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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 울림 Dec 10. 2024

내 영혼이 피폐할 때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

'시편 43편' 환난 중의 기도

같은 소재, 같은 패턴, 같은 내용.. 처럼 보이는 시편들
비슷비슷한 시편들을 매일 묵상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어떤 비밀이 숨겨있을지 끝까지 파 보련다.

1.
다른 시편에서는 다윗이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오늘은 왜 자기가 무죄라고 얘기하는 걸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스스로 무죄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무죄를 선언해 주시기를 간구할 뿐이다.

2.
다윗은 알고 있다. 하나님만이 자신의 피난처라는 것을,
자신을 구해주실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대로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내보니 뭔가 이상하다.

3.
아무래도 자신을 내버려 두고 계신 것 같아서,
어쩌면 내팽개쳐 버리신 것 같기도 해서 혼란스럽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원수들에게 학대당할 수는 없다. 이렇게까지 슬픔에 처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뭘까? 뭐가 문제일까? 왜 이 상황이 끝나지 않는 걸까?

4.
우리는 다윗과 같은 삶을 살게 해 달라며 노래하고
소망하고 축복한다. 심지어 이름도 그렇게 짓는다.
그분들께서는 이런 다윗의 삶을 잘 알고 계신 걸까?
자녀들이 이런 다윗의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일까?

5.
다윗의 굴곡진 삶은 빼고 다윗의 신실한 신앙과 그가
누린 세상 영광을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잘못하신 것 같다. 기도를 얼른 회수하시는 게 어떨까?
성경 인물 중 누구도 고단한 삶 없이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을 드러낸 사람은 없다. (혹시 보아스?)

6.
다윗은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자신을 인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셔야
자신이 하나님의 제단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 누가 인도하시고 누가 이끄실까? 물을 것도 없이
문맥상 당연히 하나님이시겠지?
 
7.
당연히 그렇다. 그런데 아니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빛과 당신의 진리를 보내셔서 자신을 인도해 주시길,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한다.
빛과 진리 되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예수님을 렇게 부르는 같은 이치로..

8.
다윗이 단지 문학적 표현으로 저렇게 언급한 걸까?
다윗은 종종 하나님과는 구별된 어떤 존재를 말한다.
시편 2편에서도 '하나님'과 '그'가 분리되어 등장한다.
나는 창세기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고 있는 다윗이
하나님과는 다른 창조 사역을 하신 어떤 분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9.
물론 다윗이 예수님의 존재를 알았느냐 몰랐느냐 하는 신학적 논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하튼 구원에 이르는
길은 구원받는 자가 주체적으로 찾을 수 없다. 오로지
구원하는 분의 전적인 은혜로 그 길을 보여주셔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없는 걸까?
 
10.
No, 아니다. 내 영혼이 낙심하고 불안해할 때,
내 육신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다.
그럴 때 내 영혼은 하나님께 희망을 두게 된다.
영혼이 피폐할 때 내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

11.
오늘 시편도 어제와 동일한 노랫말로 끝을 맺는다.

"내 영혼아, 어째서 네가 낙심하며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네 희망을 하나님께 두어라.
나는 내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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