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폭풍속 부푼돛 Jan 10. 2022

산성역 1-1보다 6-4를 선택하는 이유

산성역 108계단을 오르다.

퇴근길, 드디어 종착역에 다다랐다. 8호선 산성역이 나의 마지막 역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다. 집으로 가는 , 아직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다. 털릴대로 털린 나에게 기다리고 있는 바로 수많은 계단이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그것들이 나를 압도한다. 

'허걱~'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하고 막히고, 입이 쩍 하고 벌어진다. 일자로 수없이 뻗은 계단의 위엄은 생각보다 더 대단하다. 그런 계단앞에 두고 한발 한발 오른다. 보일 듯 말 듯 까마득한 계단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 마치 보이지 않는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산행길 같다. 그 많고 많은 계단을 오른다는 것은 거짓말 좀 보태서 가히 등산이라 할 만하다.

한 번의 오르막 이후 계단과 계단을 잇는 통로가 나온다. 마치 산등선 같다. 가뿐 호흡을 가다듬고 재정비할 수 있는 . 그래서 난 이곳을 지하철 등선이라 부른다. 그곳에서 한 타임 숨을 고르고 나면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첫 번째 오르막보다는 덜하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다. 두 번째 고지를 향해 힘차게 출발한다.

마스크 안의 호흡은 가빠지고 허벅지에 압력이 가해지기 시작한다. 산을 오를 때나 느낄 수 있는 느낌을 지하 계단을 오를 때 느끼다니 참으로 새삼스럽다. 계단 꼭대기에서 느껴지는 거친 호흡과 허벅지의 알싸함은 한라산의 백록담이나 설악산의 대청봉에서의 그것 못지않다. 지칠 대로 지친 마음에서 짜내고 짜낸 계단 꼭대기에서의 성취감 역시 꽤나 짜릿하다. 너덜너덜 해진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짜릿함이 느껴진다.




그깟 지하철 계단 가지고 등산이네, 뭐네, 짜릿함이네, 뭐네, 누군가는 코웃음  수도 있다.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산성역을 한 번이라도 와본 사람이라면 그런 얘기를 못할 거라고 확신한다. 그래도 혹시 몰라 산성역의 지하 심도를 찾아보았는데 재미있는 사실을 알  있었다.

산성역의 심도는 약 55.8m이며 서울 지하철에서는 단연 1위이고 전국에서도 독보적인 2위이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아파트 층고를 넉넉히 4m라고 가정했을 때 14층 건물 높이임을 알 수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깊이이다. 그래서 나는 직접 계단수를 세어보기로 했다. 지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개찰구가 있는 대합실까지는 170단이다(에스컬레이터 계단 높이가 일반 계단 높이보다 더 높기 때문에 일반계단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이것보다 더 많은 계단 수가 예상된다). 그리고 대합실에서부터 지상 출입구까지 50단으로 220단의 계단이다. 이 정도면 웬만한 동네  뒷동산은 충분히 능가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지하철 환승주차장에서부터 계단을 이용하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170단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것이었다. 수많은 계단을 보고 있자니 대학시절, 대학교의 108계단이 생각났다. 언덕에 위치한  학교를 오르는 계단을 108계단이라 불렀다. 그 당시 그렇게 투덜대던 108계단보다 훨씬 많은 170계단을 만나다니 감회가 새롭다. 그래서 나는 170단인 이 계단을 '산성역 108계단'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내가 졸업한 대학교 108계단 외에도 여러 곳에서 108계단 이름을 사용하고 있더라.  실제로 계단이 108단이어서 그런 곳도 있겠지만 정확히 108단이 아니어도 그렇게 부르는 계단이 많은 거 같다. 108이라는 숫자 뒤에 숨겨진 의미를 안다면 왜 그렇게 108이라는 숫자가 널리 사용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이 가지는 108가지 번뇌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중생의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감각기관이 사물을 접할 때 좋다, 싫다, 그저 그렇다의 세 가지가 서로 같지 않아서 괴로워하며 또한 괴로움, 즐거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과 관련이 되어 6x3=18에 다시 18을 더해서 36이 된다. 거기에 36개의 번뇌가 과거, 현재, 미래를 가지기 때문에 36x3=108이 됐다고 한다. 쉽게 말해,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늘 느끼게 되는 108가지의 느낌을 의미한다. 실제 인간의 번뇌가 108가지라기보다는 그만큼 많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불교에서는 108개의 알로 염주를 만들어 돌리면서 삼보를 생각하면 108 번뇌를 끊을 수 있다고 말하며 혹은 본래적 자신의 마음인 일심의 회복을 강조하기도 한다. 비단 염주뿐만 아니라 종종 절에서 행하는 특수한 기도법인 '108배' 또한 바로 이 108가지 번뇌를 순환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다. 기도라는 게 은근히 고통스러운 행위이고 따라서 108개의 번뇌를 해소하려면 기도를 108번 올려서 그 고통으로 108개의 번뇌가 가져다주는 고통을 상쇄한다. <출처: 나무 위키>


나무 위키에서 긁어온 108 번뇌의 의미가 예사롭지가 않다.

여기서 눈이 가는 구절은 마지막 부분이다. 고통으로 고통을 상쇄한다라...  문구에 말하는 첫 번째 고통은 '육체고통'일 것이고 두 번째 말하는 고통은 '정신적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108가지 번뇌,  즉 수많은 감각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행위에서 비롯되는 고통으로 지배한다 정도로 이해를 했다. 이런 의미를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필요하.




불교에서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감각을 일시적인 것으로 본다. 그래서 마음속에 있는 수많은 감정과 감각에 일희일비 않기를 제안한다. 이러한 감각과 감정을 만족시키려 하는 마음을 욕심으일컫는. 충족시킬 수 없는 욕심은 그치지 않는 갈망으로써, 마음의 행복에 이르는 데 있어서 아주 큰 장애물이다. 결국 마음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욕심을 제거해야 하는데 욕심의 원천인 모든 감정과 감각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108 번뇌라 하는 것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과 감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육체에 가해지는  어느 정도의 고통을 통해서 마음속의 감각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 행해지는 의식  108배의 절 또는 108번의 기도라는 행위가 대표적인 육체적 고통이 될 것이다. 원하는 목표 열반의 단계도달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수반하는 행위가 필요하 이것을 불교에서 말하는 수련 또는 수행이라고 얘기한다고 생각한다. 수련과 수행을 통해 감각과 감정을 제거하고 마음속의 갈망을 제거한다.

집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계단을 올라야 한다면 한단 한단 오르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자 한다. 계단을 오르는 일이 단순한 힘듦이나 고통이 아님을 깨달을 때 이것이 곧 수련이 되고 수행이 될 수 있다. 이것은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한 피와 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산성역의 내리는 문을  1-1보다 6-4를 선택한다. 1-1에는 에스컬레이터 밖에 없지만 6-4에서 내려서 올라가는 길에는 계단이 있다.

서울에서 가장 깊은,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깊은 지하철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 108계단에서 수행을 시작한다. 플랫폼에서 개찰구까지는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수행의 성취감과 수련의 알싸함은 퇴근시간에 얻을 수 있는 보너스다. 이런 느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산성역을 오른다.

이전 10화 8호선, 그 남자의 목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