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조기교육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다.

초보 엄마와 30개월 아이의 영어 그림책.

by 말선생님

외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무엇보다 영어 조기교육에 대한 욕구가 많은 편이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부터 학교 안에서 영어 교육이 시작되었다. 시골 학교였지만 지원체계가 탄탄했었던 것 같다. 어학실을 만들고, 원어민 교사 배치하면서 시골학교도 점점 영어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나 스스로 영어 공부를 시작한 건 수능 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외국어 영역 점수가 고1 때는 바닥을 쳤었는데, 영어단어를 하루에 30개를 목표로 한 학기 정도 외웠더니 2등급까지 올릴 수 있었다. 핑계를 대자면, 중학생 때는 영어공부는 교과서만 잘 외우고 중간, 기말고사에서 90점 이상을 받는 게 전부인 줄 알았다.(어쩌면 교육적인 자극을 받기에는 지역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20년도 더 지난 지금은 지역적인 한계는 당시보다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새로운 영어 단어의 의미를 알아보려고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그 뜻 안에 적힌 어휘의 의미를 모를 때가 더 많았다. 한국어, 고등학교 수준의 어휘를 이해하는 능력 자체가 부족했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겨울방학 때 간간이 토익공부를 한 것 외에는 크게 영어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 그리고 석사과정 때에 해외저널들을 보면서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했지만 전공 용어를 이해하고 있다면 저널 해석은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마 지금 다시 해석해보라 한다면 머뭇머뭇거리겠지만.




그리고, 내 아이의 영어 교육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다시 영어와 마주하게 되었다. 현재 29개월인 온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영어 그림책을 최대한 많이 읽어주는 것. 영상을 보여주기엔 그동안 미디어를 차단하고 보내온 시간들이 왠지 망가질 것만 같아서 괜한 고집을 부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90년대보다도 더 도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람 냄새나는' 교육 방식을 고집하게 된 이유가 없지는 않다.


내 직업이 언어치료사이기 때문에, 발달이 느린 아이들을 만나와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기보다는 영어도 한국어와 같이 '많이 사용되어야' 아이들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영어 유치원의 자세한 커리큘럼이나 그 외의 것에 대해 전해 들은 지식이 전부이기 때문에 함부로 적기에 조심스럽지만, 아이들이 결국 돌아오는 것은 '한국의 교실'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들의 언어 평가를 진행하다 보면 쉽사리 알 법한 어휘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언어 평가 도구를 제작할 당시보다 시대가 많이 변한 것도 있지만(예 : 우표, 공중전화), '어? 이 어휘의 의미는 그래도 알고 있다면 좋을 텐데.'라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치료실 안에서 아이들에게 색을 물어보면 요즘은 대부분 영어로 이야기를 해준다. 그게 좋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노란색'만 하더라도 'yellow'라는 하나의 이름을 갖기보다는, 우리나라 말은 '노랗다, 누렇다, 노르스름하다, 황색이다, 진한 노란색이다, 달걀노른자 색이다..' 등 노란색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말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분을 표현하는 'happy' 또한 '행복하다'는 의미 안에 정말 다양한 감정이 들어있을 것이다.

온이와 산책을 하다가 보면 아이의 언어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시를 지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탄천 물이 그냥 흘러가는 것뿐인데 아이는 '물이 데굴데굴 굴러가네'라고 이야기를 하고, 강아지가 낯선 강아지를 보고 짖었을 뿐인데, '강아지가 기침했어, 콜록콜록!' 말을 한다. 온이의 말을 나의 귀찮음으로 인해 다 적지 못한 것이 미안할 정도로, 아이들은 각 가정에서 한 편의 시를 매일매일 지어낸다.

그런데 요즘은 현장에서 보면 오히려 영어 단어를 알면서 발음이 더 좋아지는 경우도 간혹 보기도 한다. /ㅅ/발음이 /ㄷ/나 /ㅌ/로 대치되어 산출되어서 온 아이가 영어를 배우면서 /s/ 발음을 산출할 때의 혀의 위치를 어느 정도 익히는 경우도 있었다. '말'의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보면 아이들이 오히려 발음 기관을 더 많이 움직여보며 다른 언어를 많이 듣는 경험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언어'의 측면으로 살펴보면, 영어 단어 하나를 미리 아는 것도 좋지만 한 단어 안에서 파생되는 예쁜 우리말을 더 많이 들어보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영어 또한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노출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엄마의 투박한 발음이더라도 아이에게 영어 그림책을 읽어줄 때만큼 '살아있는 영어'를 만나는 시간은 없을 것이다. 영상은 아이의 눈을 마주쳐주지 않는다. 아이가 책의 어느 곳을 바라보고 있는지, 아이의 시선이 어느 그림에 머무르는지... 똑똑한 AI 가 아니라면 그러한 것들을 인식하지 못한다.

영상은 '일방적'이라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요즘은 소통이 가능한 프로그램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한국어 그림책과 마찬가지로 영어 그림책 또한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읽어주는 것을 계속 실천하고 있다.


'In the great green room...' 이렇게 시작하며 읽어줄 때에 한 줄 읽어주고 아이의 시선을 확인한다. Good night moon 그림책은 <잘 자요 달님> 그림책으로, 집집마다 있는 그림책이다. 어른의 시선으로 보아도 초록색이 눈에 띈다. 그리고 책 한 장면마다 영어 한 단어, 한국어 한 단어, 그리고 방 안을 표현하는 예쁜 말들을 꺼낼 수 있다.


'초록색, 장갑/벙어리장갑, 양말, 고양이, 빗, 쉿! 속삭이고 있는 토끼 할머니..' 아이의 경험과 선호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엄마 혹은 아빠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읽어준다면 투박한 발음도 아이의 귀에는 최고의 오디오가 될 것 같다.



현장에서도 간혹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 "선생님, 한국어가 부족한데 영어 유치원 보내도 될까요?".


아이가 영어를 좋아하고 관심을 가진다면
그 기관에 아이를 보낸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아요.
오히려 긍정적인 부분이 많을 수 있지요.
하지만 한국의 교실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 충분히 많은 어휘를 들려주시고 책을 읽어주세요.






언젠가 친구들과 함께 영어 유치원에 대한 카톡방에서의 토론이 있었다. 결론은 '육아 가치관은 누구나 다르다'였지만 나에게는 왠지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다른 누군가의 육아, 교육 가치관 이야기를 깊이 들어볼 시간도 없었을뿐더러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올바른 교육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온이를 피곤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온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 때에 해주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맘 카페에서 이야기하는 엄마만의 교육관을 잘 세우라는 수많은 댓글들 또한 부모마다의 가치관이 각자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세 살 된 딸 엄마의 영어교육 첫 단추는 '영어 그림책'이다. 그리고 어떠한 사교육 콘텐츠나 교육적인 자극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아이를 데리고 가는데 드는 비용을 아직은 아껴두고 싶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교실에 갔을 때 교과서 안에 있는 어휘, 문장을 보고 답답함을 먼저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정 안에서, 그리고 외부에서, 아이가 시인이었을 때 아이의 언어를 더 아름답게 다듬어주었으면 좋겠다. 사교육이라는 양분은 어쩌면 엄마와 아빠가 주는 다소 투박하지만 냄새를 느낄 수 있는 거름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