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myo Jul 30. 2021

내 안의 어린아이

건강하게 자랐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약 180일 이상 동안 브런치 글을 못썼다. 아니, 안 썼다.

유튜브 영상도 올리지 못했고 그냥 일하고 누워있고 일하고 누워있고

가끔 그나마 사진 촬영하러 나가고, 여행하고 그렇게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나날을 보냈다.


그냥 평범만 했을까, 역시 또다시 무기력감과 우울증이 찾아왔는데

이번엔 정말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퇴사를 앞둬서 그런가,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라 그런가.

몸도 안 좋아지고 있던 찰나 빨리 회사 다닐 때 건강검진을 하자 싶어 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이전과 똑같이 쇼크가 와서 기절을 해버렸다.

그동안 완전히 정신을 잃을 정도로 기절하진 않았었는데 이번에 정말 기억이 안 날정도로 기절을 해버려서 안정을 취하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이런저런 말을 건네시다가 그 한마디를 듣고 갑자기 눈물이 났다.


" 보호자는 어디 계세요? 보호자랑 같이 안 오셨어요? "


혼자 온 게 그렇게 서러웠던 건지, 너무 당황하고 놀라서였던 건지, 창피했던 건지

침상에 누워 정말 복합적인 감정이 휘몰아치니 감정이 앞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다시 심리 상담을 시작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나를 전담하시는 상담사 분이 상담을 잘한다고 느끼진 않지만, 임상적인 수준에서 나는 얼마나 문제가 있는 건지 궁금해서 여러 가지 난해한 테스트를 하고 해석 상담을 받았다.

특정 점수 이상이면 빨간 불이 켜졌다는 표현을 쓰는데, 나는 많은 부분에서 빨간 불이 켜진 상태인 데다

자살을 시도할 확률도 높은 수준이라 장기적인 상담이 사료된다고 판정을 받았다.

작성한 설문지를 보니 어릴 때부터 침체된 정서를 경험하고 있어 일상생활을 처리하는 일이 버겁고 쉽게 피로감을 느끼고 있을 것으로 보이고 이로 인한 신체적인 기능 장애에 대한 점수도 높은 편으로 나왔다고 했다.

이 정도까지는 그냥 내가 예상했던 대로라,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기던 중 은연중에 내가 회피하던 나의 본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다.

동일한 자극이 와도 다른 사람들보다 예민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고,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신뢰감과 적대감이 많이 높은 편으로 정서적인 거리를 자연스레 두게 되고 스스로 차단하고 경계한다고 하셨다.

혹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으셨다.


짧지만 고민하고 나는 입을 떼었다.

"저는... 오히려 사람들을 너무 믿고 의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까진 의지하려 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더 경계하는 거 같아요. "


나는 사람을 정말 좋아한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도 좋아하지만 사랑을 받을 때에 그 안정감에 도취를 하게 되는데 그러다 상대방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친절하게 거절을 하면 크게 상처로 돌아온다.

' 나는 널 이만큼 사랑하는데? '

' 난 너를 이 정도로 애정을 갖고 친해지고 싶었는데? '

이런 유치한, 초등학생들이나 할 법한 사고를 하게 된다.

그저 단순한 애정결핍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이어서 선생님이,

"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왜 생기는지 아시나요?

그의 원천은 어릴 적 가족 관계로부터 오는데,

어릴 때 충분히 가족들에게 어리광 부리고, 떼쓰고, 화를 내고, 사랑을 받으며,

의지를 충분히 하게 되어 사람이 독립적이게 되고 단단해지며 어른이 되는 거예요.

근데 씨는 지금 어릴 때 그게 충분하지 못해 지금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싶어 지는 거예요.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사랑을 나누고 싶어 지는데,

미묘씨는 사랑을 나눈다기보다 '의존'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으로 보여요.

그런데 씨가 말씀하신 대로, 상대방이 씨만큼 의존하지 않으면 더 큰 상처를 받는 거죠.

아직 미묘씨 내면의 아이가, 그때로 머물러 있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





어릴 적부터 나는 애늙은이, 성숙하단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정말 다른 아이들보다 성숙하고 빨리 어른이 된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문득 정신 차리니 오히려 난 또래 친구들보다 성장하지 못하고 아직도 유치원생으로 남아있는 것이었다.

계속 글을 써왔듯 가족, 환경 탓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전부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운이 좋지 않아서, 남들보다 예쁘지 않아서, 그보다 실력이 좋지 않아서, 노력하지 않아서, 뭔가 애매해서...

내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하는 건 나 때문인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되었는데

그게 너무 혼자선 버거워 내가 의지하는 사람들이 못 미치는 사랑을 주면 그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이런 내가 너무 못되고 안쓰럽다, 그걸 넘어 미련하게도 계속 살고 있는 내가 싫다.

거울 속 나를 보면 너무 혐오스러워 부시고 싶을 정도다.

일을 할 때 무언가 애로사항이 생기면 나 때문인 거 같아 불안해진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이 내 아픔에 대해 묵인해주었으면 좋겠다.

얼굴을 보며 어두운 얘기를 하기 싫고 나의 치부에 대한 걸 오픈하기가 쉽지 않다.

동시에 나를 불쌍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어지지 않는 쓰라린 문장들이 계속 뇌를 파고든다.


이렇게 많은 생각 속에서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이 어린아이를 내가 어떻게 처음부터 다시 다스려야 할지였다.

멍청하게 서 있는 어린 나를 붙잡고 울고 있는 것만 같아 정신착란이 올 거 같지만,

내 속의 어린아이를 다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 하는 생각과 동시에

 만약 내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아니 이 세상 모든 어린아이들이 나처럼 침체된 정서에 머물지 말고 정상적인 사고로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크다.


가슴 가운데가 파도가 치듯 무언가가 넘실넘실 무겁게 짓누른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파도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빨리 쓸어내려갔으면 좋겠다, 부디..



 








매거진의 이전글 데미안 발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