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의 언어발달 기록 노트 만들어가기.
#Intro.
28개월인 나의 아이는 말이 빠른 편은 아니었다. 지금도 발화 길이가 늘어나고 있는 단계를 지나가고 있지만.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언어치료사' 엄마의 기준에서 아이의 단어 산출, 단어 조합은 빠른 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전공서적에서는 12개월 무렵에 의미를 가진 '첫 낱말'을 산출하고 18개월 무렵에 50개 이상의 어휘를 이해하고 일관적으로 산출하는 단어가 몇 개 있다고 했는데. 온이는 24개월까지도 정확히 산출할 수 있는 단어는 몇 개 없었던 것 같다. '엄마, 아빠, 띠야(바나나), 띠띠(애착 인형), 쁘띠 띠(비타민)..' 이 정도.
#1. 기다려주기.
신랑과 나는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가급적 주변의 시선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기로 결단했다. 이 결단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직전에 와르르 무너진다고 하지만. 일상에서 아이를 지켜보았을 때에도 수용 언어는 지체되었다는 느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기다려주기로 했다. 대신, 10년 동안 배워온 게 '언어치료'라고. 가정 안에서도 어느 정도 자극을 주려고 노력했었던 것 같다.
#2. 어떻게 하면 부담 없이 언어 자극을 줄 수 있을까?
흔히, 언어를 빨리 촉진하려면 많은 단어나 긴 문장을 들려주어야 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 착각이 착각이라는 건 학부 2학년 정도만 되어도 전공서적을 통해 깨닫게 되는 바인데. 나의 아이 앞에서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그림책을 읽어줄 때에도, 함께 놀아줄 때에도, 자기 전에도. 아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와 긴 문장, 그리고 질문을 쏟아내게 된다.
(이는 언어치료사들에게도 참 어려운 과제이긴 하다. 내 아이의 수용 언어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많은 질문을 하고, 또 아이에게 발화 기회를 주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모니터링하다 보면. 영상을 바로 끄고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1) 아이가 한 단어를 산출하는 단계라면 엄마의 언어 자극은 한 단어 또는 두 단어 조합으로 : 예를 들면, 아이가 자동차가 가는 모습을 보고, /빠방/이라고 한다면, 엄마의 언어 자극은 /빠방+가/ 혹은 /자동차 +가/ 정도의 길이를 유지한다.
2) 아이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 엄마가 함께 놀이를 하려고 야심 차게 준비한 장난감이 있더라도, 아이가 제시한 장난감으로 놀이를 시작한다. 어느 정도 아이의 욕구가 해소된 이후에 새로운 장난감을 제시한다.
3)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상황이 쉽지 않지만) '산책' 시간은 언어 자극을 주기에 가장 좋은 시간 : 공원에만 나가도 계절마다 나무, 풀의 색이 다르고 꽃이 피어있다. 지나가는 자동차, 구급차, 소방차, 경찰차를 아이가 실제로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오늘 날씨는 어떤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지나가는 강아지는 무슨 색인지, 엄마의 언어로 아이에게 가장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 들려줄 수 있다.
#3. 절제의 미 : 질문.
질문만큼 아이의 현재 언어 수준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법한 것은 없다고 생각되지만, 절제해야 한다. 아이들도 '내가 테스트를 받는구나'라는 건 개월 수가 많지 않아도 느끼는 것 같다. 너무 어렵다면, 3번 중 1번, 5번 중 1번으로 조금씩 줄여나가 보는 건 어떨까.
언젠가 인스타그램에 아이와의 상호작용 동영상을 올린 적이 있다. 한창 아이가 말이 트였다고 생각하던 시기여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올렸었는데. 내 주변 지인들은 거의 언어치료사가 많아서 그런가, '질문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댓글이 많았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일부러 아이의 발화를 유도해내기 위해서 질문을 더 많이 했던 나의 의도가 그렇게 비추어져서 속상했다. 그런데 동영상을 지금 다시 보면, 누가 봐도 '질문이 많은 엄마'다. 결국 아이는 함께 놀고 있던 장난감에서 다른 장난감으로 관심을 옮긴다. 재미가 없어진 것이다.
'놀이를 확장'해나가는 것은 어느 육아서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문장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고 나면 '그래, 할 수 있어!'라고 다짐을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래서 어떻게?' 질문이 나오지 못한 채 들어가 있다. 맘 카페에서 수많은 질문 글을 보았지만, '우리 아이에게 집에서 어떻게 언어 자극을 줄까요? 언어 자극을 어떻게 하면 줄 수 있을까요? ' 이러한 언어 자극에 대한 질문은 일상생활 습관이나 신체발달에 대한 질문에 비하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놀이의 확장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아이가 자동차 놀이를 하고 있으면, 자동차에 엄마, 아빠, 아가 인형을 태우고, 마트에 간다. 마트에 가서, 딸기, 포도, 사과, 우유를 산다. 그리고 다시 차를 타고 집에 온다. 앗. 그러다가 자동차가 넘어졌다. 병원에 간다.
여기서 간간히 익숙한 소리를 산출해주면 더 좋다. /삐뽀삐뽀/, /빠방~/, /부웅~/, /냠냠/. 그리고 한 단어씩 더 살을 붙여 나간다. /삐뽀삐뽀 + 가/, /빠방 + 가/, /냠냠 + 먹어/.
그리고 매번 느끼는 바지만, 뽀로로 친구들의 이름은 정말 잘 지어졌다. 아이들이 산출하기에 좋은 /포비/, /뽀로로('뽀오오'로 산출하는 경우가 많지만)/, /크롱/.
#5. 내 아이의 문장을 기록하며 : 한 편의 시가 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직장 출근도, 아이 등원도 막혔던 3월. 유일한 탈출구는 '산책'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최대한 사람이 없는 시간에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면서 아이도 나도 마음이 많이 부드러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sns 안에서 진행되는 '아무 놀이 챌린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가정 안에서 그림 그리기, 가면 만들기, 벚꽃 나무 만들기 등의 치료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진행했던 활동들을 아이에게 해주었다. 이렇게나 내 아이에게는 해주었던 것이 없었나? 그림 하나 그리는데도 까르르 웃는 아이를 보니 너무나 미안했다. 그리고 25개월, 26개월이 지나면서, 말이 많이 트이기 시작했다.
'말이 트인다'는 의미 또한 다르게 해석되지만. 문장 길이도 길어지고, 연결어미 '-고'도 나오고, 존대어도 나오고... 어찌 보면 내가 보고 좌절감과 죄책감을 느꼈던 언어발달 책에서 말하는, 그 언어발달을! 아이가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탄천 물이 흐르면 : /물에 떼굴떼굴 굴러가네/.
강아지가 짖으면 : /강아지가 기침했어, 왈왈!/.
지나가다가 새차장의 차를 보면서 : /차가 머리 말리고 있어/.
아파트 지하 슈퍼 고양이 : 사랑이가 집 나가서 할머니 엉엉 우러써(울었어). 사랑이 다시 돌아왔어.
시적인 표현들이 종종 있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더 기록해둘 걸 그랬다.
#6. 아이의 말 그릇에 예쁜 것을 담으려면.
아이가 말을 따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부부에게는 어려운 과제가 하나 더 생겼다. 아이 앞에서 싸우지 않고, 감정이 격해지면 절제하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도 아이 앞에서는 하지 않기로.
엄마, 아빠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기에 이 부분이 참 어렵다. 아이가 말을 처음 시작했을 땐 좋은 것만 담아주고 싶었는데. 나의 감정이 격해지면 그 결단은 이미 멀리 떠나보낸 지 오래. 언젠가 온이에게 "엄마, 너무 화났어. 엄마도 소피 언니처럼 화났어!"라고 이야기했더니 온이가 이 책을 가지고 왔다.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를 알려줄 때, 그림책만큼 아이에게 깊이 와 닿는 설명서는 없구나. 아직 24개월(당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물론 굳이 따지자면 20%도 내 감정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공통의 그 무언가', '통하는 그 무언가'를 마음속으로 공유하고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7. 매일매일 결단하고 점검하기.
엄마가 되기 전에는 내 아이가 말이 늦다는 걸 알았을 때 느끼는 좌절감, 가정 안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이와 이루어지는 그 전쟁 같은 순간순간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말 늦은 아이들이 나를 찾아올 때에는 뭔가 정확한 답을 드려야만 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할 것 같아서 부담감이 먼저 다가왔던 것 같다.
"육아"라는 건 그런 것 같다. 엄마도, 아이도, 그리고 물론 아빠도. 서로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고 다듬어주는 것. 아이의 언어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의 말이 늦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질 이유도 없고 원인을 엄마에게 돌릴 필요도 없다. 아이의 말이 과격해졌다고 해서 엄마와 아빠에게 모든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하루가 모여서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모여서 일 년의 시간이 되듯이. 아이와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시간이 모여서 "내 아이의 언어발달 기록"이 남을 것이다. 그 누구도 터치할 수 없는, 아이와 엄마, 아빠만의 <언어발달 기록 노트>를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