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아닌, 반성문.
나의 직업은 언어치료사이지만 아직 그림책 전문가는 아니다. 그런데 sns에 그림책에 관련된 글을 올리고 활용 방법을 자주 올리다보니 어느덧 그림책으로 브랜딩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주변에서 아이가 돌이 되어갈 때에 한번쯤 연락이 오기도 한다. 안부를 묻기도 하지만, 좋은 그림책을 추천해달라는 연락이다.
좋은 그림책에 대해 나 또한 고민이 정말 많았다. 매번 중복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좋은 그림책'에 대해 어떻게 찾아보아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 스스로에게 반성 또한 되었던 것 같다. 그동안 언어치료를 하면서 어떻게 그림책에 대해 이렇게 무지했을까? 부모상담 속 안에서 내가 추천해드렸던 방법 중 하나인, 그림책 읽는 시간은 나에게는 그저 말뿐이었을까?
추상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좋은 그림책'은 '나의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이다. 초등학생의 경우는 학습만화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영유아 그림책에 있어서 가장 좋은 선택은 아무리 낡고 닳아도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이 가장 좋은 그림책이다.
어젯밤, 그림책을 소개하는 컨텐츠를 만들 일이 있어서 아이가 돌 전후로 보았던 그림책들을 모두 꺼내보았다. 손 때 가득 묻은 그림책과 아이가 잠이 든 모습을 보니 괜히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너무 많이 보아서 표지와 안에 속지가 너덜너덜해진 보드북. 이제는 책꽂이의 가장 아래 칸, 그것도 책들 사이에 깔렸있는 책이 되었다. 아이가 자랄 수록 다른 책들로 관심이 바뀌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18개월 이전보다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았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줄어들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아이의 첫 등원 이후 한 6개월 정도는 역시 그래도 가정에서 엄마가 주는 언어자극이 어린이집보다 더 좋다는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새 무뎌졌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가 연령이 커지면서 어린이집에서 배워오는 것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가정에서 줄 수 없는 것들을 공동체 안에서 배워오는 것이 신기했다. 퇴근 후 늘어나는 집안일을 하면서도 '아이랑 놀아 주어야 하는데' 생각을 하다가, '에이, 아이도 오늘 어린이집에서 많이 피곤했을거야.'라는 생각으로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2. 엄마의 일상이 너무 바빠졌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돌 무렵이 되면 엄마들은 복직을 하거나 소소한 일거리를 찾기 시작한다. 12~18개월 정도면 요즘 어린이집에 보내기에 아주 어린 개월수도 아니고 오전등원만 보내더라도 엄마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
나의 경우는 그랬던 것 같다. 주 1회만 일을 하려고 했으나 토요일을 포함해서 주 2회가 되었고, 아이가 18개월이 되었을 무렵은 이미 주 3~4일의 출근을 하고 있었다. 퇴근 이후에 오는 번 아웃과 집안일이 겹칠 때에는 아이의 그림책이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설거지 통에 쌓여있는 그릇들이 9정도 보였다면 그림책은 0.5만큼이나 보였을까.
3. 대체할 수 있는 놀잇감들이 늘어났다.
돌 직전~18개월 무렵엔 아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보드북, 고리 끼우기, 그리고 여러가지 소리나는 장난감들이 대부분이었다.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방식의 장난감이라면 아이에게는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두 돌이 지나가면서 집에 있는 장난감 또한 점점 다양해졌다. 나 또한 치료실 안에서 아이들이 관심을 보였던 장난감을 구입해놓기 시작했고, 엄마가 잘 활용해줄 수만 있다면 그림책이 주는 재미 보다는 어쩌면 뽀로로나 핑크퐁 그림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있는 냉장고 장난감이 아이에게는 훨씬 더 큰 재미를 주었을지도.
모든 일에 있어서 꾸준함이 중요하듯 그림책 육아 또한 꾸준함이 중요한 것 같다. 독서 전문가들은 그림책은 청소년기가 되어서 아이에게 읽어주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한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그림책 읽어주는 시간을 더욱 더 추천하는 편이다. 하교 이후 학원, 그리고 새로운 학교 환경에서 지친 아이들에게 엄마 품에서 읽는 그림책만큼 안락한 공간은 없다. 한글을 잘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또한 그 시간만큼은 잠시 접어둘 수 있다.
이러한 이론적인 지식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겨우 아이가 세 살이 되었는데도 그림책 육아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24개월 무렵까지는 아이가 말이 빠른 편이 아니라는 생각에 나의 열정이 정점을 찍었지만 정점에서 점점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코로나가 찾아오면서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바뀌어가고 있다.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 이전 같았으면 아이의 사교육 일정을 머릿속에 미리 그려두었겠지만, 이렇게 팬데믹이 자주 찾아오는 현실 속에서 아이의 교육에 대해 어떠한 계획을 세울 수가 있을까.
어쩌면 그림책에 대한 나의 글을 보면서 '우리 아이는 그림책에 관심조차 없고 앉아있으려고 하지도 않는데 웬 그림책 육아!'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다. 나도 아이를 낳고 나서야 그림책에 빠져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2017년, 아이를 임신했을 때, 1년 정도 일산 쪽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 주말이면 파주에 자주 들렀던 시간들이 요즘들어 유독 그립다. 예쁜 그림책방, 출판마을 근처를 아이와 함께 걸어보고 싶다. 여전히 마스크는 벗지 못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