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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폭풍속 부푼돛 Feb 07. 2022

잠실역에서 니체를 만나다.

2호선의 순간을 영원처럼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2022년이 시작되면서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부서이동으로 근무지가 가까워졌다. 편도 1시간 30분이던 출근시간이 50분으로 줄었다. 출퇴근 시간이 길면 길수록 좋다고 외치던 나는 롯한 나만의 시간이 줄어 내심 아쉽다. 더 우울한 건 지금 발령받은 부서는 업무가 많고 민원이 세기로 악명이 자자하다. 이전 부서에서도 그렇게 힘들다고 징징됐는데 더한 곳으로 왔으니 아마도 내가 있는 곳이 가장 힘들다는 말이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어딜 가나 들다는 마음가짐은 어딜 가도 천국이구나 라는 마음과 한 끗 차이가 아닐까. 내가 출퇴근 시간을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외치는 것과 비슷한 맥락 이리라. 하지만 항상 그렇듯, 이론적인 생각과 마음 사이에는 항상 깊은 골이 존재한. 그 골을 건너기가 쉽지  않다. 부서 이동한 지 근 한 달, 돈벌이하는 직장에서는 어떠한 즐거움도 찾기가 힘들다. 쉽지 않은 인생이다.


근무지가 이동되면서 이용하는 지하철 노선도 조금 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8호선 천호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탔지만, 지금은 8호선 잠실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탄다. 5호선 보라색과 2호선 초록색의 색상 차이처럼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환승거리도 꽤나 차이가 있다. 천호역은 계단만 내려가면 환승이 가능했지만, 잠실역에서는 환승거리가 만만치 않다. 환승을 위해서는 부지런히 걸어가서 열차를 타야 한. 열차의 형태와 내부도 낯설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미세한 차이는 나를 2호선을 처음 타는 이방인으로 만들기 충분하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2호선이 만들어주는 공간과 사람들은 새 학기, 새 교실에서 만난 친구처럼 서먹하고 어색하다. 그러고 보면 2호선의 서먹함과 어색함은 짧은 이용시간 때문일 수도 있겠. 잠실역에서 잠실새내 역 사이 단 한 구간만을 이용하니, 2호선에 정을 붙일 시간이 없을터. 정말 타자마자 내린다. 2호선의 가장 짧은 구간, '2호선의 순간'을 나는 매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2호선은 꽤나 특이한 노선이다. 어느 열차든 시발점이 있고 종착점이 있기 마련인데 2호선은 그렇지 않다. 시작과 끝이 없는 순환열차이다.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 서울 전역에 초록색 동그라미가 중심을 이룬다. 그래서 2호선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조금은 기발한 호기심이 든다. 한번 열차에 타서 내리지 않으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한 번은 꼭 해보고 싶은 도전이다. 아마도 그 도전자는 그만한 여유를 가진 시간 부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을 것이.

2호선의 초록색 동그라미를 돌고 돌아 제자리로 회귀하 것이 마치 니체가 얘기하는 '영원회귀'를 연상시킨다. 지하철 노선이 구간과 구간으로 이어져 있는거 처럼 순간과 순간으로 이어져있는 우리네 인생과 흡사하다.

2호선의 순간을 이용하는 직장인으로서 니체의 영원회귀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니체는 우리의 인생이 영원히 돌고 돈다고 가정했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믿었다고 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 지가 한 타임이라는 인생이라면 한 타임은 무한히 반복된다. 조금은 섬뜩한 것은 무한히 반복되는 인생은 다음 턴에서도 그대로 똑같은 모습이라는 점이다. 여태 42년을 살아온 모습이 생에서도 티끌 하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 반복된다고 생각하니  더 잘 살아볼걸 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동시에 앞으로 영원히 반복될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맞이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영원회귀의 가장 멋진 가치는 영원이라는 개념을 통해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지나고 있는 이 순간은 한 번뿐인 인생에 있어서는 보잘것없는 순간의 찰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영윈회귀 개념에서 보자면, 보잘것없는 지금 이 순간 역시 영원히 반복된다. 찰나와 같은 짧은 순간도 수없이 겹쳐지면 영원이라는 거대한 가치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영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특별한 무언가가 된다. 지금 이 순간이 고통스럽다면 다음 생의 같은 순간도 고통스러울 것이. 그다음 생의 순간도 마찬가지고, 그다음도, 그다음도... 결국 순간의 고통이 겹쳐져 영원한 고통이 된다. 지금 이 찰나는 앞으로의 영원을 지배하는 결정적 순간이다. 지금이 괴로우면 영원히 괴롭고 지금이 즐거우면 영원히 즐겁다. 이것이 그 유명한 카르페디엠 이리라.

순간을 영원처럼,

순간이 영원을 지배하리라.




실제로 2호선 열차는 영원히 돌지는 않는다. 간선으로 빠지 가도 하고 시간이 되면 차고지로 들어가 운행을 중단할 것이다. 실제로 지금 살고 있는 인생도 똑같이, 영원히 반복될까? 솔직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니체가 그토록 강조한 영원회귀도 머릿속으로만 이해할 뿐 마음 깊숙한 곳까지는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생의 수많은 질문과 해답은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 거는 같다. 영원회귀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의 찰나를 소중하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나는 지금도 2호선의 순간에 서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비록 짧은 한 간이지만 최선을 다해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사람이 미어터지는 2호선 출퇴근 시간, 잠실역에서 니체를 만났다. 때마침 이어폰에서는 집에서 즐겨 듣는 노래, '회전목마'가 흘러나온다.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빙빙 돌아올 우리의 시간처럼
인생은 회전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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