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변화... 아내는 '악처' 이미지를 한 겹씩 벗는다
오랫동안 굳어진 생각과 습관을 바꾸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않은 일이다. 그런데! 남편은 50여 년간 몸에 밴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바꾸어 가고 있다. 옛 습관들이 두더지처럼 툭툭 튀어나올 때도 있지만...
얼마전 옆집이 이사 온 이래로 새벽까지 음악소리가 들려 아이들이 잠들기가 어렵다고 했다. 공동생활주택에서 소음 문제는 참 민감한 문제다. 그 소리가 정확히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아내기도 어렵다. 이웃 간에 무작정 물어보기도 조심스러운 일이다.
나는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한 후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요청했다. 과연 그가 내 부탁을 들어줄 것인가?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남편은 80~90%는 '당신이 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10~20%의 '알았어!'에 희망을 걸었다. 요새 그는 많이 변하고 있지 않은가. 역시나 그는 내 믿음과 희망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는 인터폰으로 경비실을 연결하여 앞뒤 사정을 설명하고, 소음 문제를 해결해주십사, 부탁했다. 응답은 바로 왔다. 우리의 예상대로 그 소음의 출처는 바로 옆집이었던 것이다. 일사천리로 일이 해결되는 것을 보고, 그도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나, 많이 변했지?"
"응, 진짜 많이 변했어!"
그도 알았던 것이다. 자기가 얼마나 남에게 싫은 소리, 아쉬운 소리 하지않는 사람인지. 그렇다면 그 싫은 소리, 아쉬운 소리를 누가 다 했겠는가. 주위 사람들은 이런 탓에 남편을 천상에 부드럽고 점잖은 사람이요, 나를 천하에 억센 사람으로 알고 있다.
인생 역전이다! 저 높은 구름 위의 세계에서, 지지고 볶는 땅의 세상으로 내려온 남편을 열렬히 환영한다. 머지않아 나도 '악처'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겠지!
셋째가 7,8개월쯤 되었던 추석 때의 일이다. 몇 시간 아이를 달래고 어르며 시댁에 도착했다. 잠시 쉴 틈도 없이 부엌으로 직행. 시어머니가 부엌에 계시기 때문이다. 씻고, 다듬고, 썰고, 삶고, 지지고, 볶고, 부치고...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어느 정도 부엌일이 마무리되었을 때, 부엌에서 쪼그리고 잡채를 먹고 있던 내게 툇마루에서 큰 형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방님! 어머니 모시고 황토 찜질방 가려고 하는데, 운전해줄 수 있어요?"
이 말이 방아쇠가 되어 나는 부엌에서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내 손에는 잡채 접시가 들린 채.
"형님이 운전해서 가면 안돼요? 형님도 운전하실 수 있잖아요. 남편은 애들 잠자리도 돌봐줘야 하고... 저 혼자서는 세 아이들을 돌보기가 어려워요."
분위기가 싸해졌다. 형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추 다듬던 일을 계속했다. 그 침묵을 뚫은 것은 바로 남편이었다.
"형수님! 제가 운전해서 갈까요?"
아, 이것만큼 골 때리는 말이 또 있을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나서긴 왜 나서?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려고 그랬을까. 시댁 식구들과 껄끄러워지는 것이 싫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와 아이들보다 시댁 식구들이 더 중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남에게 거절을 못하는 그의 성격일까.
이유불문하고 '남편이 내 편이 아니구나!', 뼈에 새겨질 정도였다. 나를 진흙탕에 남겨놓은 채, 자기 몸만 쏙 빠져나가 시댁 식구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남편이 야속했다. 덕분에 나는 애들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남편 발목잡는 '악처'가 되었겠지. 남편은 착한 서방님, 좋은 아들의 입지를 다졌겠고. 이 일은 오랫동안 쓰디쓴 기억으로 남아, 지금 이 순간까지 우려먹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악처'하면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티페가 회자된다. 그녀는 어떻게 '악처'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소크라테스는 돈벌이에는 관심이 없었던 듯하다. 철학을 한다고 바깥으로만 떠돌고 집에 안들어가는 날도 허다했던 것 같다.
소크라테스가 가정 다반사를 나몰라라 하니, 크산티페 혼자서 생계를 책임지고 아이들을 돌볼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겠지. 요즈음 말로 그녀는 독박 육아, 독박 가사, 독박 생계까지 3중의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이다.
어느날 화가 난 크산티페는 제자랑 토론하는 소크라테스의 머리 위에 물바가지를 퍼부었다고 하는데... 이것으로 크산티페는 동서고금 악처의 대명사가 되었고... 과연 크산티페가 '악처'일까. 만약 '악처'라면 그녀를 '악처'로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악처'가 아닌 양처는 자기 소임을 다하지 않는 남편까지 다 용납하며 사는 사람을 말하는가.
그 정황과 맥락 없이, 소크라테스는 4대 성인의 반열에 오르고, 크산티페는 '악처' 중에 '악처'로 이름을 날리는 이 부조리와 모순! 지금은 사라진 고대 그리스만의 이야기일까. 소크라테스 부부의 모습이 과거 우리 부부의 모습과 살짝 겹쳐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