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기를 거부하는 아이들과 함께 시작한 그림책.
#Intro.
재작년 무렵부터 블로그에 '그림책을 활용한 언어치료' 활동 후기를 공유했다. 이유는 '잘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좋아해서'였다. 여전히 나는 그림책을 좋아할 뿐 관련 자격증은 많지 않다. 그런데 그림책 관련 포스팅을 올릴수록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변화를 알리고 싶었다.
# 언어치료 X그림책 #시작
언어치료는 보통 40분 회기로 진행된다. 간혹, 길어야 50분~60분이 되기도 하는데 특별한 사항이 없는 경우는 40분 세션이 기준이다. 영유아 대상 언어치료 또한 그렇겠지만 학령기 대상 언어치료는 40분 세션 안에서 목표를 나누는 과정이 쉽지 않다. 매뉴얼이 정해져 있지도 않고, 아이들의 현행 수준과 needs를 치료사가 분명하게 파악해야 한다.
처음부터 그림책을 언어치료 안에 '마음먹고' 도입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그림책 좋지. 하면 좋겠지.'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프리랜서가 되면서 더 신경이 쓰이는 것 중 하나는 부모님의 만족도 또한 채워야 한다는 점이었다.
'과연 그림책을 학령기 언어치료 안에 넣으면 부모님들의 만족도가 좋을까?'
'그냥 논다고 생각하시지 않을까?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건데.'
다행인지 아닌지 재작년, 작년, 두 해 동안 만난 아이들은 책을 가정에서 많이 접해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어릴 때는 다양한 전집을 접한 아이도 있었지만. '그림책' 하면 코웃음을 피식 짓는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되는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도 있었고, 엄마의 노력으로 책을 읽기는 하지만 영 자신의 취향은 아닌 그런 아이도 있었다. 아. 아이들의 공통분모/교집합이 하나 있었는데 글자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무엇보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읽어줄 수 있을까?'
오래간만에 갖는 깊은 고민이었다. 이 아이의 현행 수준은 이러하니 반짝이는 회기 활동은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는 색이 다른 느낌이었다.
우선, 학년별 권장 그림책을 찾아보았다. 아이들의 현행 수준에 비해서 높다고 생각되는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학년별 권장도서는 정말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언어치료 자체가 개인에게 맞추어 있어서 그런지 '학년별'이라는 점이 크게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림책을 배우면 배울수록 학년과는 무관하다는 결론에 다다르고 있었다. 1학년 권장도서를 6학년이 즐겨본다고 한 들 그 아이의 언어 수준이 1학년에 머물러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책을 먼저 보여주기로 했다.
이 책 정말 재미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그림책을 수업 마무리 부분에 읽어주면 아이들의 반응이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선생님이 그림책 하나 보여줄까?" 질문하면 99.9...% 의 아이들은 "내가 읽어요? 선생님이 읽어요?" 혹은, "글씨 안 읽을 거예요"가 대부분이긴 했다. 아니면, "게임한다면서요. 공부 끝나면."
<짖어봐, 조지야> 책은 작년 9월, 모교 대학원에서 들었던 그림책 연수 때 소개받은 책이었다. 표지만 볼 때는 유치원 아이들이 좋아할 법 하지만, 그림책 모임 안에서는 어른들에게도 아주 사랑받는 책 중 한 권이다.
아이들마다 조지에 대해, 조지의 엄마에 대해 해석하는 것도 정말 달랐다. "조지가 엄마 앞에서 연기하는 거 아니에요? 관심받으려고 그러는 것 같은데." 뜻하지 않은 반응이었다. 이 생각을 펼친 중학생 친구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 친구였는데 가정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그림책을 읽은 경험이 그 근래에는 전혀 없었던 친구였다.
아이들의 대답 하나하나에 나 또한 신이 났다. 어떤 그림책을 가지고 갈까. 아이들마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또 목표도 달랐기 때문에, 하루에 세 권의 그림책을 보조 가방 안에 담아서 출근한 적도 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많이 무겁지 않았다. 아이들의 반응이 기대가 되었다.
아이들의 현행 수준에 따라 독후 활동은 달라졌다. 주로 표지 만들기, 스토리맵 만들기, 주인공에게 하고 싶은 말 적어보기 등등. 40분 안에 끝날 수 있는, 언어치료 목표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활동으로 국한되긴 했지만.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아이들은 내가 그림 그리기를 도와주기도 했고, 아이들의 생각을 듣고 글로 적어주기도 했다.
다행히 어머님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정말 운이 좋았던 걸까. 나를 신뢰해주셨던 걸까. "언어치료 활동만으로도 시간이 없는데 그림책이나 읽어주신다고요?"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단 한 분도 계시지 않았다. 오히려 책에 점점 관심을 갖기 시작해서 감사하다고, 집에서도 이제 글자를 좀 읽으려고 한다고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변화가 나타나다.
많은 전문가들은 연령이 높아져도 엄마가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중학생에게도 초등학생에게도 유치원생에게도. 영유아는 말할 것도 없이.
요즘 아이들은 내가 봐도 영상에 너무 일찍 노출되고 익숙해져 있다. 어른들도 한번 몰입하면 헤어 나오기 힘든 동영상을 아이들이 절제력을 가지고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이에게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주면서 이거 보기만 하고 먹지는 말라고 지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을까.
작년 하반기 무렵 접어드니 아이들의 반응이 하나둘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무슨 책 읽어줄 거예요?" 물어보는 아이들부터 "선생님, 저는 그 팥죽 할머니 책이 일등으로 재미있었어요!" 이야기하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친구들까지.
물론 하루하루가 드라마틱하게 변화가 보인 것은 아니었다. 책 선정에 실패했던 적도 많았고 활동은커녕 꾸역꾸역 책장을 서로 넘기고 "저 이제 나가도 되죠?"라고 말하며 치료실을 빠져나간(?)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 보기에 좋을 뿐일 수도 있지만) 분명 가정 안에서 부모님들의 수고를 뺄 수가 없을 것 같다. "집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읽어 주세요. 고학년 이어도 상관없어요!" 나의 이야기를 실천해주셨거나, 또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알게 되셨더라도 어찌 되었던 실천 하셨기에. 아이들에게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림책과 언어치료 Q&A
1) 그림책은 어디서 다 구입하시나요? 돈이 많이 들지 않나요?
제법 많이 듣는 질문이다. SNS에 그림책이나 다른 책 사진을 많이 올리다 보니까 그런 것 같다. 그림책 구입은 중고서점을 이용하거나 그림책 서평단에 당첨된 경우도 있다. 그리고 정기구독 서비스도 이용한다. 요즘은 정기구독 서비스는 한 달 단위로 이용하지만(그럼 정기가 아닌가..?ㅎㅎㅎ). 굳이 추천을 하자면 동네서점에서 진행하는 그림책 정기구독 서비스를 말씀드리고 싶다. 그림책 전문가분들이 직접 그 달에 잘 어울리는 그림책 또는 구독자에게 필요할 법한 그림책들을 보내주신다.
2) 그림책만 따로 활동을 진행하시기도 하나요?
솔직히 그림책 활동 또한 어찌 보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도 있지만, 아직은 그림책만 온전히 한 세션을 잡아서 진행하기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짖어봐 조지야' 책은 /ㅈ/ 산출 일반화를 유도하기에도, 이야기의 사실적 내용을 이해하고 산출하기에도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한 세션 중 반 정도 시간을 분배한 적도 있었다. 코로나 19가 아니었다면. 올해는 그림책 그룹수업을 진행하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크다.
3) 그림책 자격증은 어떻게 따나요?
그림책 자격증은 민간이 대부분인데. 나의 경우는 한국 독서심리상담학회 안에서 주관하는 교육으로 '그림책 전문가' 과정을 수강하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취득'이라고 하니까 뭔가 거창하지만 (사실, 문턱이 높지 않아서), 실습 보고서로 결과물을 완성하면 취득이 가능하였다. 그림책 교육은 교육하시는 분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그분의 가치관을 따라가게 될 가능성이 크고, 나의 내면을 힘들게 꺼내야 할 수도 있다. 그림책 모임을 모의로 진행해보는 것이 거의 마지막 관문인데. 나를 오픈하지 않고 타인의 답을 이끌어내는 게 쉽지 않으니까. 그리고 온라인 강의로도 독서지도사 자격증은 수강이 가능한 걸로 알고 있다. 워낙 많은 기관이 있어서 자세히 알아보고 수강, 자격 취득 과정을 밟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4) 앞으로의 고민/방향은?
이건 그냥 '안물 안궁 TMI...'인데. 비대면 수업이 필요한 이때에 그림책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언어치료실에 찾아오는 아이들 외에 일반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림책을 공부하다 보니('공부'라기에는 거창하고, '관심을 갖고 관련 책을 읽다 보니'!) 발달심리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적다 보니 정말 TMI 맞는 것 같다.
5) 앞으로 브런치 공간 안에서, 한 권 한 권 그림책을 읽고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 활동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블로그 공간보다 더 자유롭게 적을 수 있을 것 같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