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석 Jul 15. 2024

살보, 노은님, 천경자 그리고 데이비드 호크니

석기자미술관(71) 서울옥션 여름 경매 축제


살보(Salvo, 1947~2015)는 이탈리아 작가다. 본명은 살바토레 맨지오네(Salvatore Mangione). 시칠리아 섬의 레온포르테(Leonforte)에서 태어난 작가는 초기엔 초상화를 그려 팔거나 인상주의 화파의 영향을 받은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그러다가 유럽 전역에서 파리 68혁명에서 촉발된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급진적 운동이 전개되자, 토리노를 중심으로 가장 빈곤한 재료로 작품을 제작해 자본주의의 사회적 병폐와 기성 회화에 대항하자는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 아르떼 포베라(Arte Povera)에 동참했다. 작가는 이 시기에 기존 평면 회화가 아닌 사진, 조각 형식을 빌린 개념주의 작품 등을 선보이다가 1973년 다시 회화로 돌아갔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살보의 작품이 국내에 처음 본격적으로 소개된 무대는 2023년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이었다.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둔 갤러리 마졸레니(Mazzoleni)가 선보인 살보의 2001년 작 <Una Sera>는 단순화된 형태와 부드러운 색상으로 고산 풍경 위에 떨어지는 황혼의 고요함을 아름답게 포착했다. 이 그림을 비롯해 살보의 작품 여러 점이 팔리면서 국내에서도 살보라는 낯선 작가가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4월 케이옥션이 국내 경매사로는 처음으로 살보의 소품 <Novembre>(2008)를 선보였다. 살보의 풍경은 분명히 현실 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가 그려낸 풍경은 몽환적인 꿈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구름과 산과 숲과 나무는 손으로 만지면 폭신하게 느껴질 만큼 부드럽고 우아한 양감이 두드러진다. 사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풍경 그 자체로 따스한 정감을 느끼게 한다. 또 한 편으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고풍스러움까지 간직하고 있어 과거와 현재, 현실과 비현실이 한 화면에 담긴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빛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이탈리아 출신답게 자연광을 색채의 깊이로 표현해내는 방식에서 자기만의 뚜렷한 화법을 보여준다.     


살보 <La Valie>, 캔버스에 유채, 지름 50cm, 1998



케이옥션에 이어 서울옥션이 6월 부산 경매에서 살보의 또 다른 소품 <Primavera>(2012)를 선보인 데 이어, 7월 온라인 경매에서 살보의 1990년대 후반 작품 <La Valie>를 출품했다. 빈티지 풍의 오래된 액자에 담긴 그림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둥근 화면 덕분에 앞서 언급한 르네상스의 고풍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살보라는 화가에 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아직은 국내 경매사들도 시장의 반응을 조심스럽게 살피는 분위기다.     



노은님 <무제(양면화)>, 종이에 혼합재료, 148.8×210cm



2022년 작고한 화가 노은님의 작품이 드디어 국내 경매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노은님은 간호보조원으로 일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려 독일의 저명한 국립대학 정교수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화가다. 하지만 그 드라마 같은 이력에 가려 정작 화가로서 이룩한 빛나는 예술 세계는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2023년 5월에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추모전 <내 짐은 내 날개다>를 빼면 그동안 전시다운 전시도 딱히 없었다. 여러 방면으로 화가를 기리는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아는데, 이번 경매 출품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파독 간호사에서 빛나는 예술가로화가 노은님의 날개’ (KBS 뉴스7 2023.5.10.)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672421     


노은님 <무제(양면화)>, 종이에 혼합재료, 148.8×210cm

    


경매에 나온 노은님의 작품은 3점이다. 먼저 주목되는 것은 대형 양면화 두 점이다. 종이의 앞뒤에 모두 그림이 있어서 그런지 벽에 걸지 않고 진열대 위에 눕힌 채로 전시되고 있다. 힘차게 약동하는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한 화폭, 나뭇잎인 듯, 물고기인 듯, 천진난만한 표현, 캔버스를 곱게 물들인 색채들의 화음을 통해 ‘생명’을 노래한 화가 특유의 화법이 고스란히 담겼다. 또 한 작품은 특이하게도 육각형 그림이다.     


노은님 <무제>, 캔버스에 혼합재료, 87×100cm


   

천경자 <여인>, 종이에 채색, 26.5×10.4cm


천경자의 그림도 3점이 출품됐다. 그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여인>이다. 세로 26.5cm, 가로 10.4cm로 작고 길쭉한 작품인데, 화관을 쓴 여인의 표정이 알 수 없는 매력을 보여준다. 작지만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그림이다. 이 밖에 작은 뱀 그림과 드로잉 화첩에 포함된 뱀 드로잉 석 점이 선보인다.     



데이비드 호크니 <200 for 2020>

   

마지막으로 봐야 할 것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드로잉과 드로잉 북이다. 드로잉 프린트와 드로잉 북이 일괄로 경매에 나왔다. 이 그림은 데이비드 호크니가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머물던 시절, 매일 아침 식사를 하러 간 뵈브홍-엉-오쥬(Beuvron-en-Auge)라 불리는 작은 마을을 한 화면에 압축해서 그린 작품이다. 올해 3월 서울옥션의 <컨템포러리 아트 세일 Contemporary Art Sale>에 같은 작품과 같은 드로잉 북이 출품된 적이 있다.     


일찍이 동양화의 시점에 관심이 많았던 호크니는 서양화의 투시법으로는 담아내기 힘든 마을의 전경을 동양화의 이동 시점으로 표현했다. 이렇게 하면 마을 전체를 한 화면에 압축해 담으면서도 마을을 이루는 각 지점의 특징을 빠짐없이 부각할 수 있다. 호크니는 이 마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노르망디 체류 시기에 같은 구도의 그림을 여러 점 그렸다. 2022년에 국내에 출간된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에는 화사하게 채색된 그림이 도판으로 실렸다.     


Beuvron-en-Auge, Panorama (2019) © David Hockney/Galerie Lelong

   

경매 정보

제목서울옥션 한여름 경매 축제 <Art Life Balance>

경매: 2024년 7월 23(오후 2

전시: 2024년 7월 23()까지

장소서울옥션 강남센터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864)

문의: 02-395-0330

작가의 이전글 붓 대신 손톱, 손톱 대신 피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