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 개집살이 52
한국 가정에서 김치는 필수다. 아무리 간단하게 해먹는 집이래도 김치는 기본으로 당연하게 깔아놓을 것이다. 특히 어른들은 옛날부터 김장을 한 해의 가장 중요한 행사로 여기며 집안의 여자들을 괴롭히곤 하지 않았는가.
우리 시어머니도 김치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어른 중 한명이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요리 솜씨가 대단하신 편이 아니라 본인이 김치를 담그시진 못한다.
주로 자신의 언니들(나한테는 시이모님들)한테 받아오신다. 시어머니는 시이모님 댁에서 김치를 얻어오실때마다 공치사가 대단하시다.
"이거 엄마가 안가져왔으면 먹을꺼 없어서 어쩔뻔했냐."
주로 이런 식의 공치사다. 처음에는 나도 무거운 김치통을 가지고 오셨을 시어머니의 노고도 헤아리고 연세 지긋하신 시이모님이 김치를 주셔서 감사했지만 문제는 시어머니의 이중적 태도였다. 그렇게 시이모님들한테 받아온 김치는 김치로 여기시면서 우리 친정에서 보내준 김치에는 무반응이었다. 심지어 시이모님의 김치를 다 먹고, 우리 친정에서 온 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김치가 없다'며 당신 언니께 징징되는 통화를 하고는 하셨다. 나는 꼬박 꼬박 시이모님의 솜씨를 칭송하며 반응해 드렸는데 말이다.
한번은 시이모님이 오이김치를 해주셔서 오이김치를 먹어보는데 내 입맛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머, 이모님 오이김치도 참 맛있게 담그시네요."
이렇게 말했다. 시어머니는 내 말에 어깨가 으쓱해지셔서 말씀하셨다.
"은정이도 지 시어머니가 오이김치며 배추김치며 다 담궈주는데 그 집이 바닷가쪽 사람들이잖냐. 그래서 아주 김치에 젓갈이나 생선을 많이 넣어서 비리다고 엄마가 해준 김치가 최고라고 그러드라."
아...이런거는 모녀끼리만 알고 있으면 좋았을텐데....
시어머니의 말을 듣고나니 우리 친정김치는 뭐라고 흠잡으셨을지 짐작이 됐다. 우리 친정도 바닷가쪽이라 생선이나 젓갈류를 즐겨 쓰신다. 반면 시이모님 김치는 시원한 감칠맛보다는 깔끔한 맛이 인상적인 서울김치(?)라고 할수 있었다. 나는 그래도 깔끔한 맛의 김치도 맛있다고 생각하고 거듭 예찬하며 먹었는데...
제 아무리 자기집 김치가 최고라해도 김치란 그 집안의 대표적 음식이다. 그 집안 식탁의 뿌리, 혹은 가풍과도 같은 음식을 함부로 말씀하시는 모습이 나는 왠지 불편했다. 이 세상에 본인집 김치만 맛있는건 아닐텐데..심지어 본인이 담그는 것도 아니시면서...마음이 여러모로 착찹했다.
내 이런 마음을 알아서였을까? 신랑은 친정엄마가 김치를 보내주실때마다 제일 맛있게 먹는다.
"음~ 진짜 장모님 김치 솜씨 최고야! 이거 익어도 맛있겠다!"
"나는 딴 반찬 없어도 돼 장모님이 이번에 보내주신 김치랑 먹을래"
그러면 시어머니는 또 그 앞에서 무반응으로 계신다.(삐진것 같기도) 이제는 그 무반응 속에 시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지 대충 짐작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