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 속에서 '힐링'이 되는 시간을 마련하며.
#Intro.
'코로나 19'가 일상을 바꾸어 놓은지 어느덧 5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기지 못할 거라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리고 백신이 발견되고 정착되려면 넉넉히 는 24개월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 한다.
확진자가 30명이 넘어가기 전까지는 나도, 내 주변 그 누구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종플루도 메르스도 겪어 보았지만 길어야 2주였다. 사업장에 타격을 줄 거라고 예측은 했지만 이렇게 장기적으로 전염병이 영향을 줄 거라고는... '아니겠지'.
2월 초, 직장 근처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직장은 당연히 휴관에 들어갔다. 2주면 끝날 줄 알았는데, 주말 즈음이면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2주 더, 2주 더, 결국 3월 한 달이 그냥 지나가버렸다. 아이들의 개학이 연기되는 뉴스를 볼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몰려왔다. 맘 카페에는 개학 연장을 바라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고, 운영을 하는 학원에 대한 비난의 글 또한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 속마음을 누군가가 본다면 나도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대상이 될 것 같아서 두려웠다. 나에게는, 프리랜서에게는 수업 하나하나가 다 돈이었는데. 작년 12월, 정규직 채용 면접 자리에 가지 않았던 게 가장 먼저 후회가 되었다. (결국, 다니고 있었다면 아이를 돌보는데 또 다른 비용이 지출될 거라는 결론으로 후회는 마무리되었지만.)
#2.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나고 현장에서 다시 아이들을 만났다. 이전처럼 답답하면 마스크를 잠시 벗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됐다. 내 안전도 중요했지만 면역력이 특히 연약한 아이들의 건강이 중요했다. 그리고 수업을 하는 내내 드는 죄책감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쉬는 동안에도 신경이 쓰였던 부분이었는데. 특히, 이제 막 입학을 하는 아이들이 계속 생각났다. 집에서 내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아이들의 한글 진도가, 이제껏 연습해왔던 발음이 걱정되었다. 다시 만난 아이들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가정에서 연습을 많이 해서 다시 다음 진도를 진행하면 되는 아이들도 있었고, 처음부터 다시 탑을 쌓아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인 상황이니까.
#. 3
온라인 수업을 마치고 치료실에 오는 아이들의 표정은 생각보다 밝지 않았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으니.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이긴 하지만. '미디어'라는 것 자체가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도 굉장히 낯설었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미디어'는 시간을 정해놓고 봐야 할 정도로 즐거운 존재였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마치 육퇴 이후 좋아하는 드라마를 켜는 그 스릴과 같은. 그런 느낌이었을 것 같다.
성인들에게 '인강'(요즘은 '싸강'이라고 하던데)은 집중력과 절제력이 동시에 필요한 존재다. 강의를 들으면서 창을 내려놓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으니까.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엔 어떨까? 일대일 대면 수업 안에서도 주의집중력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에게도 꽤 힘든 시간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나의 기억 속 초등학교 입학, 중학교 입학, 그리고 3월은 설렘과 두려움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교과서, 새로운 선생님.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규칙을 배워가고 교과서 안에서는 배울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배우는 시간이 3월인 것 같은데. 아이들의 3월이 그렇게 날아가버렸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생계가 불안정하고 힘든 시기를 지나가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힘든 시기를 지나가고 있었다. 과연 치료실 안에서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5.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싶었다. 내가 그림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은 아니지만. 다행히 나와 오랫동안 수업을 해온 친구들이 대부이었고, 어머님들께서도 나의 수업을 신뢰해주셨다. 밖에서 보기엔 책을 읽어주며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옛날 사고방식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에 종이책을 마주하는 시간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학교로 돌아가서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들은 '종이'를 마주하게 된다. 아무리 미디어가 발달하게 되더라도 책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그 무언가는. 미디어가 따라잡을 수 없다. (나 정말 옛날 사람인가.)
#6.
5월 중순, '그로잉맘'이라는 어플을 통해서 기질에 따른 그림책을 주문하게 되었다. 온이에게 읽어주기엔 다소 수준이 높은 그림책이었지만, 이제 막 입학을 한 초등학교 1학년 친구들에게 읽어주기에 너무나 좋은 그림책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수박 만세> 그림책은 두려움이 많은 아이들에게 읽어주기에, '나는 왜 이런 사소한 것들도 걱정하지?'라는 걱정을 하는 아이들에게 읽어주기에 제격인 책이다. 그리고 이 여름에 읽어주기엔 더 제격이지 않을까. 어렸을 때 누구나 한번쯤은 수박씨를 삼키면 몸속에서 수박이 자라는 상상을 해보았을 것이다. 단지, 부끄러워서 이 고민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림책 속에서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들의 친구들은 고민을 잘 들어준다. 고민을 들어줄 때는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냥, 들어주고, 표정으로 공감해준다. '그래, 그런 고민이 될 수도 있어!'
그리고 고민을 다 들어주고 난 후에, 그 고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준다. 어느 누구도, '그런 엉뚱한 고민이 어디 있니!'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수박씨가, 포도씨가, 살구씨가 몸속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해서 내 몸 전체를 덮어버린 아이들의 고민이 '공감'으로 해결되었다. 그림책 속 장면만 보아도 너무나 시원하게 몸 전체를 덮고 있던 과일 껍데기가 산산조각이 난다.
#7.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난 후, 아이들에게 느낌을 물어보면 대부분은 '몰라요'라고 답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이러한 경험이 생각이 났고, 그래서 이걸 느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경우는 정말 드문 것 같다. 그림책을 수업에 도입했던 초반에는 '언어치료실에 오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라는 편견을 내가 가지고 있었지만.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책 모임에 자주 참석하고 익숙한 모임이 되지 않은 이상은 어려운 질문이다. '이 책 읽고 뭘 느꼈어?'
이 날은 아이들에게 내가 느낀 부분을 먼저 이야기했다. "선생님이 걱정했던 대부분의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더라고". 아이들이 내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수줍게 대답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초록색, 빨간색, 검은색 색지만 있어도 그 날의 수업을 기대하는 것 같다. 치료실 안에 들어오자마자, "와, 오늘은 뭐 만들 거예요?" 질문이 쏟아진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언어치료 목표와 어느 정도는 맞물려야 할 것 같고, 이젠 아이들에게 그림책에 흥미를 느끼게 유도하는 것 이상의 목표로 진행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그림책은 그냥 그림책. 있는 그대로 우리가 즐기면 된다는 결론이 들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림책이 학습이 된다면, 차라리 그 시간에 이전에 하던 대로 목표로 했던 활동이 끝나면 보드게임을 하는 게 서로에게 유익할 수도 있다.
#8.
'코로나 19'를 지나면서 교육 분야는 '온라인'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다. 언어치료는 그동안 대면 수업이 99%였고, 사회성 또한 중요한 목표였다. 그래서 그룹 수업을 진행했고, 그 안에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적응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들이 고안되고 진행되어 왔다.
이제는 언어치료 현장 또한 변화의 요구가 생겨나고 있다. 언젠가는 종식이 되겠지만 지금 현재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마스크를 쓰고 한 공간 안에서 친구와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고 진행하는 교사의 눈을 바라보고 지시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9.
어쩌면 그림책은 가정에서도 해줄 수 있는 언어 자극 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미디어가 난무하는, 난무해질 수밖에 없는 이때를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는 선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난 언젠가는. 한 공간 안에서 눈을 마주하며 그림책으로 소통했던 시간들이 서로에게 깊은 그리움이 묻어나는 시간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