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답게 살 때, 가장 인간답다

나답게 사는데 방해물은 뭘까?

by 야생

인간답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중에 하나는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어. '인간은 이런 존재다' 또는 '사회는 이런 곳이다'라는. 그런 기준에 근거해 수많은 법칙과 규칙과 질서를 만들고, 그에 상응하는 벌칙 또한 마련되어 있지. 벌칙을 가할 때도, 다 네가 잘되기를 바래서라고 하지. 정말 그럴까? 그 기준이란 누가 정할 수 있는 걸까? 그대로 살면 정말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벌을 받으면 인간다워질까?



영화 <하얀리본>은 이렇게 말해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하얀 리본>은 1913년 독일의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야. 그곳에는 지주를 중심으로 소작농들, 그리고 목사네와 의사네, 산파 등이 살고 있어. 영화는 의사가 낙마하는 장면으로 시작돼. 누군가가 쳐놓은 줄에 조랑말이 걸리고, 의사는 떨어져 팔이 부러지지. 그의 부인은 몇 년 전에 죽고, 산파가 그의 집과 병원일을 도와. 알고보니 그녀는 의사와 부적절한 관계였어. 시간이 지나 의사는 그녀가 역겹다고 하며 관계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해. 그때 산파의 폭로를 통해, 그 의사는 자신의 어린 딸을 성적 도구로 삼고 있었던 게 드러나. 그의 악행과 위선의 끝은 어디지?


한 소작농의 부인은 지주네 공장에서 일하다, 마루 바닥이 내려앉으면서 크게 다쳐. 끝내는 죽게 되는 데,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해. 이에 분노한 아들이 지주네 양배추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지. 이를 안 아버지는 아들을 구타하며 소작을 잃을까 전전긍긍해. 아이들이 어른들의 샌드백인가.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흑백 영화야. 그만큼 우울하고 끔찍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아. 아이들이 지주네 아들을 물에 빠뜨리고 피리를 빼앗기도 하고, 산파의 장애인 아들의 눈이 도려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과연 범인이 누굴까. 사건의 현장에는 항상 아이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려. 무언가를 다 알고 있다는 눈치야. 그 중심에는 클라라가 있어. 클라라는 그 마을 목사네 딸이고.


목사는 율법적인 사람이야. 아이들에게 복종과 도덕적 순결을 강요해.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자지러질 정도로 회초리 매질을 해. 자숙 기간에는 아이들 팔뚝에 흰 리본을 채우고. 수갑이랑 뭐가 다르지? 남자아이가 자기 몸을 만진다고 수치심을 심고, 잘 때는 손을 침대에 묶어놓기도 해. 목사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이 다 잘 되라고 하는 훈육이겠지. 과연 그럴까?



도덕과 벌칙으로 길러진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자기들의 아버지처럼 그렇게 살지는 않을까. 잘못하면 벌주고 심판하는. <하얀 리본>의 아이들은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 어른들이 자기들보다 훨씬 더 부도덕한 삶을 사는데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도덕이라는 잣대로 보았을 때,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아이들은 자기들이 배운 대로 부도덕한 어른들을 심판하기로 한 거지. 어른들을 직접 심판할 수 없을 때는 그 집 아이들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하얀 리본>에서 처럼, 도덕과 벌칙, 법과 심판으로는 탈출구가 없어. 그 기준을 다 지키는 사람도 없고, 그에 상응하는 벌로는 교정도 되지 않아. 단지 위선적인 인간만 양성할 뿐이야. 그 도덕적 인간은 다른 사람을 벌주고 심판하고. 악순환은 끊이지 않지. <하얀 리본>이 암울한 이유야. 어떻게 하면 이 고리를 끊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사이엔즈 입문>*은 이렇게 말해.


인간답게 사는 데 방법이 필요하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자연계의 동물이라면 동물답게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렇게 살기 위한 방법이란 필요하지도 않다. 오히려 동물답게 살지 않는 것이 드문 일이다. 아주 큰 환경 변화나 장애물이 있다면 모를까. 인간도 그런 점에서 동물과 똑같다.

동물도 식물도 살아있는 것은 모두 건강하게 그 존재답게 살아간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도 인간답게 사는 방향성이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목적은 생각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거나, 누군가가 가르쳐 줘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인간,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을 알고 자기답게 살 때 알 수 있는 것이다.


자기답게 사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란 말이지. 그러나 실제 우리의 모습은 어떻지? 인간을 규정하고, 도덕이라는 잣대로 재고, 벌칙을 부여하고.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자기답게 인간답게 살 수 없게 하는 방해물이지. 각자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 자연의 이치와 본성을 따라 살 때, 가장 자기답게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사이엔즈 입문>/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사이엔즈란 Scientific Investigation of Essential Nature와 Zero의 머리글자다. 사이엔즈의 목적은 인간을 알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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