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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Dec 24. 2021

난 여기 있었는데...?


 먼발치에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그녀가 보였다. 

어젯밤 꿈에서 본 내 친구다. 

꿈속 그 장소에 그 모습 그대로 서있었다. 나는 반가움에 소리를 질렀다. 


    “야!! 신채린 너 어떻게 된 거야!!!”


그녀는 빙긋 웃기만 한다. 


    “얼마나 찾았는 줄 알아?”


서운함과 반가움으로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랬어? 난 여기 있었는데...?” 


여전히 미소를 띤 그녀는 부드럽게 말한다.  


    “쾅”


눈이 번쩍 떠졌다.

남편이 출근하며 현관문 닫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깬 것이다. 


    ‘꿈이었구나.’ 

꿈에서 또 꿈을 꾼 것. 가끔 꾸곤 하는 액자식 구성의 꿈. 그나저나 이런 꿈을 꾸고 나니 그녀의 안부가 더욱 궁금했다. 고교 동창인 채린이는 7년 전 마지막 만남을 뒤로 소식이 끊겼다. 학창 시절부터 결혼하고 출산 이후까지 삶의 많은 이야기를 공유하며 가깝게 지내던 친구다. 요즘 들어 그녀의 안부가 무척 궁금했지만 연락처에서도, 메신저 친구 목록에서도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이상하게 마음에 두려움 같은 것이 일었다. 

 

    ‘설마…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오늘은 기필코 그녀의 안부를 알아내야만 했다. 

옛 애인의 흔적을 찾는 것처럼 소셜 미디어를 샅샅이 뒤졌다. 없었다.  


 백업해 두었던 주소록에서 그녀의 이름으로 된 전화번호를 찾아보았다. 두 개다. 메신저에 등록해보니 하나는 대부업체, 다른 하나는 앳된 학생으로 보였다. 둘 다 그녀는 아니었다. 이번엔 메일을 검색했다. 13년 전에 그녀에게 보낸 이메일을 찾았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메일 계정이었다. 머리를 굴려 그녀가 메일 주소로 쓴 아이디만을 가지고 이리저리 검색해 보았다.  열심히 손을 놀리면서도 예의 소심한 마음이 발동했다. 

 

    ‘일부러 나를 차단한 건 아닐까?’


    ‘그런 거라면 연락하는 걸 싫어할 텐데...’


    ‘내가 그녀에게 서운하게 한 일들이 있었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잘해준 기억보다 미안한 일들만 떠올랐다. 내가 임신해 있을 때 그녀가 시드니로 여행을 왔었다. 당시 힘든 일을 겪었던 친구는 머리를 식히러 호주로 훌쩍 떠나왔었고 나는 우리 집에서 지내다 가라며 그녀를 초대했다. 처음에는 둘이 요리도 함께하고 갤러리 구경도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출근하면 혼자 기다리는 시간이 외로웠던지라 친구가 와있는 게 행복했다. 그러다 시간이 갈수록 다른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그리워졌고 누군가와 종일 붙어있어야 하는 것이 불편했다. 나는 점점 그녀에게 예민하게 굴었던 것 같다. 아니 확실히 그랬다. 애써 모르는척하던 미안함이 여전히 남아있는 걸 보면... 채린이는 우리 집에 몇 주간 머물고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이후에도 한국에서 만나고 연락하고 지냈는데 대체 언제 마지막 통화나 문자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날 차단했을지도 모르지... 그렇더라도 잘 있나 안부는 확인하자.’ 


검색 결과를 훑던 중 눈에 띄는 글이 하나가 보였다.


    ‘피트니스 이용권 양도합니다.’


어느 중고거래 사이트에 5년 전쯤 올라온 글이다. 아이디가 그녀의 옛 이메일 주소 아이디와 같았다. 결정적으로 전화번호가 예전에 그녀가 사용하던 것이었다.  


    ‘찾았다!!’


 첫사랑 사진이라도 찾은 양 두근거렸다. 프로필에 아이 둘 사진이 떠있다.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남자아이도 여자아이도 그녀의 눈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만났을 때 나는 몸이 아파 딸을 데리고 한국 친정집에 가 있었다. 채린이는 갓난 아 기이던 첫째 아이를 업고 멀리까지 나를 만나러 와주었다. 이제 그때의 갓난쟁이는 잘생긴 초등학생이 되어있었고 그녀를 닮아 예쁜 둘째 딸도 함께였다. 프로필 사진들을 넘겨보았다. 마스크를 끼고 있자만 분명 채린이었다.  

    

    ‘잘 지내고 있구나.’


구겨져 있던 마음의 주름이 확 펴지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핸드폰을 덮을까 말을 걸어볼까 망설여졌다. 안부 인사만은 남기고 싶었다. 


    ‘신채린! 살아있었냐? 엄청 찾았잖아. 어디로 사라졌던 거야~.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보고 싶어서 연락한다.’  


 이렇게 메시지를 남겨두고 핸드폰을 닫았다. 아침나절 침대 안에서 친구를 찾아 헤맨 기분이 묘하다. 그녀와 아이들의 사진을 보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 듯도 했다. 바다 건너 분주히 아이들 등교 준비를 시키고 있을 친구가 떠올랐다.

 괜스레 설레는 마음을 다독이며 커피물을 올려놓았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흘긋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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