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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Apr 24. 2024

우키요에의 거장 호쿠사이의 파도와 산

석기자미술관㊷ 판리 <일본 문화를 바라보는 창, 우키요에>(2024)

일본 우키요에를 대표하는 거장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1760?-1849?)는 90년 가까이 살며 장수하는 복을 누렸다. 열아홉에 당시 우키요에 화가였던 카쓰카와 슌쇼의 작업장에 들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작품 활동을 한 햇수만도 무려 70년에 이른다. 이 또한 복이다. 스승이 세상을 떠나고 2년 뒤인 서른다섯에 가쓰카와파를 떠나 독립했다. 호쿠사이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자기 예술을 만들어갔다.     


가쓰시카 호쿠사이 「다카바시의 후지」, 주반니시키에, 19세기 초, 보소(房總) 우키요에미술관

 

가쓰시카 호쿠사이 「구단우시가후치」, 주반니시키에, 24×18cm, 19세기 초, 파리 국립도서관



화가로서의 이름, 즉 화호(畵號)만도 서른 개가 넘었고, 평생 아흔 차례 넘게 거처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니 그 또한 평범하지 않다. 호쿠사이의 초창기 대표작으로 「다카바시의 후지 高橋の富士」를 꼽는다. 중국의 우키요에 연구자 판리는 “뛰어난 구도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거대한 후지산을 대담하게 아치 모양의 다리 아래에 두었다. 비록 투시원근법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서양 회화의 기법을 흡수하여 공간감을 강화했고 이후 더욱 다양한 표현을 도모하게 된다.”고 썼다. 그러면서 또 다른 작품 「구단우시가후치 九段牛ケ淵」도 소개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후가쿠 36경』 연작, 오반니시키에, 37.5×25.5cm, 1831, 도쿄국립박물관

     


호쿠사이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유명한 작품이 바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다. 이 작품은 지금도 끊임없이 크리스티, 소더비 등의 경매에 출품돼 높은 가격에 낙찰된다. 가나가와 해변은 일본 미우라반도에서 요코하마 부근까지 에도만 연안에 펼쳐진 해변으로, 이곳에 가면 그림에서 보는 것과 똑같이 멀리 보이는 후지산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고양이가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듯 손에 잔뜩 힘을 줘 갈퀴처럼 구부린 모양의 파도 묘사는 호쿠사이의 전매특허라 할 것이다. 이보다 20년도 훨씬 전에 그린 「오시오쿠리하토쓰센노즈」라는 작품을 보면 파도의 표현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 「오시오쿠리하토쓰센노즈」, 주반니시키에, 23×18cm, 1804~07, 도쿄국립박물관


     

앞서 소개한 「도카이도 호도가야」, 「고슈카지카자와 甲州石班潭」,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은 모두 호쿠사이의 가장 뛰어난 풍경 판화 연작 『후가쿠 36경 富嶽三十六景』에 실린 작품이다. 호쿠사이는 칠십이 넘은 나이에 이 걸작을 완성해 세상에 내놓았고, 미인화와 가부키화에 싫증을 느낀 에도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며 한 시대의 유행을 주도했다. 우키요에 연구자 판리는 이렇게 썼다. “호쿠사이는 또한 오모한(主版), 즉 먹판 작업에서 물 건너온 화학 안료 베로린 아이를 사용하여, 전혀 다른 채색 판화 효과를 낳아 항상 새로운 사물을 좋아하는 에도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 연작이 폭넓게 인기를 끌자 10폭을 추가 제작하여, 『후가쿠 36경』은 모두 46폭이 되었다.” 『후가쿠 36경』은 호쿠사이의 대표작이자, 일본 회화사의 국보 중 국보다.     


다시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로 돌아가 후지산 이야기를 해보자. 후지산은 먼 옛날부터 일본인들에게는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후지산을 중심으로 한 종교 집단이 생길 정도였으니, 화가들이 후지산을 그렇게 많이 그린 것도 이해가 된다. 호쿠사이 또한 후지산을 여러 형태로 그렸다. 그중 하나가 「개풍쾌청 凱風快晴」이란 작품이다.      


가쓰시카 호쿠사이 「개풍쾌청」, 『후가쿠 36경』 연작, 오반니시키에, 37.2×24.5cm, 1831, 도쿄국립박물관

     


해마다 여름과 가을 아침에 빛과 공기의 작용으로 후지산 전체가 붉게 물드는 진기한 장면이 펼쳐진다고 한다. 호쿠사이의 작품은 그 장면을 형상화했다.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우뚝 솟은 후지산은 그림 자체로도 신비로운 형상을 띠고 있다. 후지산을 향한 일본인들의 신앙을 높은 차원의 예술로 보여줬으니, 일본 미술사에서 호쿠사이가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겸재 정선 「인왕제색도 仁王霽色圖」, 1751, 종이에 먹, 138.2×79.2㎝,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그것은 마치 겸재 정선이 어느 여름날 비 갠 인왕산의 찰나를 절묘하게 포착한 불세출의 걸작 「인왕제색도」를 완성한 일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 화가들이 후지산을 줄기차게 그렸듯, 우리 화가들은 겸재 이후로 인왕산을 쉬지 않고 그려왔다. 인왕산에 깃든 영험함, 신성성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화가들의 영감을 자극하기 때문일 터. 화가들이 한 제재를 반복해서 그리며 애착을 쏟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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