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110) 윤협 <NEXT EPISODE: COEXIST>
윤협 작가의 그림을 처음 본 건 어느 미술품 경매 프리뷰 전시였다. 도시의 밤을 수놓은 불빛들을 다양한 색의 굵은 선과 점으로 표현한 작품이 꽤 매력적이었다.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흐리게 하면 도시의 빛은 뿌옇게 흐려진 덩어리로 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형태가 희미해질수록 감각은 더 생생해진다. 일정한 굵기의 점과 선이 끊어지고 이어지는 형상은 캔버스 위에 그려진 악보처럼 묘한 리듬감을 자아낸다. 최근에 새로 접한 서울 그림 가운데서 단연 주목할 만하다 여겼다.
올해 상반기에 윤협의 대규모 개인전이 무려 석 달 동안 롯데뮤지엄에서 열렸다. 전시를 못 본 터라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윤협의 예술적 뿌리가 거리 예술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롯데뮤지엄이 보여준 전시 행보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대로 도록을 구해 필요한 도판을 확보한 것으로 만족하고 있던 차, 이번엔 탕 컨템포러리 아트에서 또 다른 개인전이 열린 덕분에 윤협의 작품을 직접 볼 기회를 얻었다.
82년생 윤협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 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운영하는 피아노 학원에서 바이올린을 8년 배웠다. 악보에 따라 연주하는 클래식보다는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을 더 즐겼다. 아홉 살부터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자연스럽게 스케이드보드 문화와 DIY(do it yourself) 문화를 받아들였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음악적 유산, 그리고 스케이트보드로 대변되는 거리 문화가 윤협 예술의 뿌리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윤협은 2010년 스물여덟 나이에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지금까지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걸으면서 보는 세상과 달리면서 보는 세상은 다르다. 자전거를 타거나 자동차를 타고 가며 보는 세상 또한 다르다. 스케이드보드를 타고 달리면서 보는 세상은 또 다르다. 다른 속도로 거리를 질주하며 지면의 요철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윤협은 스케이트보드 위에서 도시를 다르게 체험했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창작의 과정과 스케이트보딩은 정신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무엇을 상상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용기,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칠전팔기와 같은 인내력이 창작활동을 유지하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 지금도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잠시나마 정신적인 자유를 느끼곤 합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마음의 긴장을 풀고 자유롭게 선을 그리거나 임팩트 있는 리듬으로 트릭을 하기도 합니다. 캔버스나 종이 위에 선을 그리는 과정 중에도 비슷한 감각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