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㊱ 최진욱 개인전 <창신동의 달>
재현을 넘어서는 것, 그것이 회화의 본령일 터. 눈에 보이는 풍경을 재현하는 데 그치는 그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그림은 그저 풍경화 이상이 되지 못한다. 예부터 화가들이 실경(實景)이 아닌 진경(眞景)에 천착한 이유다.
최진욱 작가는 창신동을 그린다. 창신동의 오늘은 과거에서 오고 미래로 이어진다. 고층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서울, 다 다른 표정을 한 건물들, 그 사이로 굽이굽이 모이고 흩어지는 길, 도시의 산과 하늘, 그리고 달. 창신동은 그 모든 시간과 공간이 압축된 곳이다.
흔히 최진욱의 회화를 일러 ‘감성적 리얼리즘’이라 부른다. 작가의 고유한 감성으로 보는 사실적인 풍경의 세계를 일컫는 표현이다.
서른넷이 될 때까지 화가는 작업실 안만 그렸다. 그러다 문득 작업실 밖으로 나갔다. 1990년의 일이었다. 그림을 그렸지만, 그리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부단히 고민하고 탐색했다. 그렇게 30여 년이 흘렀다. 결국, 중요한 건 ‘방법론’이었다. 전시장에 걸린 최진욱의 창신동 그림은 <렌트>와 <창신동의 달>이라 제목 붙인 연작이다. 모두 2022년 이후 작품들이고, 올해 완성한 작품도 있다.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그림의 특색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릇 그림은 가까이 다가가서 보아야 한다. 화가의 붓질에는 거침이 없다. 인공물과 자연 경물을 그린 방식이 다르다. 굵은 선묘로 쓱쓱 그어나간 숲은 가까이에서 보면 숲의 형상을 넘어서 있다. 화가의 붓질은 자유롭고 경쾌하다. 회화가 주는 묵직함이 있다.
개인전을 앞두고 화가는 올해 초 갤러리 3층에서 인왕산이 바라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작가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갤러리 3층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은 무척이나 근사하다. 이 훌륭한 장면을 화가가 놓칠 리가 있겠는가. 그렇게 화가는 전시를 앞두고 인왕산 그림 두 점을 완성했다. 녹색을 주조로 그린, 화가가 쓰던 이젤 위에 놓인 그림 속 인왕산은 지금까지 보아온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인왕산을 그린 화가의 목록에 최진욱이라는 이름을 추가해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회화의 본령에 충실한 그림에 본능적으로 끌린다. 회화의 묵직한 힘이 느껴지는 그림에 매혹된다. 회화만 할 수 있는 것, 회화이기에 해낼 수 있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자잘한 기교로 눈을 현혹하는 그림이 아니라 붓질의 힘이 배어든 그림이 나는 좋다.
최진욱의 그림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