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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Apr 03. 2022

반짝이는 풍선이 갖고 싶어

미안해, 너의 마음을 몰라줘서.

"오늘도 요시 아저씨 나왔을까?"

오랜만에  달링하버에서 산책하던 우리는 토요일 밤이면 물가에서 버스킹을 하는 기타리스트 R. Yoshi님을 떠올렸다.

"오, 맞다. 요시 아저씨 공연하고 있겠다.  가보자 엄마."


밤이 내려앉은 달링 하버는 코비드 이전으로 돌아간 듯 꽤 많은 인파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젊음과 사랑의 기운을 뿜어내며 데이트하는 연인들, 멋진 슈트와 드레스를 차려입고 레스토랑이나 바를 찾는 사람들, 작은 아이를 무등 태우고 큰아이를 챙겨가며 단란히 걸어가는 가족들. 바이러스로 유령도시 같던 시드니를 떠올리니 오늘의 북적임이 반갑고도 설렜다.


그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아이들 손에 들려있던 반짝이는 풍선들.  투명한 풍선에 컨페티나 색색의 깃털을 넣고 겉에 LED 전구를 감아 화려하게 빛나는 풍선들은 어른이 보기에도 예쁘고 거리의 흥을 한껏 돋우고 있었다. 문득 딸아이가 한 번도 저런 풍선을 사달라고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우리 딸은 어릴 때 저 불빛 풍선 갖고 싶지 않았어? 생각해보니 달링하버든 놀이공원이든 가도 엄마한테 저런 반짝이는 걸 사달라고 한 적이 없네. 저런 거 안 좋아했어?"


딸은 일 초쯤 망설이다 대답했다.


"좋아했어...

사실 지금도 갖고 싶어."


"에잉? 근데 왜 말을 안 했어. 엄마가 얼마든지 사줬을 텐데..."


말없이 공연장소로 걸어가는 나는 밝게 웃으며 풍선을 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자 마음 한편이 시렸다.





 "맘에 드는 거 골라봐, 엄마가 사줄게.'

4살 리나의 눈이 신중하게 빛난다.

그곳은 1층부터 3층까지 완구로 가득 찬 대형 완구 할인점으로 아이들에겐 그야말로 환상의 공간이었다.

아이는 외삼촌의 손을 잡고 여아용 장난감이 즐비한 유아동 완구 코너를 천천히 세 바퀴 돌았다. 그리곤 작은 병아리 키우기 장난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게 제일 좋아? 자주 못 오니까 엄마가 몇 개 더 사줄게. 골라봐."

아이는 입술을 맞부딪혀 길게 앙다물더니 고개를 흔든다.

"이게 좋아. 이거만 살래."


호주에서 태어나 아빠 사랑을 듬뿍 받으며 시드니에 있어야 할 아이였다. 그때 나는 출산 후 발병한 난치병 치료를 위해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나온 지 이 년째였고 통증과 병원 치료에 지쳐 제대로 아이를 돌보지 못했다. 할머니와 외삼촌이 사랑해주었지만 아빠의 부재, 아픈 엄마의 그늘이 주는 영향을 모두 상쇄시키기에는 버거운 날들이었다.


태어나서부터 아픈 엄마를 갖은 아이. 단 한 번도 울며 떼쓰는 이 없고 혼자 노는 게 익숙한 아이. 응당 4살 아이라면 이것저것 사달라고 떼도 써볼 법 한데 단 욕심나는 걸 표현하거나 조르는 일이 없었다.



"엄마가 아야 해서 힘드니까 리나가 이해해줘."

"응, 리나는 괜찮아."


돌부터 말을 잘하던 아이에게 나는 얼마나 힘든 것을 요구해왔는지...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덧 사춘기 소녀로 자라 있었다.  중학교 1학년이 된 아이는 말수가 없고 여전히 뭔가를 요구하는 경우가 없다.  




여느 때처럼 요시 아저씨는 달링하버를 등 지고 멋지게 기타 연주를 하고 있었다. 하늘의 별빛, 시드니의 야경, 그리고 물에 비친 지상의 빛들이 어우러져 이 순간의 달링하버는 그 자체가 환상적인 무대 같았다.


"화장실 다녀올게, 먼저 앉아있어."

"아까 다녀왔잖아, 화장실을 또 가?"


남편의 말을 뒤로하고 바로 옆에 있는 워터사이드 쇼핑몰로 부리나케 들어갔다.  아까부터 풍선 파는 노점상을 눈으로 찾았는데 쇼핑몰 입구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풍선을 파는 게 보였다.

투명한 풍선에 LOVE라는 글자와 핑크빛 작은 하트들이 가득 수놓아져 있는 LED 풍선을 골라 리본을 달아달라고 했다.


돌계단 가장 아래칸에 앉아 음악에 맞춰 고개를 까닥이고 있는 아이 뒤로 살며시 다가가 풍선을 눈앞에 스윽 떨어뜨렸다.


깜짝 놀란 아이는 뒤돌아 내 얼굴을 보고는 벙벙한 눈으로 다시 풍선을 바라보았다.


복숭아빛 물감이 번지듯 아이의 얼굴이 미소와 함께 환하게 피어났다.


파방 팡팡팡~~

 순간 토요일 밤 9시에 터지는 달링하버 불꽃놀이가 하늘로 쏘아졌다.

아직 더 행복해도 되는 밤이라는 듯.

사랑을 주기에 늦은 법은 없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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