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언어발달 검사를 처음 받으신 분들께.

치료실에서는 깊이 전해드리지 못했던 이야기들.

by 말선생님


#Intro.

아이가 백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먹고 자는 게 가장 큰 과업이다. 조리원 동기, 주변 엄마들과의 이야기 주제도 당연 수면이다. 하루에 몇 번 자는지, 잠투정은 어떤지, 밤중 수유는 몇 번 하는지. 그리고 백일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고, 돌이 되어가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 나는 아직 둘째는 없지만 첫 아이는 부모에게 하루하루가 신기한 일상을 선물해준다. 누워만 있던 아이가 스스로 앉고, 벽을 잡고 일어나기 시작한다. 한 발 한 발 발을 내딛는다.


#. 1.

출산 전, 부모상 담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주제는 '신체발달' 그리고 '생활습관'에 대한 것이었다. 언어발달에 대한 부분은 이론적인 지식과 함께 임상 경험이 3년 정도 쌓이다 보면 머릿속에 어느 정도 해당 연령대의 데이터가 만들어진다. 사실 언어발달에 대한 부분도 꾸역꾸역 외우는 심정으로 본 적도 있었지만.

아이가 배변은 언제 가리는지, 언제 걷는지, 언제 스스로 먹을 수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드려야 하는데. 자신감이 없었다. 내 아이를 양육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한 생명의 전반적인 발달 과정을 직접 보고 그 현장에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 상담을 할 때도 굉장히 많은 플러스 요인이 되었던 것 같다.


지난 주말,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준 책.


#2.

그렇다면, 신체발달 이후의 과제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가장 관건은 '의사소통'인 것 같다. 돌 이전 아이 엄마들의 sns를 들어가 보아도 옹알이를 하는 영상, 엄마와 눈 맞춤을 하는 영상, 엄마의 지시를 듣고 아장아장 걸어가며 기저귀를 가지고 오는 영상을 종종 볼 수 있다. 남들에게 '우리 아이는 이렇게 잘 자라고 있다'라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보다는, 그 순간의 기쁨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니까.


#3.

첫 단어는 보통 6개월~8개월 사이에 산출된다. 여기서 '단어'라고 하는 것은 청지각적으로(귀로 듣기에) 느껴지는 '단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마다의 '차이'가 있다는 것. 6개월 무렵이면 아이들이 옹알이를 산출할 때 같은 자음이 더욱더 반복하며 산출하는데, 양순음(입술소리) 계열의 자음이 쉽게 산출된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있다가 /음마 마마마/라고 산출하게 되면 엄마는 '어? 우리 아이가 '엄마'를 산출했어!' 이렇게 느끼게 된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이 6개월이라는 개월 수치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돌 이전은 아이들마다 차이가 많이 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6개월 정도부터 시작된 같은 음절이 반복되는 옹알이는 돌이 될 무렵부터 단어로 완성되어 간다. 현장에서의 '첫 단어'는 대게 '의미/의도를 가지고 부르는 단어'를 말할 때가 많다. 아이가 엄마를 보며 '엄마'라고 부르는 것. 물을 보며 '무'라고 산출하는 것.


#4.

사교육 시장을 가장 키우는 건 교육 정책이 아니라 부모의 정보력이라는 말이 있듯이, 언어치료 또한 그렇지 않을까 생각된다. 요즘은 24개월 이전 아기들도 엄마 품에 안겨 치료실을 찾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현장에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라떼 토크인가!), 언어치료를 받으려면 적어도 30개월은 지나서와 야 한다는 추세였는데. '조기중재'가 정말 떠오르는 시점에 학부를 졸업했었는데(2010년.. 여기서 나이가 드러나는 건가!). 10년의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게 변했다. 맘 카페를 통해서, 그리고 아름아름 얻는 정보력을 통해서 24개월 이전 아이들도 언어검사를 받으러 치료실을 방문한다.

언어 검사는 주로 부모 보고 검사와 치료사가 아동의 놀이를 관찰하는 평가로 진행된다. 부모 보고를 통해 등가 연령(예 : 이 아이의 수용 언어는 15개월 수준입니다. 그리고 또래에 비해 60% ile에 속합니다.)이 산출된다는 것에 대해 의문점을 갖게 되는 부분도 많을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언어 평가는 가장 주 양육자가 집에서 보고 느낀 것에 대해서 체크를 하거나 치료사의 질문에 답을 하고, 치료사는 아이의 놀이를 관찰한다. 각 개월 수에 맞게 놀이가 진행되는지, 사물의 기능에 따라 사용이 가능한지, 상징놀이는 어떻게 하는지, 산출하는 자음/모음 목록은 어떤지, 의사소통 의도는 어떻게 표현하는지. 치료사 입장에서는 주어진 검사 시간 내에 아이와의 놀이를 통해서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이 나에게도 참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놓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는데. 부족하다고 보고서에 기록할 수 없으니까.


#5.

그리고, 요즘은 영유아 검진을 통해서도 언어발달을 대략적으로 체크할 수 있어서, '늦게 알게 되어서, 혹은 더 기다려주기로 해서' 검사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드문 것 같다. 그렇다면, 검사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이의 언어가 또래에 비하여 늦되다고 느껴서 검사를 받은 경우를 보면, 엄마의 직감이 틀리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나는, 수치적인 것보다는 질적인 분석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드린다.

36개월까지는 언어 이해, 산출, 의사소통 기능에 있어서 기초적인 부분을 다져가는 때이다. 아이에게 언어 산출이 즐거워야 하고, 엄마/아빠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즐거워야 한다. 내가 울음으로 원하는 것을 요구해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가리켜서(pointing), 엄마의 눈을 바라보면서(eye contact) 요구하는 것이,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의사소통 방식이라는 것을. 가정 안에서도 아이 스스로도 배워나갈 수 있어야 하는 시기이다.



#6.

조심스러운 말일 수도 있지만, 기질적으로 문제가 크게 없었다면, 보고서에 제시된 강점은 더 끌어올려 주고,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면서, 부족하다고 제시된 것들은 함께 끌어올려가면서. 치료를 시작하자고 권해드리는 편이다. 꼭 언어치료를 받지 않더라도, 가정 안에서 아이와 함께 '소통'의 즐거움을 함께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보고서에 제시된 등가 연령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그렇게 말씀드린다.


#7.

아직 아이를 28개월 밖에 키워보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교육은 선진국에 비해 빠른 듯 하지만 정체되어 있다는 걸 벌써 느끼고 있다. 그리고 남을 의식하며 내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사회구조다. '누구는 벌써 숫자를 열까지 셀 수 있다더라', '누구는 영어 그림책을 다 읽는다더라', '누구는 이걸 한다더라'. 시간이 지나면 큰 차이가 없어질 것들에 대해서, 아이가 어릴 때부터 그 '누구는'에 내 아이를 맞추려고 한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독서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정확한 출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수년간 독서 교육을 해오신 저자분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배고픔이 없다. 특히, 교육에 있어서 배고픔이 없다. 영어가 궁금하기도 전에 영어 유치원에 가있고, 자연이 궁금하기 전에 자연관찰 전집이 집에 들어와 있다.'

나의 경우도 내 아이와 비슷한 개월 수의 아이들을 sns에서 보면 '우리 아이는 얼마큼 하고 있지?'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또래보다 늦게 걸어서 부모인 내 입장에서는 위축이 되었지만 지금은 뛰어다니고 있고, 말도 또래보다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앵무새'처럼 엄마 아빠의 모든 말을 다 따라 하려고 한다. 전집은. 20권 전집을 사들이고 10권 정도만 1년 정도 아주 가끔 보았던 경험을 한 뒤로는 아예 욕심을 버렸다.(중고로 누가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지만.)




#8.

굉장히 주제넘을 수도 있고 섣부른 제안일 수도 있지만, 아이의 언어가 느리다고 느끼거나, 그러하다는 검사 결과를 받았다면. 천천히 그 속도에 맞추어서 걸어가는 건 어떨까.

그리고, 아이의 언어가 느린 것에 대해서 잘못된 양육, 방임했던 양육, 일을 해서...라는 죄책감은 절대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아직 드러내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언어' 문제라기보다는 기질적으로 조심스러운 성향일 수도 있으니까.

아이의 개월 수가 높지 않더라도, '내가 산출한 단어가 정말 정확하게 산출되고, 그로 인해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다'라는 확신이 들 때에 단어를 산출하는 아이들도 종종 있으니까. 아이에게 소통의 즐거움을, 언어 산출의 즐거움을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9.

나의 개인적인 '일'에만 초점을 두어 이야기하면, 한동안은 주로 '학령기'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내 아이가 학령기가 아닌데. 그렇게 성장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학령기 아이들의 상담 또한 쉽지 않았지만, 수업을 하고 자료를 만들고 숙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굉장한 에너지를 얻었던 것 같다.

영유아 언어치료가 어려웠던 건, 그만큼 부담감이 더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학령기 아이들에 대한 부담감 또한 크다면 크지만, 영유아 수업은 치료사를 잘못 만나면 이 아이의 중요한 시기를 놓쳐버릴 것 같은데, 그 치료사가 내가 될까 봐. 그리고 육아 경험도 없는 내가 단순히 전문 지식이라는 무기 하나로 치료를 해도 될지 겁이 났다.


#10.

내 아이를 양육하면서 느낀다. 세상에 정말 보고서에서 이야기하는 '정상 범주'란 무엇일까. 또래 수준의 평균이라고 이야기하면 될까? 아이들의 잠재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보고서로 인해서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물론, '언어치료사' 로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도 있다. 무작정 기다려주고, 언젠간 잠재력이 나오겠지_라는 생각이 아니라, 또래 안에서 이 아이가 잘 소통할 수 있도록, '언어'의 어려움으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도록, 촉진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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