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못 말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니들 알아서 해!

by 야생

난 왜 이렇게 못 말리는 엄마일까. 지난 주말 점심때 일이다. 남편이 식구들을 부른다. 밥 먹어! 하나 둘 식탁 주변으로 모여든다. 네모난 그릇에 고봉으로 담긴 코다리 조림이라니! 김이 모락모락 먹음직스럽다. 다섯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는다. 앞접시를 돌린다. 각자 알아서 요령껏 먹으면 되는 거다. 나는 결심한다. 접시에 담아주는 일은 하지 않으리!

큼직하게 썰어놓은 무맛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한참 먹다 보니, 저 녀석들 먹는 게 시원찮다. 손을 뻗어 코다리 덩어리를 접시에 담아준다. 큰 녀석이 와! 고마워요, 외친다. 이때다. 남편과 딸아이의 책망이 쏟아진다.


"그냥 알아서 먹게 나두라니까. 말과 행동이 달라."

"그러게 말이야, 심지어 저 멀리 팔을 뻗쳐 담아주는 건 뭐람."



남자애들이 미덥지 못하


나는 생선 발라주는 여자였다. 간고등어구이는 우리 집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메뉴다. 영양가 좋고, 맛도 좋고, 저렴하고, 간편하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문제는 가시를 바르는 것이다. 난 그동안 구이 접시를 통째로 끼고 살을 발라 각자의 밥그릇에 공손하게 놓아주었었다. 그들은 입에 쏙 넣기만 하면 되었다. 정작 나는 밥도 못 먹으면서. 지금 생각해도 참 지랄 같다. 그런데 왜 내가 그 짓을 그토록 오랫동안 하고 있었을까.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코스프레였던가.


이제는 그 짓을 그만 두기로 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왜 또 그랬는지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지금 떠오르는 생각은 그들이 미덥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두 아들 녀석들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지들 좋아하는 것만 골라먹다 영양실조 걸릴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딸아이는 야무지다. 남편은 먹든지 말든지 확실히 내 일이 아닌 것이 되었는데, 두 아들 녀석들에 대해서는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일들이 많은 거다. 내 겉마음은 이렇다. 그럼 내 속마음이 따로 있는 걸까.


설마 내가 아들 선호 사상? 남편이 놀린다. 아들! 아들! 하지 말란다. 딸도 좀 이상하다는 거다. 엄마가 남동생들을 더 좋아하는 것 아니냐는, 직접 말은 안 해도 그런 뉘앙스다. 그런데 적어도 나의 의식상으로는 아니다. 그냥 남자애들이 못 미더울 뿐이다.



집안일에 바보스러운 남자들


지난가을 있었던 일이다. 동네 산 벤치에서 햇빛을 쐬고 있을 때다. 7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어르신들이 옆 벤치로 우르르 몰려오셨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자식들 얘기로 흐른다. 귀가 뚫렸으니 들을 수밖에. 아주머니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하나 같다. 아들들은 무엇을 시켜도 미덥지도 못하고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안 대소사를 며느리들이 다 챙긴다는.


혹 남자 손이 필요하면 때를 봐서 사위를 시킨다는 것이다. 아들들은 불러도 들은 척도 안 하는데, 사위들은 부르면 재깍 일어서서 하는 척이라도 한다나. 아무래도 장모님이 어려우니까, 개길 수 없는 것이겠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어려서부터 안 해 버릇한 것이 지금 할 수 있겠어?"


어르신들이 정확히 보고 계신 듯하다. 정말 그렇다. 그들보다 한 세대 늦게 가는 나는 그들의 며느리 뻘 정도 되려나. 내 나이 또래 아줌마들의 목소리도 한결같다. 남편들이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전등을 가는 일조차 못한다나. 집안일은 집사람이 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 생각을 안 하는 건지. 진짜 못하는 바보 천치인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니들 알아서 해!


그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내 아들들은 그렇게 키우지 말아야겠다! 못 미덥다고 계속 이것저것 해주다가는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로 만들겠다는 위기감이. 요즘 시대 어느 여자가 그런 남자랑 결혼이나 하려 할까. 만약 운이 좋아 결혼을 한다 해도, 가정 불화의 원인이 된다면 그것이 모두 내 책임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들 알아서 하며 몸에 베이도록 하자. 이렇게 결심했었는데. 나의 몸이 나의 습관이, 나의 생각과 나의 결심을 배신한 것이다. 딱 잘라 버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못 말리는 엄마 근성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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