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평창 대관령 — 고요한 아침

멀리 가지 않아도 충분했다

by 하늘바라기

울릉도에서 돌아와 하루를 쉬었다.

서울 집에서. 그런데 집에만 있기가 답답했다.

한 곳만 더 가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평창. 대관령. 눈이 온다고 했다.

겨울의 끝자락.

3월 초인데도 산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다고 했다.

새벽에 출발했다. 버스로 3시간. 횡계에서 내렸다.

택시를 타고 대관령 양 뗏목장 쪽으로 갔다.


"여기서 내려주세요."

"여기요? 아무것도 없는데요."

"괜찮아요. 걷고 싶어요."

기사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봤다.

"추워요. 길도 미끄러워요."

"괜찮습니다. 조심할게요."


차에서 내렸다. 정말 추웠다.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그런데 상쾌했다.

눈길을 걸었다. 발자국이 찍혀 뽀드득 소리가 났다.

다른 소리는 없었다. 완전한 고요.

한참 걸어 언덕에 올랐다.

넓은 초원이 눈으로 덮여 세상이 온통 하얬다.


멀리 한 사람이 보였다. 노인이었다.

혼자 서 계셨다. 눈밭에. 움직이지 않고.

가까이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노인이 돌아보셨다. 팔십은 넘어 보였다.

주름진 얼굴. 그런데 온화한 눈빛.


"안녕하세요."

"혼자 계세요?"

"네. 자주 와요. 여기."

"추운데 괜찮으세요?"

노인이 웃으셨다.

"익숙해요. 젊었을 때부터 왔으니까."

"여기가 좋으세요?"

"좋죠. 조용하고. 생각하기 좋아요."

"무슨 생각을 하세요?"


노인이 잠깐 망설이시더니 말씀하셨다.

"아내요. 여기서 처음 만났어요."

"여기서요?"

"네. 60년 전. 스무 살 때. 아내도 스무 살이었어요.

둘 다 여기 놀러 왔다가 우연히 만났죠."

노인의 얼굴이 환해졌다. 옛날을 떠올리는 얼굴.

"지금도 같이 오세요?"


노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니요. 작년에 갔어요. 아내가."

"...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다들 가는 거니까."

침묵이 흘렀다. 바람만 불었다.

"여기 오면 아내가 느껴져요." 노인이 말씀하셨다.

"처음 만난 곳이라서.

여기 서면 스무 살 때 아내가 보여요. 웃던 모습이."


나는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통영에서 할아버지의 마지막 순간.

"잘 다녀왔니?" 그 말씀.

"많이 보고 싶으시겠어요."

"매일 보고 싶어요. 근데 이제 익숙해졌어요. 그리움에."

"익숙해진다는 게... 슬프지 않으세요?"


노인이 고개를 저으셨다.

"슬픈 게 아니에요. 받아들이는 거예요. 죽음을. 헤어짐을."

"어떻게 받아들이세요?"

"자연을 보면 돼요. 저기." 노인이 눈밭을 가리켰다.

"눈이요?"

"네. 눈은 녹아요. 봄이 오면. 물이 돼요.

흙으로 스며들어요. 그럼 풀이 나요. 꽃이 피요.

여름에는 초록이 되고, 가을에는 누렇게 변하고,

겨울에는 다시 눈이 와요. 계속 돌아요. 순환해요."

"그게 삶이라는 거예요?"


"맞아요. 우리도 그래요.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죽어요. 끝이 아니에요.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흙으로. 그럼 풀이 나고,

나무가 자라고, 다른 생명이 태어나요. 계속 돌아요."


노인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속초 시장에서 본 것. 생선. 오징어.

죽은 것 같았는데, 그게 또 다른 생명이 됐다.

내가 먹었으니까.


전주에서 할머니가 말했다.

"아들이 맨날 그랬어. 천천히 살래."

아들은 갔지만 엄마는 아들을 기억하며 산다.

그것도 순환이다.


친할아버지는 저세상으로 가셨지만...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간이 내게 전해졌다.

추억과 배움으로, 사랑으로. 그것도 순환이다.

"그럼 죽음이 무섭지 않으세요?"

"무섭죠. 아직도. 근데 받아들여요.

자연스러운 거니까. 봄 다음에 여름 오듯이.

삶 이후에 죽음 오는 거예요."

"아내분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노인이 눈을 감으셨다. 잠깐. 그리고 뜨셨다.

"모르죠. 천국이 있는지, 환생이 있는지.

근데 상관없어요. 아내는 여기 있어요."

노인이 가슴을 가리켰다.

"제 안에. 기억으로. 사랑으로. 그거면 충분해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작은 눈송이들. 천천히 떨어졌다. 소리 없이.

"예쁘죠?" 노인이 말했다. "눈. 떨어지는 게."

"네. 예뻐요."

"눈송이도 생명이에요. 구름에서 태어나서, 떨어지고,

땅에 닿으면 녹아요. 짧은 생명이죠. 근데 의미 없나요?"

"... 아니요."

"맞아요. 의미 있어요.

얼마나 사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해요.

눈송이는 떨어지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해요.

그걸로 충분한 거예요."


나는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있나?

아직은 아닌 것 같았다. 나만 생각하고,

나만 챙기고, 나만 아끼고.


내가 지금까지 여행을 통해 깨달았던 것.

이기심. 욕심으로 가득한 나.

그런데 변하려고 하고 있다.

소소한 것에 만족하고, 베풀고 사랑하는 것.


"할아버지는 세상을 어떻게 사셨어요?"

노인이 웃으셨다.

"모르죠. 근데 노력했어요.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 키우고,

사람들 도와주고. 완벽하지 않았어요.

실수도 많이 했어요. 근데 노력했어요."

"그럼 후회 없으세요?"

"후회야 있죠. 아내한테 더 잘할걸.

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할걸. 근데 그래도 괜찮아요.

최선을 다했으니까."


통영으로 달려가던 밤. 낯선 남자가 말했다.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요. 지금."

맞다. 완벽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하면 됐다.

"할아버지, 저는 30살이에요."

"젊네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노인이 나를 봤다. 한참. 그리고 말씀하셨다.

"지금처럼 살면 돼요."

"지금처럼 이요?"

"네. 고민하고, 질문하고, 찾아다니고.

그렇게 사세요. 답은 없어요. 계속 찾아가는 거예요."


불국사에서 만난 할아버지도 그렇게 말했다.

"나 자신 다 찾으면 재미없어요. 계속 찾아야죠. 평생."

"그럼 언제 편해지나요?"

"편해지는 게 목표가 아니에요. 사는 게 목표예요.

진짜로 사는 거. 느끼고, 배우고, 사랑하고, 나누고. 죽을 때까지."


눈이 더 많이 내렸다.

옷에도 노인 머리에도 쌓였다. 하얗게.

"저 이제 갈게요." 노인이 말씀하셨다.

"추워요. 집에 가야 해요."

"혼자 사세요?"

"아니요. 딸이랑. 딸이 같이 살자고 했어요.

혼자 두면 안 된다고."

"좋으시겠어요."

"좋죠. 외롭지 않아요. 근데 가끔은 외로워요.

아내가 없어서. 그래도 괜찮아요. 외로움도 삶의 일부니까."


노인이 걸어가셨다. 천천히. 눈밭을 밟으며.

발자국이 남았다. 곧 눈으로 덮일 발자국.

나는 혼자 남았다. 눈 내리는 초원에. 고요 속에.

손을 펼쳤다. 눈송이가 손바닥에 떨어졌다.

금방 녹았다. 짧은 생명. 그런데 아름다웠다.


나도 그런가? 짧은 생명.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한순간.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날들.

50년? 60년? 길어야 70년?

그런데 그 시간이면 충분하다.

사랑하고, 배우고, 나누고, 의미 있게 살면 된다.


저세상으로 먼저 가신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그가 준 사랑, 추억, 배움을. 그게 내 안에 산다.

그와 함께 늘 곁에서 사는 것이다.


나도 언젠가 저 세상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나를 기억해 주기를 원하며...

엄마, 친구들, 내가 사랑한 사람들.

그들을 통해 내 삶도 지속될 것이다.


그게 순환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인 것을.

노트를 꺼내려고 장갑을 벗었다. 손이 시렸다.

눈 내리는 대관령에서 느낀 것.

죽음은 끝이 아니다. 순환이다. 눈이 녹아 물이 되고,

물이 풀을 키우고, 풀이 생명을 먹이듯이. 사람도 그렇다.

죽어도 기억 속에, 사랑 속에, 가르침 속에 산다.


할아버지가 준 모든 것은 그가 사는 방법이다.

나도 언젠가 그와 같이 저 세상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나를 기억할 사람들이 있을까?

그러니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다. 눈송이처럼. 짧아도 아름답게.

의미 있게 사랑하며. 나누며. 도우며. 아름답게 하며.


그렇게 살다가 가면, 후회 없을 것이다.

노인처럼.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마무리하고 나니 평온해졌다.

죽음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중요한 건 지금이다.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사느냐.

일어섰다. 눈밭을 걸었다. 발자국을 남기며.

곧 사라질 발자국. 그런데 지금 남아있는 흔적들.


택시를 불러 버스 터미널로 갔다.

서울로 돌아갈 버스를 타고 창밖을 봤다.

눈이 계속 내렸다. 세상을 덮었다. 하얗게. 새롭게.

봄이 오면 눈은 녹을 것이다.

그리고 새싹이 날 것이다. 초록이 될 것이다.


순환. 나도 순환 속에 있다.

태어나 성장하며 배우고, 사랑하며 지낸 시간이 흐른 뒤

맞이한 죽음, 그 이후 또 다른 생명으로...

그리고 누군가 내 삶을 기억해 줄까. 그냥 남겨질까.

그게 바로 순환이고, 생명이다.


평창의 고요가 내게 준 것.

죽음에 대한 생각. 생명에 대한 이해.

순환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지금을 사는 용기.

마치 예상치 못한 낯선 곳에서

세상을 겸혀히 받아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