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는 말하기보다 어려울 수도 있다.

그림책, <가만히 들어주었어>를 생각하며.

by 말선생님

주말은 어김없이 아이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온이는 주말에 낮잠을 거의 자지 않는다. 혹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오후 4시가 훌쩍 지나서야 간신히 낮잠을 잔다. 아이의 바뀐 수면 패턴은 부모를 혼란에 빠트린다. 억지로 재우려고 하면 아이는 그걸 어떻게 알아채고 있는지 더욱더 자지 않는다. 신경이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남편과도 말 한마디에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기가 쉽다.



요즘 온이를 보면 감정에 정말 솔직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온이, 슬펐어." 말하며 닭똥 같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트리기도 하고, "엄마, 소피 언니처럼 이렇게 화났어."라고 말하며 양 검지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악마를 흉내내기도 한다. 이럴 때를 보면 아이들의 모방 능력은 자신의 상황에 가장 와 닿았을 때 빛을 발하는 것 같다. 그리고 더 쉽게 습득한다.



낮잠을 자지 않는 온이를 보며 나도 괜히 감정 풀이를 신랑에게 하고 싶었다. "오빠, 나 7월에 정말 힘들었어. 왜 여자는 일을 하나둘씩 포기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한참 들어주는 듯하더니 신랑이 답이 없다.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서운하다.


신랑은 자신도 육아에 있어서 자신의 일을 굉장히 많이 포기하고 있다고 늘 이야기한다. 회식에 참여도 잘하지 않고 일단 친구 모임이 많지 않다. 그러한 부분에 있어서 고마움을 매번 느끼고 있지만 나도 표현이 내 가족에게는 쉽게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서로 주 5일 근무 직장에 다닐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아이'라는 존재가 우리 삶에 들어오고, 한 사람은 전일제 출근, 한 사람은 아이의 육아 상황에 따라 일을 조정하는 프리랜서를 하는 상황이 늘 유연하고 매끄러운 것만은 아니다. 일을 조정할 때마다 오는 스트레스는 부정할 수 없다.


신랑도 그 포인트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도 힘들어." 맞다. 생각해보니 자신도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고, 자신도 직장에서 그만큼 일을 포기하고 퇴근하는 거라고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이렇게 글로 보자면 신랑이 굉장히 짠해 보이지만 정작 우리의 대화는 냉기가 가득했다. 서로 '누가 더 힘든가'를 두고 내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온이가 조금 더 나이가 있었더라면 너무나 속상했을 것이다. '나를 키우는 게 그렇게 내기할 만큼 힘들어요?'라고 묻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부모교육을 진행할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말에 대해 '경청'하는 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건 언어영역뿐 아니라 심리, 놀이, 인지, 모든 발달 영역에서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듣기'가 직장을 벗어나고, 내 가족 안으로 상황이 들어오는 순간 잘 되지 않는다. 참 어렵다.


아직 온이가 말을 쫑알쫑알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아서 온이의 말에는 최대한 귀를 기울여주고 있지만 신랑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건 더 어렵다. '아, 또 그 상사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구나. 나도 아까 장 볼 때 진짜 힘들었는데. 수박 유모차에 싣고 오기 무거웠는데.' 이 생각이 들어온 순간 신랑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해줄 에너지는 이미 바닥까지 내려가고 있다.


온이의 연령이 더 높아지고 대화할 때 문장의 길이가 길어진다면 경청이 점점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치료실 안에서의 상황 또한 치료사 입장에서 엄청난 절제력을 가지고 아이의 대화를 들어주는 경우도 간혹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기 동영상을 찍고 모니터링을 해보면 부끄러워서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어 질 때가 많다. '내 말이 저렇게나 많았다니!'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아이가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언어 자극을 준다는 암묵적인 이유로 아이에게 여러 단어를 쏟아내고 있다. 아이는 갑자기 수다쟁이가 된 선생님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소리 나는 장난감 버튼을 누른다. 이는 어쩌면, '선생님, 그만 좀 이야기하세요.'의 신호일지도.


그림책 <가만히 들어주었어> 중 한 장면.


'그럼 내 이야기는 누가 들어주지?'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엄마가 된 이후로는 더 자주 찾아오지만, 나의 이야기는 글을 쓰면서 해소하기도 하고(아, 신랑은 글을 쓰며 해소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구나), 아이들이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기도 한다.


"선생님이 어제 마트에 갔는데 글쎄 좋아하는 과자가 비싸더라고." 아이들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기 시작한다. "정말요? 어떤 과자 좋아해요? 우리 아빠는 맥주랑 같이 감자칩 과자 먹어요." 이런 대화가 흘러가기도 하고, "어제 선생님 애기가 늦게 자서 선생님 너무 피곤해!"라고 이야기하면 동생이 있는 아이들은 "선생님 애기 몇 살이에요? 내 동생은 요즘은 잘 자요."라고 이야기해준다. 이런 대화로 그 날의 수업 목표를 잡고 시작하면 다소 유치할 수도 있지만 과자의 'ㅈ'을 더 잘 써보기도 하고, 'ㅈ'발음을 더 정확하게 내는 동기가 생기기도 한다.





늘 다짐하지만 소통에서 '듣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지만 가장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듣기를 잘해주십사 부모님들께 부탁드리기도 스스로 부끄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하고, 관심받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아이를 키우면서 더 크기게 된다. 그 사랑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들어주기'가 아닐까. 언젠가는 온이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해줄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해본다. "엄마, 아빠가 그렇게 잠들어서 너무 속상했겠다."라고 말하는 그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