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기획자가 되기 위해 여러 군데를 뒤적거리며 경험을 쌓았던 2년의 시간을 짧은 문장으로 담기란 어려운 일이다. 글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동안 한 해가 지나가버렸다. 작년, 2020년은 세 챕터로 구성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2019년, 학교를 다니던 도중 모 문화재단의 시민기획단이 되었고, 1년 동안 3개의 프로젝트를 참여했다. 초짜 시절의 봉사 기획 지식정도만 있었던 내가 이곳에서 정식 기획단이 되면서 자주 당황했었다. 혼자 쭈뼛되는 동안 이미 경력 있던 같은 기획단분들은 훨훨 날아다녔다. 아이디어도 재밌었지만, 실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머릿속에 이미 있는 듯 보였다. 혼자만 대학생이었기에 부담감도 있었지만, 그분들을 보며 덕분에 많이 배웠다. 기획이란 단순하지만 신경 쓸 부분이 정말 많았다.아이디어는 여러 가지 갈래가 되고, 그 갈래를 한 곳으로 모으고, 마침내 뭉쳐진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무대로 보여주는 것. 그런 모든 과정은 쉽게 쉽게 나오는 게 아니었다. 활동 초반엔 학교 스케줄과 겹쳐 엄청난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다. 중간에 그만둬야 하나 싶을 만큼 힘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끝 마무리는 지어야지-하는 강박과 함께 중반을 넘어오니 더 이상 그만큼 힘들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이 활동 자체가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말할 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함께 하는 그 과정 자체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무리한 스케줄을 꾸역꾸역 버틸 수 있었다. 함께 문화를 만들어 내고, 삶에 대한 고민을 줄줄이 늘어놓을 수 있는 시간이 즐거웠다. 1년의 활동이 끝났다. 활동을 버티면서 다짐했던 건 '무언가 남았겠지'하는 생각이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마음속 한편이 자꾸만 채워지지 않았다. 무지와 열정은 한 끗 차이라고 했던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던 각오를 지나오니 끝냈다는 안도감, 한 편으론 어색한 아쉬움만 남게 되었다. 서포터즈 활동이었기에 행정적인 업무라던가, 실질적인 기획을 혼자 해보지 못했다는 아쉬움.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또 다른 도전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
이번엔 모 문화예술단체의 시민기획단. 문화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세운상가 인근을 위한 축제 행사를 기획하는 프로젝트였다. 때는 2020년 1월. 뭐에 홀린 듯이 그곳을 들어갔고, 2개월 동안 개인당 하나의 문화 프로젝트를 오픈하게 되는 미션이 주어졌다.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2월 무렵, 그러니깐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야 하는 시점에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재난이 발생하고 만다.
<세운개장> 축제를 위한 4개월의 대장정 시작. 전 작에서는 여러 명이 함께 힘을 합쳐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정말 혼자였다. 오로지 내 힘으로, 내 생각으로, 내 주관으로 뭉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점.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자꾸만 찾아왔다. 열 명이 넘었던 참여자들은 시간이 흐르자 7명이 되었고, 끝자락에는 5명이 되었다. 포기해야 하는 이유보다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았다. 그래서 나는 이 기획단을 쉽게 저버릴 수 없었다.
2020년, 4월 중반 무렵 <세운 소풍>이라는 제작 워크숍을 드디어 올리게 되었다. 기획을 했고, 필요한 물품을 직접 디자인했고, 홍보 포스터를 제작했고, 참여자를 모았고, 워크숍 진행을 했다. 을지로에 애정이 있는 사진사를 찾아 섭외도 했고, 함께 미팅도 했다. 상대방은 나에게 명함을 주셨지만, 나는 뭣도 아닌 신분이었기에 멋쩍은 웃음으로 대신했다. 활동이 끝난 후, 12명의 참여자가 남겨준 피드백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초반에 끈질기게 고민했던 순간들이 스쳐갔다. 이 무대에 담고 싶었던 메시지를 참여자가 알아준 것만으로 프로젝트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했다. 1인 기획자가 된 소감은 좋았고, 신기했고, 두려웠다. 해냈다는 뿌듯함이 전부는 아니었다. 1년의 시민기획단이 아쉬워서 도전했던 4개월의 프로젝트 역시 또 다른 아쉬움을 남겼다.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했기에 부족함과 조급함이 많았다. 참여자를 위한 기획이라고 말했으면서도, 자꾸만 기획자인 나의 틀에서 움직이길 바랐다. 결과와 상관없이 그런 부분이 꽤 아쉬웠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 걸까. 문화예술 업계라던가, 문화 기획 자체에 대해 궁금해졌다. 아니, 야매 기획자가 아니라 이제는 조금 더 전문적인 지식을 품은 기획자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좋아서 말고, 궁금해서 또 다른 기회를 염탐하게 된다. 그건 아주 우연한 운명처럼 느껴졌다. 미술치료를 처음 마주쳤을 때 느낀 학구열과 비슷한 수준으로 문화 기획을 배우겠다는 의지가 아주 높아졌을 때였다.
문화 기획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정말 없나 싶었을 때, 인터넷에 '문화기획 교육'을 쳤고, 마감 2일이 남았던 교육 수업을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 또다시 심장이 뛰었다. 우연히 잡은 기회는 현실이 되었고, 면접에서 당당히 지원 동기를 외치던 나는 합격을 했다. 4월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6월부터 이 교육을 장장 4개월 동안 매일 듣게 되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9시부터 1시 30분까지, 점심시간 없이. 앞서 언급한 모 문화재단 시민 기획단도 1년 연장하여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문화 기획을 위한 삶을 살게 된 것.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올해 우연히 드로잉 취미 동아리에서 만난 두 명을 꼬셔 또 하나의 전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성평등에 대한 이슈를 다룬 인포그래픽 전시회. 이 프로젝트는 여가부 지원을 받아 진행할 수 있었는데, 6월부터 12월. 약 6개월 동안 숨도 안 쉬고 웹 전시회를 만들었다.
4개월 동안 홀로서기했던 경험 덕분인지, 문화 교육을 열심히 들었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시민 기획단과 전시 기획을 준비하면서 스스로 성장했다는 순간을 자주 발견하게 되었다. 정말로 나는 작년의 내가 아니었다.
2020년, 1년 동안 6개의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체험 워크숍 두 개, 동화책 제작, 디자인 공모전 두 개, 인포그래픽 전시, 문화교육 실습과 기획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취준생-에게는 정말 값진 도전들이었다.
찰나의 순간은 결심이 되었고,
결심은 또 다른 아쉬움을 낳았고,
아쉬움은 또 다른 도전이 되었다.
모든 과정은 모두 내 선택이고 책임이었다. 완벽하게 계획하고 행동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순간순간에 찾아온 감정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시도했고, 그 시도는 나를 찾을 수 있는 길이 되었다. 취업에 매달려야 하는 순간에 나는 새로운 길을 파헤치고 싶었다. 회사를 위한 취준이 아니라, 나를 위한 직업의 길을 발견하고 싶었으니깐.그러니까, 취준생 말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작년의 이야기를 이곳에서 풀어헤치며 올해도 다시 다짐해본다. 새롭게 엮어질 2021년의 이야기도 계속해서 남겨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