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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an 05. 2022

내 인생에 네가 들어왔다

첫 만남


 1. 하늘



 김 서린 맥주 500잔에 물방울이 흘러내린다. 나는 어색한 공기가 답답해 괜스레 잔에 서린 물기로 의미 없는 알파벳을 그리고 있었다. 

앞에 앉은 그도 핸드폰 플립을 1분 간격으로 열었다 닫았다 한다 

호프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 그도 나도 자동으로 고개를 돌려 들어오는 사람의 몽타주를 확인했다.


     “하하… 소연이가 많이 늦네.”


     “그… 그러네…”


      때마침 울리는 핸드폰 소리, 발신인은 소연이었다!


     “야! 너 어떻게 된 거야 왜 안 와!!!”


     ‘하늘~하늘 김하늘~~~.’


     소연이는 이미 취했다. 나를 김하늘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백프로다. 


     “어디야 너?”


     ‘어우 야~~~ 화났어? 우리 하늘? 완~전 미안해! 오늘은 근데 너네 둘이 마셔라. 나 아직 동아리 방이야. 지금 나가면 가만 안 둔다고 선배고 동기고 난리다. 진짜 미안해. 내가 내일 거하게 쏠게. 알았지? 진우 되게 재밌다. 니들이 내 베픈거 알지? 그니까 둘이 이 기회에 좀 친해져 봐. 잘 놀고 들어가. 정말 미안~~~~.’


     "야!! 그게 무슨 소리야!! 한소연~~!!"


     믿을 수가 없었다. 수연은 본인 생일에 일면식도 없는 나와 그를 초대해 놓고 혀 꼬인 말투로 전화해 일방적으로 못 나온다는 통보를 하고 끊었다. 너무 당황스러워 화조차 나지 않는다. 일단 그에게 현 상황을 알려야 했다. 


     “어쩌지? 소연이가 동아리 모임이 늦어지나 봐.  오늘 못 나온다는데.”


     “하하. 그래?” 그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생일이라고 불러 놓고 주인공이 빠졌네… 소연이 인기 폭발이구나… 음…그럼 우리끼리라도  한잔하자. 저녁도 안 먹고 기다렸더니 배도 고프고” 


     진우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 그래.” 

     안 그래도 뱃속에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렸던 터라 흔쾌히 대답했다. 


     “근데 우리 소연이 기다린다고 제대로 통성명도 못했네. 만나서 반갑다. 나 경제학과 신진우야. 소연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진우는 악수를 청하듯 맥주잔을 내쪽으로 들어 올렸다. 


     “어… 난 영문과. 이 하늘.” 그의 잔에 내 잔을 들어 부딪혔다. 두 잔이 맞닿아  경쾌한 소리가 났다. 


 180은 넘어 보이는 큰 키에 스트라이프 폴로 티셔츠를 입고 네이비색 야구모자를 쓴 진우는 낯을 가리는 나와 달리 활달한 성격이었다. 마른 체격이지만 갸름한 얼굴에 면도한 턱수염의 흔적이 턱을 따라 살짝 푸릇하게 보여 조금 남성적인 느낌도 들었다. 여태 서먹하게 앉아있던 게 신기할 정도로 대화는 빠르게 편안해졌다. 학교생활 이야기, 소연이와 친해진 이야기 등을 얘기했다.  그는 입담이 대단했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재미있었다. 학교에서 유명한 교수님 목소리 흉내부터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개그맨 흉내까지 끝없는 개인기를 펼쳐 보였다. 


 얼굴에 취기가 번져 볼이 발그레해질수록 나의 웃음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그의 이야기에 정신없이 웃다 보니 벌써 맥주를 여러 잔 마신 것 같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이하늘! 그런데 내가 처음 만난 사람과 이렇게 웃은 적이 있었나?’  




 

2. 진우


술에 취한 하늘은 보기보다 무거웠다. 계단은 또 왜 이리 가파른지 하늘을 업고 오르자니 두 다리가 흔들려왔다.  이렇게 술이 약한 줄 알았음 좀 말릴걸 그랬나 생각하다가도 하늘의 웃는 모습이 떠오르자 미소가 지어졌다. 

등에 업힌 하늘은 중얼중얼 무슨 노래를 불러댄다. 귀여웠다. 


“너… 꽤 무겁다. 오늘 많이 먹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야 뭐야… 내가 뭐가 무거워. 네가 힘이 없는 거지… 쳇… 웃기고 있어. ROTC는 체력장도 안 보고 뽑냐?”
혀 꼬인 말투로 하늘이 말했다. 


“저기… 네가 잘 모르나 본데. 내가 ROTC 체력검사, 신체검사 우리 기수 1등 한 사람이거든!”

하늘의 말에 불끈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숨이 차서 목소리가 힘겹게 세어 나왔다. 


계단 꼭대기에 올랐을 무렵  깜짝 놀라 허리를 펴고 거수경례를 했다. ROTC 2년 차 선배들이었다. 


“충성!!”


그 바람에 내 두 팔에서 놓여 난 하늘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떨어졌다.


“아야! 야 뭐야!”


바닥에 널브러진 하늘이 비명을 질렀다. 


“어이 신진우. 숙녀분을 내동댕이 치면 되냐. 얼른 고이 모셔다드려.”

“예! 알겠습니다. 충성!”


선배들은 킥킥거리며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하늘아 괜찮아?


“너 같으면 괜찮겠냐” 


 술 취한 채 중얼중얼 대는 하늘을 겨우 부축해서 그녀의 자취방에 도착했다.
그녀가 키우는 마르티스 강아지가 무슨 일인지 놀라 컹컹 짖으며 방 안을 뛰어다녔다. 

하늘을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잠든 그녀의 얼굴에 창으로 새어 든 가로등 불빛이 비추어 뽀얗게 빛났다. 


 그녀는 오늘이 첫 만남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교양수업으로 “영문학의 이해”란 과목을 신청하고 첫 수업에서 그녀를 본 것이다.
하얀 얼굴에 긴 머리, 연한 청바지에 흰 셔츠를 입고 두꺼운 전공책을 안고 걸어들 온 그녀. 나는 내 안에서 들려오는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긴  머리칼이 살짝 날리는 모습이 사진처럼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 뒤 캠퍼스에서 그녀를 볼 때마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초등학교 동창 소연이의 친구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이렇게 빨리 그녀와 만나게 되다니… 오늘 그녀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새침하고 도도할 것 같던 이미지와 달리 잘 웃고 유쾌했다. 


 그녀는 겁이 많은 편이라 강아지를 키운다고 했다. 이름이 흰둥이. 


     “흰둥아! 하늘이 누나 잘 지켜! 또 보자!”   

                                                 

     흰둥이를 두어 번 쓰다듬고 그녀의 방을 나선다.
문을 닫기 전 한 번 더 그녀를 뒤돌아 보았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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