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온 김에 딸을 만나러 갔다. 거의 한 달 반 만에 얼굴을 봤다. 기숙사로 찾아갔는데, 오랜만에 나를 본 딸은 엄마 살이 너무 많이 빠졌다며 놀라워했다. 전과 다르게 헐렁 핏이 된 바지를 보며 “엄마 나보다 몸무게 적게 나가는 거 아니야?”라고 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더 찌지 않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딸에게 필요한 물건과 준비한 과일 등을 줬다. 입이 짧은 편이라 많이 준비하지 못했는데, 좀 더 가져올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엄마의 마음이 이런 걸까? 한 번 꼬옥 안아줘야지 했는데, 혹시 모를 코로나 때문에 그것도 못했다.
벚꽃 잎은 많이 떨어졌지만, 지나가는 봄이 아쉬워서 벚꽃이 많이 피는 쪽으로 드라이브를 했다. 나무 밑에서 사진도 찍고 꽃비도 맞아야 하는데, 다음 주 항암이 있어서 몸 사리느라 차에서 내리지 않고 눈으로만 봤다. 환자복만 한참 입다가, 사복을 입으니 이상했다. 어떻게 입어야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작년엔 병원에 있느라 꽃도 제대로 못 봤는데, 올해는 질리도록 봤다. 2023년 봄의 벚꽃과 개나리.
3차 항암 주사를 맞는 날이 됐다. 그전에는 요양병원에 있다가 항암 주사를 맞으러 갔었는데, 3차 때는 집에서 쉬다가 가게 되었다. 그랬더니 더 가기 싫고 기분도 이상했지만, 이번에도 저번처럼 잘 맞겠지, 어차피 맞을 거 용기 내서 가자고 결심했다. 입원 수속도 잘하고 남편과 헤어져서 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는 간호 간병 통합 병동으로 올라갔다. 씩씩하게(요즘 스스로에게 씩씩하다는 말을 자주 하네.) 검사도 하고, 링거를 맞기 시작했다. 5시부터 맞아서 그다음 날 2시쯤에 마무리되니 얼마나 긴 시간인지… 손에 꽂은 링거가 불편하지만 견딜만했다. 아니 견뎌야 했다. 온몸이 피곤했지만, 요양병원 언니들의 응원을 떠올리며 힘을 낼 수 있었다.
주사 맞는 날짜가 참 빨리 돌아오네요...
다 맞고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라 다시 요양병원으로 갔다. 복잡하고 의미 없는 꿈을 꾸느라 잠을 편히 잘 수 없었다. 그리고 입맛이 뚝 떨어져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입도 텁텁했다. 밥은 손톱만큼 두 젓가락 정도 먹고 모든 그릇의 뚜껑을 닫았다. 살이 계속 빠지니 뭐라도 먹어야 했는데, 같은 방 언니들이 먹을 걸 챙겨줘서 그나마 나았다. (언니들은 나처럼 먹는 것은 지장이 없는 편이라 외부 음식도 종종 드셨다. 그리고 항암때는 잘 먹어야한다며..!!)
어떤 날은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목이 꽉 막힌 느낌이 들어서 너무 불편했다. 소화제를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고, 혹시 몸에 이상이 있나 싶어서 종일 신경 쓰였다. 그야말로 정말 환자스러운 모습으로 병실에 있었다.
나를 먹여살리기 위한 언니들의 노력...ㅠㅠ
처음 요양병원에 입원했을 때부터 같은 방에 있던 언니가 퇴원을 했다. 짐을 챙기며 퇴원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 나는 언제쯤 이 병원에 다시 오지 않게 될까. 싶었다. 짐 정리를 지켜보며 내가 지나야 할 과정이 아직 더 남았다는 것에 한숨이 나왔다. 의식적으로라도 이제 이거밖에 안 남았어,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는데, 괜히 짜증 날 때는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았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얼른 나아서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은데 뜻대로 잘 안 돼서 심술이 났다.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 현재 발행 중인 ‘없는 여자’ 시리즈는 작년 위암 진단 및 수술 후, 마지막 항암까지의 스토리를 회상하며 썼습니다.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생활은 다른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걱정해 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