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머리에는 짐 등에는 아이

'나 홀로 여행' 떠나고 싶지 않나요?

by 야생

혼자 여행을 떠나는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부럽지 않기도 합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지랄같은 마음이죠?


제가 '여행'을 싫어하는 걸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불과 몇 년 전까지 나는 '가족 여행'을 그다지 즐거워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주말에는 가까운 곳으로, 연휴 때는 제법 먼 곳으로 여행을 꽤 많이 다녔습니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말이죠.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 주고, 더 많은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서죠. 그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나 자신이 여행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압도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뒤치다꺼리지요. 저에게 여행은 온갖 것들을 챙기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여행지라고 해서 밥하는 일이 면제되는 것도 아니고요.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오는 일도 나의 몫이지요. 물론 다른 가족들이 뒷짐 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책임과 의무이고 그들에게는 가벼운 도움이었던 거죠. 클래스가 다르지요? 이런 입장이다 보니 여행이 즐겁기는커녕, 머리엔 짐을 등엔 아이를 들쳐업은 것처럼 힘겨운 것이었어요.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족 여행에서 나 자신을 빼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큰애가 고3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처음엔 큰 애가 수험생이라는 핑계로, 그다음엔 둘째가 수험생이라는 이유였습니다. 5인 가족에서 둘을 뺀 나머지 3명이 남편의 인솔 하에 단출한 가족 여행을 떠난 것이지요. 제주도, 거제도, 울릉도... 먼 곳으로. 소도, 무이도, 변산반도... 가까운 곳으로.


두 애가 대학에 들어가 핑계가 사라진 후, 나는 2019년 새해 다시 가족 여행에 합류했습니다. 2박 3일의 제주도 여행이었는데 그렇게까지 설레고 즐겁지 않더라고요. 아이들이 다 커서 각자 짐을 싸고, 밥을 다 사 먹었는데도 말이에요. 왜 그랬을까요? 객관적 상황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저는 엄마라는 틀에 매여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2020년 여름휴가는 달랐습니다. 큰 애들 둘이 여행지 맛집을 찾아 검색하고 안내하고 저는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하면 되었죠. 아무도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나 스스로도 의무감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고요. 아,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여행이 이런 거구나! 일상의 먼지를 털고 마음이 새로워지는 걸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죠. 이제는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조금 생겼습니다.




2019년 새해와 2020년 여름,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20여 년 동안 고분고분 엄마 역할을 다했던 내가 성난 황소처럼 여기저기 들이받는 일이 벌어졌던 거죠. 임계점에 도달했던 것이지요. 다행히 가족들이 이런 저를 받아들였어요. 그 결과 집안일이 온전히 저의 일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의 일로 전환되는 행운을 획득했습니다. 온통 저의 무거웠던 짐을 가족들 모두가 조금씩 나누어 지게 된 것이지요. 마음이 얼마나 가벼워지던지. 땅 속으로 기어들어갔던 삶이 이제는 날개가 돋은 듯 하늘을 향하게 되더군요. 2020년 여름 가족 여행의 가벼움은 이것의 연장선 위에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아직도 '나홀로 여행'은 머뭇거려집니다. 20여 년간 여행에 대해 힘든 생각을 했던 것이 고작 1,2년 만에 금방 바뀔 수 있을까요. 게다가 저는 결혼 생활에 지독히도 충실했던 나머지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본 적이 별로 없었지요. 떨어지면 죽는 줄 알았나 봐요. 외박을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가족들이 집에 있는 밤이나 주말에 나 홀로 누군가와 약속을 잡는 것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 답답했어요.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20년 그렇게 뭉쳐 살다 보니 이제는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낯설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혼자이기를 열망하면서도 혼자가 되지 못하는 나! 여행이 즐겁지 않으면서도 여행을 하고 싶은 나! '나홀로 여행'이 부러우면서도 부럽지 않은 까닭입니다. 이런 어정쩡한 마음이 쌈박해질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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