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좀 우울해지는 오후. 문득 커피에 달달한 케이크 생각이 났다.
오늘따라 출근이 늦은 남편에게 안 바쁘면 케이크나 먹으러 가자니 흔쾌히 나선다. 대충 챙겨 입고 가까운 크레이프 케이크 전문 카페로 향했다. 날씨 탓인지 손님은 거의 없었다. 커다란 얼그레이 크레이프 케이크 한 조각과 카푸치노 두 잔을 시켜놓고 기다란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이 케이크는 그냥 먹으면 안 돼. 이렇게 포크로 한 겹씩 돌돌 말아서 먹어야 하는 거야.”
나는 남편에게 크레이프 케이크 먹는 법이라며 시범을 보였다.
남편은 정말이냐며 뭐 그런 귀찮은 방법이 다 있냐는 듯 따라 했다.
“있잖아, 이거 처음 먹던 날 나는 그냥 다른 케이크 먹듯이 포크로 똑똑 잘라서 먹었거든. 친구들이 나보고 그렇게 먹는 거 아니라고 돌돌 말아먹는 방법을 알려주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먹긴 하는데 나는 원래대로 먹는 게 더 맛있는 것 같아. 근데 나 빼고 다들 아니라고 한 겹씩 먹어야 제맛이라데. 남편은 어때? 한번 먹어봐.”
“에이~ 당연히 뚝뚝 잘라먹어야 더 맛있지 겹겹의 식감도 느껴지고. 원래 크레이프 케이크는 일본에서 나온 건데 거기선 다 그렇게 잘라먹어. 돌돌 말아먹는 거 난 오늘 처음 봤다. “
남편의 대답에 갑자기 신이 났다.
“그렇지? 맞다니까. 잘라먹어야 식감도 더 좋고 맛있는 거.”
케이크 먹는 방법 하나에 남편이 맞장구를 쳐주자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가며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신기했다.
하나에서 열까지 성격도 취향도 다르고 결혼한 게 놀라울 만큼 안 맞는 것 투성이인데 크레이프 케이크 먹는 방법엔 의견이 일치하다니. 결혼 15년 만에 맞는 것을 찾았다.
'그래, 그런 것도 있는 거지. 그러니까 부부지.'
이후 별 대화 없이 나는 들고 간 책을 읽고 남편은 전화로 인터넷 업무를 보며 한참을 앉아있다 나왔다.
기분이 얼그레이 케이크처럼 사르르 녹아드는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