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즐겁게 살아야지 결심했는데, 그 기분을 완전 상하게 하는 일이 있었다. 지난번 집수리를 할 때 못한 게 있어서 마저 하고 있었는데, 그게 다 아이들 작품 파일이거나 내가 직장 다닐 때 모아뒀던 자료, 그리고 자잘한 문구류였다. 남편은 버릴 건 다 버리라고 했는데, 그 말을 집수리할 때부터 백 번은 더 들은 것 같아서 예민해져 있었다.
그러면서 남편 아는 분 중에 암 투병 중인 분이 계신데, 그분은 전에 쓰던 거 다 버렸다고 했다. 난 예민해진 상태에서 그 말을 꼬아서 듣고, “그럼 나 이제 죽을 거니까 쓰던 거 다 버리라는 거야?”라고 소리 질렀다. 아주 기분이 더러웠다. 입방정 떨기 싫었지만, 안 그래도 불안한 암 환자가 이런 소리까지 하게 만들어야 하나 싶어서다. 그날 하루는 계속 우울했다.
이 시기 사진은 다 우울하다. 얼굴과 피부 상태는 심각해서 차마 올릴 수가 없다..!... 항암제 처방전으로 대신한다...
딸은 알바 다녀와서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아들은 갑자기 오른 열이 떨어지지 않아 불안 불안하고, 남편은 괜히 자기가 기분 나쁘다는 것처럼 데면데면했다.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해서 일찍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나한테 말하는데, 그날은 그것도 못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짜증 나고 욕이 나오는 하루였다.
먹는 것은 여전히 신경 쓰였다. 수술 전보다 17킬로 이상이 빠졌다. 인스타에서 음식 만드는 영상을 보면서 따라 하려고 찾아봤는데, 내가 찾아본 영상의 대부분이 간단한 반찬 만들기에도 고춧가루나 후추가 많이 들어갔다. 교수님은 매운 음식을 먹어도 된다고 하셨지만,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입 터져서! 감당이 안될까 봐 스스로 절제하고 있었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고춧가루나 후추가 들어간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는 상황에 그런 레시피만 보고 있으니. 물론 그것이 빠진다고 해서 맛이 달라지지 않는 음식도 있겠지만, 이도 저도 아닌, 그리고 하기 싫다는 게으름에 먹는 것이 귀찮아졌다. 남편은 마트에 갈 때마다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묻고 식판에 식사까지 차려주지만 미안하게도 입맛이 당기지 않았다. 환자 영양식인 음료를 마셔도 뒷맛이 텁텁해서 그것도 먹기 싫었다.
저번에는 엄마랑 통화하면서 먹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엄마가 당분간 집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도 일을 하시는 상황인데 나 때문에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도 요즘 허리가 아프다고 하시는데, 그건 그것대로 내가 보기 힘들 것 같고.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 현재 발행 중인 ‘없는 여자’ 시리즈는 작년 위암 진단 및 수술 후, 마지막 항암까지의 스토리를 회상하며 썼습니다.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생활은 다른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걱정해 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