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 불리는 게 힘든데, 어쩌지요

수고도 나누고, 권력도 나누고, 행복도 나누면 좋겠어요

by 야생

엄마만큼 권력을 누리지 못하는 존재가 있을까요.


동등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수고와 권력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수고와 권력, 이것을 얼마나 잘 나누는가가 평등을 결정한다!


이 두 문장은 브런치 친구의 댓글을 통한 깨달음이다. 엄마들이 왜 그렇게 엄마의 역할을 힘들어하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수고한 만큼 권력이 따라오지 않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삶, 불평등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다. 수고만 많이 하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거다.


엄마로 불리는 게 힘들어요



며칠 전 브런치 나우에 올라온 글을 읽었다. 10살도 채 안된 세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였다. 세 아이들이 눈을 뜨자마자 잠이 들 때까지 얼마나 엄마를 불러대는지,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가 너무 힘들었단다. 그래서 10분 동안 엄마 부르지 않기 놀이를 했는데. 그 새를 못 참고 엄마를 부르더라는 이야기였다.


'엄마'라는 게 그냥 흘려들어도 되는 말이라면, 그렇게 힘들 이유가 없다. 대부분은 요구가 뒤따라오는 선행어다. 얼마나 힘들지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그 엄마의 심정에 공감이 되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세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 하나도 없겠어요. 저도 세 아이의 엄마입니다만. 아이들이 다 컸는데도 엄마라는 말에서 자유롭지 못하네요.'


그리고 하룻밤이 지났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제 단 댓글이 마음에 걸렸다. 혹시 나의 댓글로 그 엄마가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면 어쩌지. 그 엄마는 아이들이 엄마가 필요 없게 될 날을 기다리며, 이 소중한 때를 잘 견디자는 다짐을 했다. 거기다 찬물을 끼얹은 건 아닌지 싶었다. 그래서 브런치 나우에 들어가 한참 스크롤 한 끝에 그 댓글을 지웠다.


'아이들이 다 컸는데도 엄마라는 말에서 자유롭지 못하네요.'


이것은 지금도 나에게 유효하다. 자기들이 알아서 해도 될 일을 나에게 미루듯이 엄마를 불러대는 게 힘들다. 그래서 나는 안방으로 피신한다. 그리고 출입금지를 선언한다. 브런치의 엄마 이야기랑 나의 이야기랑 오십 보 백보다.



엄마 역할에 지쳤어요


엄마 역할을 하면서 딸과의 관계에서 실패한 기억이 있다. 딸이 대학에 들어가며 여유가 생겼을 때 양화진의 선교사 무덤을 방문하자고 하더라. 싫다고 했다. 같이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자고 그러더라. 그것도 싫다고 했다. 그랬더니 딸은 더 이상 같이 무엇을 하자는 말을 안 하더라.


오랫동안 그때의 마음이 해석이 안되었다. 왜 싫었는지 말이다. 죄의식과 씁쓸함만 가슴에 남았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일상에서 엄마의 역할에 너무 지쳐 있었다는 것을. 일상 외에 여행이나 쇼핑, 문화생활에서까지 엄마의 역할을 해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엄마라고 불리는 게 싫다. 20여 년 동안 너무 많이 들었고, 이제는 그 역할에 숨이 막힌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내 이름을 부르라고 했다. 친구 하자고 말이다. 더 이상 엄마로 살기 싫다고. 아이들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더라.


아이들에게 '미연아!'라고 불리는 게 굉장히 낯설 것이다. 어느 순간엔 괘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서로 익숙해지면 이것처럼 편한 관계는 없을 것 같다. 엄마 자녀의 관계가 아니라, 친구 관계로 거듭나는 거다.


딸아이는 곧 있으면 물리적인 독립을 한다. 한 달 전 주말에 남편과 함께 방을 구하고 계약을 했다. 며칠 전 평일에는 잔금을 치르고 본 계약서를 써야 했다. 딸은 나랑 같이 가기 원했지만, 나는 가기 싫었다. 이제는 다 알겠지만 엄마의 역할이 싫었던 거다.


결국 같이 길을 나섰다. 엄마에게 기대지 말고 알아서 척척하라는 말과 함께. 어찌어찌 일을 다 끝내고 쇼핑까지 했다. 근데 발걸음도 마음도 가벼운 것 아닌가. 아, 이제는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거다. 인간 대 인간으로 우리의 관계가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엄마에게 보상이 필요해요


수고한 만큼 사회적 보상이 따랐다면, 엄마로 산 세월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거다. 엄마의 희생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규정하고, 그렇게 살지 못할 때 죄의식을 심는 사회! 고귀하다면서 아무런 보상도 없는 삶! 솔직히 어처구니없지 않나. 이 모순과 불합리와 불평등을 몇십 년 동안 견디는 거다. 엄마의 삶이란 게. 얼마나 힘든지 안 살아본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다.


그러나 엄마의 삶을 옆에서 면밀하게 관찰한 딸들은 벌써 눈치채고 있는 듯하다. 딸아이 주변에는 결혼 안 하겠다는 친구가 많다고 한다. 결혼을 해도 자녀를 낳지 않겠다고 하는 친구도 있단다. 여자들이 똑똑해진 거다. 이 상태로는 지속 가능한 미래, 어렵지 않을까.


사회문화적인 인식과 함께 제도와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엄마들의 수고만큼 적절하게 권력, 즉 유형무형의 사회적 보상이 주어져야 된다. 더 나아가 수고도 나누고, 권력도 나누는 평등한 사회가 도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그럴 때 엄마도 행복하고, 자녀도 행복하고, 아빠도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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