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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근 Nov 21. 2022

[시리즈]13. 웹소설의 모티프, 빙의

관계의 카타르시스와 클리셰 비틀기에 특화된 장르로서 '빙의물'

흔히들 웹소설의 삼대장으로 일컫는 것이 '회빙환', 즉 '회귀, 빙의, 환생'이라는 모티프다. 이 세 모티프는 플롯의 '뒤바뀜' 즉 반전까지의 지루한 과정을 생략하고 곧장 해소과정 즉 카타르시스적 전개를 시도하기에 매우 유리한 서사적 장치라는 것을 이전 글에서 살펴보았다. 결과적으로 회귀, 빙의, 환생은 타 장르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웹소설만의 특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빙의'는 '회귀, 환생'이라는 앞의 두 모티프와 다르게 어떤 고유성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빙의물은 말 그대로 '빙의()'라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영혼이 옮겨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결코 말 그대로 귀신이나 악령이 신체에 빙의한다는 주술적 맥락으로서가 아니라, 웹소설 판에서는 타 세계에 존재하는 몸으로 옮겨간다는 맥락으로 쓰인다. 이렇듯 빙의물은 어떤 계기로 현재의 삶으로부터 빠져나와 새로운 몸으로 진입하기에 필연적으로 원래 몸의 인격과 길항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대부분의 경우 '빙의물'은 다음의 패턴 중 하나로 전개된다.


a. 어떤 육체로 전이된다. 그 육체를 주인공이 온전히 사용한다.

b. 어떤 육체로 전이된다. 그 육체의 원래 인격과 갈등한다.

c. 어떤 육체로 전이된다. 원 인격은 봉인되어 있거나 침묵을 지키고, 주인공이 육체를 조종하며 상황을 타개시킨다.


대부분의 경우 a가 주를 이루고, b c는 좀처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몸을 빌려쓴다고 할때 독자에게 특유의 찜찜함을 남겨줄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구분은 형식적인 구분으로 가능할 수는 있어도 실제로 서사 이해에 있어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는 구분은 아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바리에이션의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으며, 웹소설은 그 자체로 클리셰의 정형화와 그 클리셰 비틀기의 반복으로 새로운 방향성을 꾸준히 개척한다는 장르적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좀 더 구체적인 맥락에서 빙의물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알려져 있는 것처럼 빙의물은 앞의 두 모티프에 비해 다소 고도화된 모티프이기에 상대적으로 수요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앞에서 제기된 두 장르의 장점을 모두 획득하는 사후적 장르라고할 수 있다. 빙의물은 작품마다 컨셉이 다양한데 대체로 기본적인 뼈대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이 그가 읽었던 만화나 소설 혹은 게임으로 들어가 그 결말을 '아는 상태'에서 예정운명을 뒤집으려는 이야기. 따라서 이를 해체해보면 ① 정해진 운명 즉 흘러간 과거를 뒤집으려는 의지와 더불어 주인공은 앞으로 일어난 사건을 모두 알고 있다는 회귀물의 특성을 획득할 뿐만 아니라, ② '새로운 세계로의 이동'하여 일어나는 카타르시스라는 환생물의 특성을 모두 획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빙의물은 앞의 두 모티프보다 진일보된, 그리고 두 모티프의 장점만을 가져가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읽어낼 수 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가을의 동해바다


물론 빙의물에는 두 모티프에 없는 특징도 존재한다. 환생물은 전적으로 서사의 전개 특성상 주인공의 행보에 초점이 맞춰지며 욕망 해소라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므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는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즉 환생물을 구성하는 주변 인물들은 하렘을 구성하는 인물들이라거나 혹은 주인공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매개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대조적으로 회귀물은 주인공이 후회하는 과거로 돌아가 잘못된 일들을 바로 잡아가는 과정이기에 카타르시스가 존재하지만 다소 리얼리즘 즉 현실적이며 인물들의 관계들 역시 무겁게 다뤄지는 경향이 없지않다.


이를 염두에 두고 빙의물을 본다면 빙의물이 각각의 단점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알 수 있다. 빙의물은 주인공 자신이 아는 정보를 통해 사건 해결을 이뤄가나 그 특유의 내용으로 인해 내용이 무겁게 다뤄지지 않고, 이 해결 과정에서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계 변화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존재한다. 즉 주인공이 빙의될 때 그 대상은 주연인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악역이거나 비중이 없는 엑스트라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작중 상대적 약자로 설정된 주인공은 강제로 던져진 세계 속에서 주체적으로 살아냄으로써 주변 인물들의 고정관념들을 깨뜨리고 반전을 이끌어내는 데에서 오는 쾌감을 강렬하게 묘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빙의물은 회귀물과 다른 의미로 '관계 반전으로부터 오는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내고 있는 셈이다.


일례로 <역대급 영지 설계사>에서 실제 주인공 김수호는 소설 속 주인공 '하비엘'이 아닌 일회용이었을 서브 캐릭터 '로이드 프론테라'에게로 전이되어 그에게 닥친 소설 속의 예정운명을 극복해야할 뿐만 아니라, 원래 몸이 과거 행해온 행적 때문에 굳어진 주변 인물들에게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일을 동시에 해낸다. 이 과정에서 운명을 극복하는 서사를 이행하는 동시에, 주변 인물과 영지민들에게 '개차반'이었던 이미지 고치고 스킬 포인트를 받는다.(마치 게임 시스템과 유사한 형식이다) 주인공은 이 포인트를 활용해 스킬을 개발하고 자신의 능력에 도움이 될 서포터도 뽑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소설의 설정이 다분히 작가 편의적으로 설정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독자들도 그 사실에 별로 개의치않는다. 다시 말해 이러한 설정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조직되어 있느냐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설정들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얼마나 잘 뽑아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빙의물은 또 하나의 특징을 갖는다. 바로 '클리셰 비틀기'이다. 안상원은 빙의물이 클리셰 비틀기와 상호텍스트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클리셰 비틀기'와 '상호텍스트성'은 모두 하나의 원인 즉 원작이(혹은 우리가 아는 경험)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가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렇듯 빙의물은 독자가 무수한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스테레오 타입의 플롯을 어느 정도 경험하고 인지하고 있다는 전제하(클리셰)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때 '스테레오 타입'은 그간 무수히 반복되어져오면서 정형화된 서사적 양식들을 의미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장르적 관습'들을 가리킨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스테레오 타입의 익숙한 관습을 깨뜨리는고 그 내용을 뒤집는 데에서 독특한 낯설음이 생겨난다는 사실이라 하겠다.





여기까지 빙의물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다뤄보았다. 사실 빙의물은 필자가 그다지 많이 관심있게 본 장르가 아니라서 퍽 깊이있는 내용을 쓰기는 어려웠다. 물론 이 시리즈는 가볍게 정리하는 글이기때문에 크게 문제없으라고 생각된다. 언젠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향후 빙의물 작품 몇 편을 분석하면서 본 글의 내용을 다시금 수정해보고 싶다. 이 글은 이쯤에서 매듭짓고 다음 글에서는 좀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주제로 찾아오고자 한다.




참고문헌

나의 기억 그리고 나의 생각

유인혁, 「한국 웹소설 판타지의 형식적 갱신과 사회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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