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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파노라마

2025.03.10

by 김채미

지하철은 한산했다. 이런 적이 드문데. 항상 사람들 사이에서 쥐포처럼 끼여있다가 사람들이 듬성듬성 있는 것을 보니 생경했다. 더구나 의자에 앉아있었다. 연차를 쓴 평일은 이래서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들고 유튜브를 클릭했다. 어젯밤에 보았던 한 감독의 인터뷰를 마저 볼 심산이었다. 에어팟을 꽂고 블루투스를 막 연결한 순간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내 앞에서 나는 소리였다. 고개를 드는 순간 내 앞에 쓰러져있는 한 아저씨의 얼굴이 들어왔다.


주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의자에 던지고, 에어팟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괜찮으세요? 괜찮으세요?" 나를 포함해서 두 세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아저씨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자 눈을 감고 있던 아저씨가 반쯤 눈을 뜨고 괜찮다며 중얼거렸다. "옷을 풀러야 합니다!" 한 남자의 말에 우리는 아저씨의 외투와 바지 버클을 풀고, 신발과 양말까지 벗은 다음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어요?"라며 말을 걸었다. 그 와중에 주변에 있던 분들이 제각각 핸드폰을 켜고 119에, 지하철 기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지하철이 멈추고 역무원들이 뛰어왔다. 다음 역에서 환자를 내보내면 그곳으로 출동하겠다는 119 대원의 말에 일곱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아저씨를 번쩍 들어 올렸다. 우리는 역무원과 함께 계속 아저씨의 상태를 살폈다. 아저씨는 손을 내저으며 가셔도 돼요. 괜찮아요.라고 연신 말했지만 자리를 떠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역무원이 "119 대원이 곧 온답니다. 저희가 있을게요. 혹시 모르니 연락처만 남겨주시겠어요?"라고 말하자 한 명씩 이름과 전화번호를 수첩에 적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자 아저씨는 의자에 누워있는 채로 일일이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넸다. "아가씨 고마워요. 조심히 가요. 괜찮아요." 나는 울컥하는 마음을 꾹 누를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에서 쓰러진 사람을 목격한 게 1년 새 4번이나 되었다. 옆자리에 서있다가 졸도한 여학생, 의자에 앉아있다가 의식을 읽은 아주머니, 갑자기 쓰러지셨던 또 다른 아저씨. 집으로 돌아가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다행히 모든 분들이 의식을 되찾았지만, 지하철에서 이렇게나 쓰러지는 사람이 많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었다. 아픈 사람들이, 힘듦이 가득한 사람들이 좁디좁은 지하철에 갇혀서 미래를 막막하게 나아가야 하는 사실이 그들을 괴롭게 만든 건 아닐까. 지병이 있는 사람도, 돌보아야 할 아이가 있는 부모도, 아픈 부모를 돌보아야 하는 자식도,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하는 젊은이도, 모두 전철을 타야 한다. 단 1mm의 공간도 없는 출근길과 퇴근길에 올라 하루를 보내야 한다. 마치 진공포장처럼 꽉 매어진 공간에서 숨이 트일 곳은 없다. 숨 쉴 공간조차 없는 지하철 칸이 사람들의 뇌와 심장을 조이는 게 아닐까.


"내가 힘든 일이 있었어서 그래. 그래서 많이 놀랬나 봐. 갑자기. 지금은 괜찮아요. 괜찮아요." 연신 괜찮다며 오히려 모여든 사람의 안위를 묻는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지하철 창문을 바라보았다. 높고 차가운 건물과 깊은 강이 빠르게 지나갔다. 푸르고 검은 선으로 이어진 파노라마 안에 내 모습이 비쳐져 나는 메고있던 가방 끈을 느슨하게 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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