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실은 없지만 그래도 써야지
글이라는 것을 쓰지 않은지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간단간단한 기록들은 텀블러에 남겨 두었지만, 그렇다할 긴 글을 쓴 적은 없었다. 얼마나 별다른 고민이나 사유없이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겠지. 그래도 다행이라 할 것은, 하루하루를 기록하기 위해 굿노트에 다이어리 꾸미기를 했단 것 정도랄까. 물론 다이어리를 들춰보면 작년 한해는 정말 클라이밍밖에 하지 않은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우울할때 보통 글을 썼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 모두가 '함께'지만 '나'는 혼자 남겨진 듯 한 기분을 받을 때, 절대 빠져나올 구멍이 없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을 느낄 때. 그럴 때 글을 썼다. 그런 날에는 뭐라도 싸질러 놓아야 마음이 정돈이 되었고, 글을 쓰며 이런 일은 내 인생에 으레 있는 일임을 다시금 상기하며 괜찮다고 다독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 아무렇게나 싸질러 놓은 문장들이 이상하게도 꽤나 마음에 들었었다.
오늘 타자를 치고 있는 것도 당연히 그런 감정들이 스물스물 올라와서다. 근 몇달간, 아니 지난 1년간 별다르게도 우울의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을 느낀적이 없었다.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고민이 없었고, 고민을 하지 않았으니 자연스레 세상 살이에 대한 사유도 없었다. 그저 일, 운동, 일, 운동만 반복하는 삶이었다. 사실 그 삶에 크게 불만족하지는 않는다. 우울이라는 그 기운은 그 존재를 처음 알아차린 순간부터 지난 10년간 나를 너무나도 괴롭혀 왔고, 또 내 주변사람들을 괴롭혀 왔으니 말이다. 하루가 일과 운동, 혹은 콘텐츠 소비로만 가득 찬 단순한 삶으로 부터 오는 하나의 작은 선물은, 우울의 구렁텅이에서의 탈출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이 우울의 감정이 반갑다. 우울의 구렁텅이에서의 탈출 이라는 작은 선물 상자를 잠깐 옆으로 비켜 놓아두고 이 감정을 약간은 즐길만큼 말이다. 오랜만에 오랫동안 켜지 않아 방전되어 버린 맥북을 켜고, 브런치에 로그인 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이 반갑다. 사실 딱히 쓰고 싶은 것은 없다. 그저 이 순간의 감정을 기록해놓고 싶다는 생각 뿐. 이 우울의 감정이 나에게 조금은 자극이 되어, 다시 고민하고 사유하고 생각하는 하루를 보내는 원동력이 되기를. 고개를 삐쭉 내밀고, 나에게 '야,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생각좀' 이라고 말하는 이 우울과 원동력에게, '아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야-' 라고 말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