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야, 너'로 부를 수 있어?

by 야생

마음이 끓는 냄비처럼 시끄럽다. 연락도 없이 늦어지는 그에 대한 화증이다. 부글부글! 부글부글! 불 조절이 쉽지 않다. 한번 확 끓어 넘쳐야 불이 꺼질 것 같다. 그에게 전화를 건다.


"야! ㅇㅇㅇ! 어디야?"(ㅇㅇㅇ은 그의 이름이다.)

"지금 집에 가는 중인데."


그의 목소리가 이상스럽게 차분하다. 맙소사! 차 안에 누가 같이 있는 거 아냐? 찬물을 부은 것처럼, 내 마음도 갑자기 진정된다.


"빨리 와~"


집에 돌아온 그는 자세하게 설명한다. 차 안에는 두 세명 직장 동료들이 같이 타고 있었다. 전화는 블루투스로 연결되어 있었고. 모두가 그와 나의 길지 않은 대화를 청취하고 있었다. 그보다 그들이 더 당황했다. 그들은 입 모아 이렇게 말했다.


"다 그러고 살아요. 우리 집도 그래요."


기특하게도 그의 당황스러움을 덜어줄 요량이었던 거다. 그와 나는 그 민망스러움을 호호 깔깔 웃으며 털어냈다.


그런데! 자기들도 다 그렇게 산다면서, 왜 그들은 그렇게 당황했던 걸까. 남의 가정사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금기가 깨어지는 순간의 당황스러움이었을까. 집에서는 지지고 볶고 살아도 그런 모습을 남에게 절대 보여서는 안 된다!?


그 사건이 있은 후, 특별한 일이 아니면 그에게 전화하는 것을 삼간다. 전화를 하게 되면, 전보다는 공손한 말투다. 나의 사생활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기 싫은 거다.

'우리도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 내 남편도 집에서 존경받고요.'


이렇게 과시하고 싶은 거다. 엎질러진 물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남편의 이름을 부르면 안 되나?


우리는 주민등록상 같은 나이다. 실제로는 내가 한 살 어리지만. 그와 나는 같은 해에 초중고를 입학하고 졸업했던 거다. 같은 동네에 살았다면, '야! 너!' 했을 사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부부로 만났기 때문이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아내가 남편을 '야! 너!'로 부르는 것이 용납될까.


지난번에 재난 지원금으로 이불을 사러 갔다. 나는 가게 안에서 이불을 골랐고, 그는 밖에서 어슬렁거렸다. 최종적으로 결정할 때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ㅇㅇㅇ!"

그랬더니, 바로 그 가게 주인 할머니의 훈계가 시작됐다.


할머니 집 아들 며느리도 CC란다. 얼마 전부터 같이 살기 시작했는데 며느리가 아들의 이름을 부르더란다. 할머니 입장에서는 황당했던가보다. 며느리에게 아들을 그렇게 이름으로 부르면 안 된다고 했단다. 남편이 집에서 존경받아야 밖에서도 존경받는다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아닌가.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는지 출처는 명확하지 않지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 느낌은 뭘까. 아하! 이것이 바로 사회문화적 인식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살며 식구들끼리 다 알고 지내는 친구가 있다.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에게 뭔가를 물어봤는 데, 그가 더 잘 알 것 같아서 핸드폰을 든 채, 그의 이름을 불렀더랬다.

"ㅇㅇ아!"

그랬더니 그녀로부터 즉각 반응이 왔다.

"ㅇㅇ아? ㅋㅋㅋ"

낯설었던 모양이다. 그의 이름을 애들 부르듯이 불렀으니 말이다. 아내가 남편의 이름을 부르면 안 되나? 남편들은 아내를 그렇게 많이 부른다고 하던데.



아내는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는 존재?


어떤 부부를 알고 있다. 그들 사이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같은 교실에서 공부한 친구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에게 '야, 너'라고 부르지만, 아내는 남편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쓴다고 한다. 애들 교육상이라고 하는데. 남편의 권위와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아내가 밑에서 깔아주는 이 상황, 좀 이상하지 않은가.


세상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의심스럽다. 삼종지도가 여전히 존재하는 건 아닌지.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삼종지도라니! 그런데 그 깊은 속은 변하지 않았다. 옛날에는 지표면에서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갔던 것이, 이제는 깊은 지하수가 되어 남성 중심의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그와 나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남들 보는 데서는 'ㅇㅇ씨!'로, 집에서는 'ㅇㅇ아!'로. 남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그의 이름을 부르기가 아직은 어렵다. 나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 연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독불장군과 같은 용기(?), 아직은 없다. 남들 앞에서는 부부의 모습으로 집에서는 친구로 사는 이중생활이다.



부부는 친구다


나는 밖에서도 서로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더 솔직히 말하면, 부부라는 틀을 깨고 친구로 살고 싶다. 나는 그에게 선언했다.

"24년 부부로 살았으니, 이제는 친구로 살자."


부부로 산 20여 년, 그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없었다. 위계 구조 가운데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역할만을 요구했다. 남편으로 아내로, 엄마로 아빠로. 그렇게 살다 보니, 사람은 사라지고 역할만 남더라.


부부의 틀을 깨지 않으면 계속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다. 그래서 그에게 친구로 살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더 많이 그의 이름을 부른다.


"ㅇㅇ아!"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를 '야, 너'로 부르는 만큼 그와 나 사이에 넘을 수 없었던 담이 허물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