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먹고 마셔야 할 곳, 그렇지 않은 곳
'시편 23편'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여호와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라.' 그동안 마냥 좋다고 생각하던 말씀이었는데, 다시 보니 쉽게 수긍하고 넘어갈 수 없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이신 것은 맞지만, 부족함이 없다고 느끼는지 자신이 없다.
시편 22편에 나오는 상황들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신다면, 내가 주를 찬양하겠다는 고백에는 쉽게 '아멘'이 나온다. '22:21 나를 사자들의 입에서 건지시고 들소들의 뿔에서 구하소서 23 내가 내 형제들에게 주의 이름을 선포하고 군중 앞에 서서 주를 찬양하겠습니다.'
어쩌면 나는 은근히 하나님을 저울질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나님께 내 삶을 내어드리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100퍼센트가 아니다. 이 정도 내어드렸으니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받고 싶은 마음, 이번이 아니면 다음에 주시겠지 하는 우회적 협박.. 혹시 이런 것 아닐까?
100퍼센트에 미달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수준 미달이면 어떡하지? 내 속물적인 본성이 신앙생활 안에 미세플라스틱처럼 박혀서, 겉으로는 세상적인 크리스천들을 안타까워하지만 실상은 나 역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면 어떡하지...
다윗은 어떻게 이런 고백을 드릴 수 있었을까? 무슨 경험을 했을까? 오늘 시편에서는 푸른 초장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는 상반된 두 장면이 나온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는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늑대들이 우글우글하다. 그런데 골짜기를 지나자 푸른 초장이 펼쳐지고 쉴만한 물가가 나온다. 저 골짜기에는 늑대들이 으르렁대지만, 목자가 있기에 조금도 다가서지 못한다. 그 골짜기 앞에서 나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여유롭게 목을 축인다.
만일 내가 목자 되신 주님이 불만족스러워 그의 곁을 벗어나 혼자 돌아다닌다면 어떻게 될까? 목자 되신 주님을 바짝 붙어 다니면서 그가 이끄시는 곳에서만 먹고 마시는 삶과 비교할 때 과연 어느 쪽이 부족함이 없을까?
내가 먹고 마셔야 할 곳, 그렇지 않은 곳.. 어쩌면 너무나 분명하고 이미 알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