인의 의식 여부‘이다.
타인의 의식 없이 나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은 자존감이다. 자존감의 순수성은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자신감이나 자부심과 같은 다양한 감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런 열린 마음은 행복의 원천이 된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행복이 자존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반대로 자존심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 타인이 개입된다. 타인을 의식하고 타인의 기준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생각과 상관없이 타인으로부터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사랑을 갈취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이는 곧 폭력성으로 변질될 수 있다. 폭력성의 이면에는 내가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빗장이 나의 마음을 굳게 걸어 잠근다. 이런 닫힌 마음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 자물쇠의 크기를 계속 키운다.
한바탕 깨달음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감동이 가시기도 전에 고민이 된다. 딸아이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하면 이해를 잘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 끝에 살며시 운을 띄웠다.
"아빠가 한 달에 한 번씩 월급 받는 거 알지?"
"응~ 알지. 아빠는 돈 많이 못 벌잖아. 그 대신 우리랑 많이 놀아주고 그래서 난 괜찮아. 많이 못 벌어도."
"근데 옆 집 친구 아빠가 돈을 더 잘 벌고, 아빠는 못 번다고 친구가 놀리면 기분이 어떨 거 같아?"
"음, 괜찮아. 친구는 친구고 나는 나니까. 우리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니까!"
'헐~ 이 녀석 언제 이렇게 많이 컸나! 나보다 더 대단한데~'
"딸이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는 건 자존감이 높아서 그런 거라 생각해. 자존감이 높으면 남들이 뭐라든 크게 신경 쓰지 않거든. 그런데 연아가 아무리 자존감이 높아도 인생을 살면서 속상한 일이 생길 수도 있어. 아빠 같은 경우는 나보다 잘난것도 없는 친구가 나보다 돈을 더 잘 벌면 엄청 속상하거든. 돈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했던 마음에 친구가 들어와 버리면 아빠는 속상했었어. 내가 친구보다 돈을 못 번다는 걸 알면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 상처를 입은 적이 있거든. 이럴 때 자존심이 상했다고 얘기하는 거야. 자존심이란 남과 비교하면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해."
"알았어."
자존감과 자존심에 돈의 개념을 대입하면 딸이 좀 더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딸에게 자존감과 자존심을 이해시키는 것은 실패한듯했다. 반응이 너무 시큰둥했다. 하지만 뜻밖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과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꽤나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도 자존감처럼 타인의 의식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딸과 이야기를 하면서 나도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발견했고 그것을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돈을 잘 벌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속상했구나, 친구와 비교하면서 자존심이 상한 것은 내 마음이 타인에 의해서 정해졌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상실감이 타인과의 비교에서 왔다면 그 마음은 자존심과 비슷한 "자본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타인의 의식 없이 돈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나는 "자본감"이라고 부르고 싶다. 자본감의 순수성은 자존감처럼 많은 가능성을 열어준다. 가능성 정도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그토록 추구하려는 자유를 선사할 정도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조르바가 돈은 날개라고 얘기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자본감의 가능성은 자존감, 자신감, 자부심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으로 열려있다. 자존감의 그것과 비슷하다.
앞의 나의 경우처럼 타인을 의식하면서,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자본심"이라고 부르고 싶다. 자본심은 기본적으로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비싼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셨다니 너무 부러워요!', '저도 이렇게 비싼 차 타고 싶어요!'라는 댓글과 하트, 좋아요 같은 관심이 자본심의 기준이 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타인으로부터 인정의 요구는 자유롭지 못하고 매몰되기 쉽다. 심지어 그 끝이 없으니 충족감을 느낄 수 없다. 결국 돈은 날개가 되지 못하고 나를 옭아매는 족쇄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자 사랑해야 할 존재이다. 이런 돈이 날개가 될지 족쇄가 될지는 돈을 어떻게 사랑하는지에 달려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의 기준을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타인의 의식 없이 순수하게 돈을 사랑한다면 돈은 나에게 무한한 세상을 펼쳐주리라. 그 세상에서 훨훨 날고 싶다. 자본심이라는 족쇄 대신 자본감이라는 날개를 달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