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없는 여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이 Sep 07. 2023

인생일기 26.

항암은 여기서 끝입니다.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 항암인 8차 주사를 맞을 시기가 되었다. 항암 주사를 맞으러 가기 며칠 동안은 오전 시간에 카페에 가서 책도 보고 차도 마셨다. 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는 오전에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사람들이 제일 부러웠는데, 이제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더 자주 했을 일을 아프다 보니 요 며칠 외에는 전혀 해보지 못했다. 나갔다가 괜히 넘어질까 봐, 앞이 두 개로 보여서 사고 날까 봐, 화장실 때문에 등등... 이유가 많았네. 사람이 거의 아니면 아예 없는, 집과 가까운 카페를 찾아가서 나름의 작업을 하다 보니 해방감을 느꼈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면역력이 좀 나아지면 찜해둔 곳 여기저기 돌아다녀야지.     

마지막 주사 맞는 날.

주사를 맞기 전날에는 기분이 이상했다. 이제 마지막 주사구나, 약도 이번만 먹으면 끝이구나. 병원에 갔을 때, 교수님이 “항암은 여기서 끝입니다.”라고 할 때 느낌이 이상했다. 몇 년간 계속 끌어가며 나를 힘들게 할지도 몰랐던 항암치료가 끝난다고 하니. 기분은 좋았지만 걱정도 많이 됐다. 교수님은 재발이나 전이가 되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항암치료라고 하셨다. 그런데 항암이 끝난다고 하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됐다. 그 와중에도 염색이랑 파마해도 돼요?라고 묻는 내 모습이 철없고 오버라고 생각됐지만, 초췌하고 환자 같은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물론 하더라도 한~참 뒤에 할 거지만.   

  

주사를 맞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혈관을 잘 못 찾아서 주사를 잘못 찌르고 한참 걸렸다. 혈관이 얇은 편이라 찾기 힘든 점도 있지만 아파서 짜증이 났다. 하지만 환자 앞에서 민망하겠다, 아프지만 조금 참아야지, 하며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살짝 잠이 들었다가 깨서 노란 봉지에 든 항암주사를 바라보며 얼마나 남았나? 계속 확인했다. 몸에 수액이 들어가니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주사는 아직 많이 남은 것 같고.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저번보다 주사를 빨리 맞기 시작해서 얼른 끝날 거니까,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주사를 다 맞고 집에 오는 길에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비록 먹는 약은 있지만 마지막 항암 주사까지 끝냈으니 축하하고 싶었다. 나는 이제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튼튼하고 멋진 모습을 살 거니까 새로 시작하는 한 살의 의미로. 하지만 그것도 며칠이 지나셔야 할 수 있었다. 식구들이 다 모여서 하려니 시간이 잘 맞지 않았다. 내가 징징거렸더니 남편은 초코파이로 하자고 했다. 하…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답답했다. 결국엔 케이크로 하긴 했지만.

항암을 잘 마무리하고 새로 태어난 기념으로 축하!




< 현재 발행 중인 ‘없는 여자’ 시리즈는 작년 위암 진단 및 수술 후, 마지막 항암까지의 스토리를 회상하며 썼습니다. (2022.8월까지... 어느새 1년이 지났네요)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생활은 다른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걱정해 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일기 2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