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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Apr 05. 2024

회화, 그 묵직한 울림

[석기자미술관]㊱ 최진욱 개인전 <창신동의 달>

최진욱 <렌트 7>,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193.9×510cm


“단순히 재현을 벗어나 눈앞에 있는 사물을 눈으로 만지고, 볼로 비빌 수 있다면 그것이 리얼리즘이며, 내게 주어진 세상을 느껴질 때까지 그리는 일이 화가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재현을 넘어서는 것, 그것이 회화의 본령일 터. 눈에 보이는 풍경을 재현하는 데 그치는 그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그림은 그저 풍경화 이상이 되지 못한다. 예부터 화가들이 실경(實景)이 아닌 진경(眞景)에 천착한 이유다.     


재현의 늪에 빠지면 안 된다. ‘추상’, 문자 그대로 Abstract, ‘끄집어내야 한다.’ 색이든 형태든리얼리즘도 그림이 되기 위해선 추상성을 얻어야 한다단순한 재현은 소위 자연주의의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최진욱 작가는 창신동을 그린다. 창신동의 오늘은 과거에서 오고 미래로 이어진다. 고층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서울, 다 다른 표정을 한 건물들, 그 사이로 굽이굽이 모이고 흩어지는 길, 도시의 산과 하늘, 그리고 달. 창신동은 그 모든 시간과 공간이 압축된 곳이다.     


최진욱 <창신동의 달 6>, 2024, 캔버스에 아크릴릭, 193.9×130.3cm


흔히 최진욱의 회화를 일러 ‘감성적 리얼리즘’이라 부른다. 작가의 고유한 감성으로 보는 사실적인 풍경의 세계를 일컫는 표현이다.     


나는 내 그림이 리얼리즘이라고 불리든 그럴 수 없든 개의치 않지만나는 내 자신의 그림이 그 어떤 리얼리스트의 그림보다도 리얼하다고 믿고 있다.”     


서른넷이 될 때까지 화가는 작업실 안만 그렸다. 그러다 문득 작업실 밖으로 나갔다. 1990년의 일이었다. 그림을 그렸지만, 그리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부단히 고민하고 탐색했다. 그렇게 30여 년이 흘렀다. 결국, 중요한 건 ‘방법론’이었다. 전시장에 걸린 최진욱의 창신동 그림은 <렌트>와 <창신동의 달>이라 제목 붙인 연작이다. 모두 2022년 이후 작품들이고, 올해 완성한 작품도 있다.     


최진욱 <렌트 5>,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145.5×227.3cm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그림의 특색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릇 그림은 가까이 다가가서 보아야 한다. 화가의 붓질에는 거침이 없다. 인공물과 자연 경물을 그린 방식이 다르다. 굵은 선묘로 쓱쓱 그어나간 숲은 가까이에서 보면 숲의 형상을 넘어서 있다. 화가의 붓질은 자유롭고 경쾌하다. 회화가 주는 묵직함이 있다.     

개인전을 앞두고 화가는 올해 초 갤러리 3층에서 인왕산이 바라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작가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최진욱 <인왕산 그리기>, 2024, 캔버스에 아크릴릭, 145.5×227.3cm


“이렇게 시간에 쫓기며 그린 적이 없었다. 대략 한 달에 한 장 그렸는데, 일주일에 한 장을 그려야 하다니. 그러나 이렇게 완벽한 공간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왕산을 눈앞에 직접 보고 그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역사와 문화의 공간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걸 마다할 화가는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겸재! 겸재를 따라 인왕산을 그려본다는 흥분된 기분은 그림이 망해가는데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통조림처럼 변하지 않고.”     



갤러리 3층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은 무척이나 근사하다. 이 훌륭한 장면을 화가가 놓칠 리가 있겠는가. 그렇게 화가는 전시를 앞두고 인왕산 그림 두 점을 완성했다. 녹색을 주조로 그린, 화가가 쓰던 이젤 위에 놓인 그림 속 인왕산은 지금까지 보아온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인왕산을 그린 화가의 목록에 최진욱이라는 이름을 추가해야 한다.     


최진욱 <눈 온 뒤 인왕산>, 2024, 캔버스에 아크릴릭, 145.5×227.3cm


어느 순간부터 회화의 본령에 충실한 그림에 본능적으로 끌린다. 회화의 묵직한 힘이 느껴지는 그림에 매혹된다. 회화만 할 수 있는 것, 회화이기에 해낼 수 있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자잘한 기교로 눈을 현혹하는 그림이 아니라 붓질의 힘이 배어든 그림이 나는 좋다.      


최진욱의 그림이 그렇다.     


전시 정보

제목최진욱 개인전 <창신동의 달>

기간: 2024년 4월 13()까지

장소아트사이드 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6길 15)

문의: 02-7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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