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6
“유령상어는 공룡보다 오래된 종으로서, 깊은 심해에서 살고 있습니다. 2009년 최초로 카메라에 포착되었지만, 현재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남자 기숙사 2층 공용 텔레비전에서 심해 생물의 다큐가 흘러나왔다. 동훈은 듣는 둥 마는 둥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네. 오늘 집에 갈게요. 영훈은 누군가에게 답장한 후 짐을 싸서 학교를 빠져나왔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 후, 다시 몇 번의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길이 점점 좁아지자 어느 바다내음이 밀려오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잔잔한 물결, 그 위에 은은히 비추는 윤슬의 빛. 바다를 따라 말린 생선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섬마을. 이곳의 바다는 여전했고, 동훈은 그 여전함이 지겨웠다.
갑자기 동훈의 코끝에 생선 비린내가 진동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동훈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동훈의 시선 끝에 아버지의 작업복이 가닿았다. 영철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짓자, 눈가에 주름이 저절로 피어났다. 부자는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간격으로 나란히 걸어갔다.
동훈이 나고 자란 이 섬에는 마을 주민이 고작 20명 채 되지 않는다. 그중 몇몇은 생선을 낚아 장에 팔러 다녔다. 동현의 아버지 영철도 그랬다. 동현이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영철은 쭉 생선잡이 일을 했다. 영철은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배를 타러 나갔고, 매일 동현을 데리고 다녔다. 그물을 바다에 던지고, 들어 올리고, 확인하는 작업을 아침이 올 때까지 반복했다.
동훈의 서러움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커졌다. 매일 샤워를 해도 사라지지 않은 생선 비린내와 지겹도록 보는 바닷가가 싫었다. 제일 서러웠던 건 아버지 일을 돕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생선잡이를 하고 왔을 때의 근육통과 피로감이었다. 동훈은 대학생이 되면 이곳을 떠나리라 다짐했다. 죽도록 공부해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
“동훈아, 학교는 어떠냐, 아버지 버리고 가니깐 좋디?”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영철이 물었다.
“어, 서울은 여기랑 다르게 사람도 많고, 놀 곳도 완전 많아”
“너 하고싶은 공부 다 하면, 아버지랑 정식으로 일 하러 다니는 건 어떠냐.”
아빠, 난 여기가 싫어, 생선도 지긋지긋해. 동훈은 마음속에 진실을 꾹 숨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훈을 슬쩍 힐끗거리던 아버지의 눈동자에 어떠한 그리움이 비췄다. 동훈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등을 돌렸다. 아버지는 쌀 과자를 동현에게 내밀었다. 부자는 티비 앞에 나란히 앉아 과자를 먹었다. 동현은 남은 과자를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이른 새벽, 영철은 벌써 나갈 채비를 마쳤다. 몇십 년의 어부 경력이 묻어나는 차림이었다. 투박한 손마디, 거친 피부 결, 까맣고 동그란 얼굴, 희끗희끗한 머리, 축축한 장화. 이것들은 영철이 바다에서 버텼던 투쟁의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다. 영철이 어젯밤 깔아 둔 그물망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휘청거리더니 싸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때때로 이렇게 바다가 사나워지기도 했다.
비가 올 거 같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영철은 손이 바빠졌다. 조금 더 지켜보고 금방 돌아갈 생각을 하던 중 순식간에 장맛비가 몰아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풍과 천둥이 바다에 쏟아졌다. 바닷물은 심하게 요동쳤고, 그가 타고 있던 낡은 배도 세차게 흔들렸다. 영철은 중심을 잡으려고 애썼다. 손가락 마디마디를 선박 가까이 붙였다. 파도가 구름에 닿을 기세로 높아졌다. 순식간에 영철과 배를 한꺼번에 삼킬 만큼 거대한 포물선이 그려졌다. 잠시 후 바람이 다시 잠잠해졌을 땐, 태풍도, 파도도, 영철도 사라졌을 때였다.
동훈은 2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이장으로부터 온 수십 개의 부재중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동훈은 방문을 열었다. 영철이 없었다. 동훈은 이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장님, 저 동훈인데요. 무슨 일이세요?. 얘 동훈아, 이장님 댁으로 와 얼른!. 동훈은 뭔가 심상치 않은 기분을 느꼈다. 슬리퍼를 신고 무작정 달렸다. 달리고 또 달리는데 마음 한 켠에 불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발에 바퀴라도 달린 듯이 동훈은 빠르게 달려 이장댁에 도착했다. 마을 주민이 모두 그곳에 모여있었다. 그곳에도 영철은 없었다.
“동훈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셨어. 어제 갑자기 파도가 높아진 모양이야.”
동훈은 이장의 말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갑자기’, ‘파도가’ 같은 몇몇 단어들이 조각처럼 머리에 나돌아 다녔다. 영철이 시체도 못 찾았다. 파도랑 같이 휩쓸린 게야. 이장은 혀를 끌끌 차며 마을 주민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마을 어른들은 골똘히 무언가 공모하는듯했다. 동훈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염없이 걷다가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왔다. 홀로 남겨진 새벽은 너무 길었다. 영훈은 장판에 누워 작업복에 배어있던 아버지의 비릿했던 냄새, 손 끝에 묻어있는 바다의 흔적을 떠올렸다. 아버지와 함께 누웠던 방에서 이제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냄새가 사라질수록 아버지를 잊어버릴 것 같았다. 무작정 밖으로 나가 뛰었다. 더 멀리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쯤, 아버지의 배 한 척이 떠 있는 바다에 도착했다. 아버지, 아직 거기 있는 거지. 며칠 밤마다 아버지의 냄새를 떠올렸어. 그렇게 지겹고 싫었던 바다 냄새 말이야. 먹이를 찾으러 온 새들이 끼룩-하고 머리 위를 빙빙 날아다녔다. 바다 냄새는 그대로였다. 아버지의 냄새는 그곳에 있었다. 눈을 감고 선명히 아버지를 그려봤다. 윤슬이 비친 바다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아버지. 흐릿한 눈 속에 바다를 선명하게 담고 싶어서, 그래서 거기로 가버린 거지.
동훈은 다시 바다로 시선을 옮겼다. 햇살이 바다에 베여 진한 에메랄드색의 윤기가 돌았다. 죽음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아버지는 바다에 빠진 게 아니었다. 바다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서 조용히 사라진 거다. 몇백 년 동안 깊은 심해를 유유히 헤엄쳤던 유령상어처럼 살다가, 언젠가 자신에게 발견될 것이다. 동현은 그렇게 믿었다. 아버지의 영혼은 투명한 바닷물로 가득 채워졌을 것이다. 동훈의 혀끝에 깨끗한 짠 내가 감돌았다. 늘 비릿한 생선 냄새가 몸에서 돌던 아버지가 바다로 돌아간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동현은 주머니에 있던 부서진 쌀과자를 꺼냈다.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한 아버지를 위해 과자 조각을 바다로 던졌다. 조각은 둥둥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