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은 입체적이다.
'시편 3편' 도움을 구하는 아침 기도
시편 3편은 다윗이 자기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면서 지었단다. 서글펐겠다. 다윗은 어쩌다가 아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을까? 지금은 그 이유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사무엘서를 묵상할 당시 압살롬의 입장에서 보면 고개가 끄덕여졌던 기억이 난다.
우리 삶은 입체적이다. 이쪽에서는 이 모양이고 저쪽에서 보면 저 모양인. 그렇기에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단편적이면 곤란하다. 하지만 육신의 한계를 지닌 우리들은 다른 이의 모습을 평면적으로 바라볼 때가 허다하다.
대표적인 현상이 전기포트 물 끓듯 금세 판단하고 충고하는 모습이 아닐까? 주변을 떠올려보자. 그런 사람이 누구였는지. 이런 내 경우는 바로 나였다. 결혼하고 아내에게 혼나면서부터는 그런 모습이 촛불 꺼지듯 사그라들었지만, 결혼 전 본가 가족들에게는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내 눈에는 다들 하나같이 문제 투성이었다. 이것저것 지적하며 날카로운 말들을 날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 결과로 누나들과는 지금도 그리 친밀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조카를 양육하는 작은누나의 교육관은 너무나도 이해되지 않았고, 말을 아까지 않고 쏟아냈던 것 같다.
다윗으로 돌아가면 다윗은 압살롬의 모반으로 인해 쫓겨나 피신하면서도 압살롬을 향해 모진 마음을 품지 못했다. 요압에게 부디 선처를 당부하기도 했던 건 비단 자기 아들이었기 때문일까? 아니, 압살롬이 저렇게 비뚤어진 원인이 다윗 자신에게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내뱉는 충고와 독설에 대해 꿈틀거릴 자격이 없다. 그동안 내가 내뱉은 말들을 주워 담을 수 없으니 남들이 쏟아내는 말이라도 담아서 채워야 한다. 쉽게 동의되지 않고 기분 나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내가 그렇게 해야 세상이 공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