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대화기술 공부가 필요해.

6살 아이와의 대화의 어려움을 경험하며.

by 말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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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재활사(언어치료사) 직업을 갖고 일을 하면서 육아는 적어도 남들보다는 수월할 줄 알았다. 입덧지옥을 막달까지 겪고, 돌 이전까지 아이를 돌보는데 있어서 쉽지 않았지만 이겨낼 만 했다. 나는 '언어발달 전문가'이지 아기들의 신체발달, 운동발달, 그 외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은 '처음'이라는 합리화가 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 각 영역마다 전문가가 있잖아! 진료과도 각각 다르고! 아이의 발달도 각 발달 전문가가 있는거야. 나는 언어발달 전문가니까, 당연히 모를 수 있어.'


아이가 커갈 수록 말을 하는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었고, 모든 부모들이 한번쯤 생각해본다는 '내 아이 영재설'도 살짝 발을 담궈볼 수 있었다. '저런 말을 할 줄 알다니! 역시 넌 엄마와 아빠의 딸이 맞아!'(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sns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나름 뿌듯했다). 아이는 나름대로 언어를 스스로 확장해가고 있었고, 주변에서 들은 말을 마치 복사기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내 아이 영재설에 가담했던 이유 중 하나는 영어였는데, 아이가 영상에서 보았던 영어를 자기 전 그대로 따라하는 모습에 기특함을 감추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가 어릴 땐 영어를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눈*이 학습지로 배웠는데 말이지.'



아이는 작년에 유치원에 입학하고 적응기간을 가지면서 꽤 아파했다. 아이는 가정어린이집에 오랜 기간 다녔고, 어찌된 일인지 아이에겐 또래 동성 친구가 없었다. 잠시 함께한 친구가 있었지만 부모님 사정으로 이사를 갔고, 이성 남자친구, 남동생들과 내복바람으로 1년 가까이 가정어린이집 생활을 하다가 유치원에 갔다. 아이가 4살 땐 언니들이 원에 있었기에 덜 낯설었겠지만 친구들을 대하는 아이는 어딘가 이방인이 될 듯한 모습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친구들을 너무 좋아했고, 따라하고 싶어했다. 역시나 집에서 친구의 대사와 선생님의 대사를 복사기로 찍은듯 재연하기 시작했다.


동성친구가 없는 아이에게 안쓰러움을 느꼈기에 아이가 집에서 흉내를 내고 재연을 하면 관람객이 되어주고 박수도 쳐주었다. sns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 문구처럼, '너의 첫 사회생활을 응원해' 그 마음 그대로였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 수 있는 날은 허용해주었고 아이 친구에게도 최대한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일하느랴 바쁜 엄마인지라 친구집에 가거나 엄마들 모임은 여지껏 해보지 못했지만 그게 아이의 또래 관계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는 않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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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년을 보내고 아이가 6살이 되던 올해, 아이는 친구의 좋지 않은 말과 행동까지 따라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망했어" 라든지 거짓말을 한다든지(과자 가루가 입에 가득한데 먹지 않았다고 함), 여자 아이들의 흔한 짜증과 우는척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어제는 그 "망했어" 라는 말 한마디에 나도 발작 버튼이 눌렸다.


"너 어디서 배워왔어! 누구야! 그런말 나쁜거랬지?" 아이는 이 역정에 울음을 터뜨렸고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이런 상황을 치료실에서 마주했다면? "ㅇㅇ야, 이거 틀렸다고 망하지 않아. 선생님도 잘 틀리는걸. 망했다고 이야기하는건 앞으로도 좋지 않아. 우리 긍정적으로 이야기 해보자." 이렇게 나긋하게 반응했을텐데. 어제는 그 말을 두번째 듣는 순간 버튼이 눌리다못해 튕겨져 나가는 듯했다.


'아, 나는 또 아이 앞에서 벌거벗겨졌구나.'



생각해보면 '사회성'과 '대화기술'은 학습이 가능한게 맞지만 가장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공간은 '가정'이다. 부모가 은연 중에 서로 나누었던 대화, 전화통화, 부모와 이웃 간의 대화를 통하여 아이는 그때 그때 저장을 해둔다. 그러니까, 치료실에서 상황그림 카드를 보여주며 아동에게 적절한 말을 가르칠 때, 너무 교과서적인 말보다 보다 더 있을 법한 대화를 들려주고 가르쳐야한다. "괜찮니? 내가 미안해.", "지우개 좀 빌려줄 수 있니?" 이런 부자연스러운 말은 아이들 사이에서도 우스갯소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서로 나누는 대화에 "망했네." 가 자주 들어가는데 아이에게는 그 말을 사용하지 말라고 버럭 화를 낸다거나, 부모는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데 아이의 거짓말에 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이에게 억울함과 원망을 살 뿐이다. 아이는 혼난 것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오은영 박사님께서 이런 말을 하신 것을 본 적이 있다. 부모와 아이의 권위가 분명해야 한다고. 부모와 아이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우리나라의 과한 공감 열풍으로 인해 나도 영향을 받았는지 아이를 혼내고 난 후 항상 안아주며 "미안해"를 말하곤 했다. 아이는 "엄마도 나한테 화낸 것 사과해!" 이 말을 할 뿐, 자신이 왜 혼났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는 6살 발달 단계에서 당연한 모습이긴 하다.


사회성과 대화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은 부모의 큰 역할이다. 하지만 이 역할을 건강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양육자의 마음도 건강해야 한다. 마음밭이 가뭄인데 열매가 탐스럽게 열릴 수 없다. 우울한 마음, 화나는 마음, 피곤한 몸을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관리해줄 필요가 있다.


살짝 여담이지만 이번달부터 주 1회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건강한 엄마가 되기 위한, 건강한 치료사가 되기 위한 내 딴에는 최선의 노력이었다. 같은 상황이더라도 나의 마음 상태에 따라 말이 다르게 나온다면 가장 혼란을 느끼는 것은 아이니까.



아이에게 무조건 적인 공감보다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을 명확히 알려주되, 권위적이되 안전지대가 되어주는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 아이가 거짓말을 한 이유는 '혼나고 싶지 않아서'인데, 그렇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하려면 아이를 혼내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보다 지혜로운 대화기술을 배우고 싶고, 지금은 배우는 중이다. 오늘 저녁엔 아이를 더 많이 안아주고 마음을 표현해주고 들어줘야겠다.


아까 아침에 많이 속상했지? 그래도 거짓말은 안 되는거야.
하지만 엄마가 ㅇㅇ(이) 말을 잘 들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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