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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리어스 Mar 24. 2023

명상의 숲을 거닐다

Embracing the Absence_03 - 기후현 명상의 숲

단풍이 가득한 산이 영원(霊園)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명상의 숲(瞑想の森 메이소노 모리)에 와 있습니다. 이곳은 기후현 카가미하라시에서 운영하는 공원묘지입니다. 모처럼 기후까지 왔으니, 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후 시내에서 기차로 약 한 시간을 달려 나카역(那加駅)에 내려서 2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 2023 CURIOUS PRAXIS

명상의 숲의 초입에는 동그란 연못이 있고, 그 옆에는 화장장과 장례식장을 겸한 건물이 있습니다. 연못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멀리 구불구불 넘실대는 형태의 하얀색 콘크리트 지붕이 건물 상부를 덮고 있는 모습입니다.  종잇장처럼 얇은 곡면지붕은 단풍으로 물든 주변의 자연과 확실하게 대비되며 가볍고 경쾌한 느낌을 줍니다.  약간은 인공적인 느낌도 들지만, 구름의 형태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산의 능선과 조응하는 듯하기도 하며, 때로는 바람에 펄럭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누가 일러주지 않으면 그 용도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가 알고 있는 화장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이곳은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건축가 이토 도요씨가 설계하였습니다.


앞에 놓인 동그란 호수의 수면 안에, 하늘과, 건축물과 단풍이 가득한 산의 모습이 반사됩니다. 원래는 저수지로 사용되던 연못을 정비하고 그 옆에 화장장과 장례식장을 겸한 건물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고인의 화장이 끝나기를 대기하는 동안, 가족과 지인들은 연못을 바라보며 여러 상념에 잠길 것입니다. 불과 물을 거의 동시에 마주하도록 경험을 설계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얼핏 변덕스러워 보이는 지붕의 형태에도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홀이나 대기실, 화장설비 등 내부 공간의 용도에 맞춰 최적의 천장높이를 설정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지붕의 높이가 결정되었습니다. 좌식공간으로 계획된 일본식 대합실에는 입식 공간인 서양식 대합실에 비해 천장 높이를 더 낮게 해서 상대적으로 아늑함이 느껴지도록 하였습니다. 물과 바람에 의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형과 같은 느낌을 담기 위해, 비선형 기하학이 적용되었고, 배수나 구조 등의 요소를 고려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지붕모양을 최적화하였습니다. 계획 자체도 순탄치 않았지만, 더 큰 문제는 시공이었다고 합니다. 지붕은 어느 한 곳도 같은 형태를 하고 있지 않으며 경사면이 불규칙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형태가 제각각인 거푸집을 계획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지붕의 두께를 20cm로 최소화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필요한 곳에 강철 망이 삽입되었고, 부드러운 껍질과 같은 느낌을 만들기 위해, 콘크리트에 경화 가속제가 첨가되었습니다. 화장장이라는 공간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행위 자체로 인해, 무거움이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장장을 부드럽게 감싸는 지붕은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과 같은 가벼운 느낌으로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했을 것입니다.

© 2023 CURIOUS PRAXIS

지붕의 가벼움은 유리로 된 건물 외벽에 의해 한층 강화됩니다. 내부의 주요 프로그램들은 불투명한 박스의 형태 속에 감춰져 있습니다. 박스 안에는 장례예식을 위한 공간, 화장로 및 화장설비, 영안실, 그리고 방문객들을 위한 서비스 공간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주출입구를 통해 로비로 들어가면 두 개의 고별실(4번)이 있고, 이곳은 고인과 작별하는 예식을 치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곳을 거쳐서 고인을 화장로(7번)로 옮기게 되는데, 그 앞에 위치한 홀(5번)에서 고인이 화장로로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볼 수 있습니다. 화장이 끝나기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리는 데, 그동안 방문객들은 연못이 잘 보이는 대합실(12, 13번)에서 기다리게 됩니다. 화장이 끝나면 수골실(14번)에서 뼈를 모아서 집으로 가져가게 됩니다. 전체적인 동선이 합리적으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주출입구과 로비 © 2023 CURIOUS PRAXIS
고별실의 내부 © 2023 CURIOUS PRAXIS
고별실의 제단 © 2023 CURIOUS PRAXIS

고별실의 내부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얼핏 보면 별다른 디자인이 되어 있지 않아서 큰 기대를 품고 들어가면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바닥과 제단은 동일한 소재의 대리석으로, 천장과 벽면은 같은 색상의 나무패널로 마감되었으며, 조명기구는 직접적으로 눈에 띄지 않게 감춰져 있습니다. 슬픔을 누리는데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배제하겠다는 건축가의 의도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 결과, 엄숙한 가운데에서 품위와 격식을 갖춘 장례 예식을 치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화장로 앞 홀 © 2023 CURIOUS PRAXIS
화장로를 향해 열린 문 © 2023 CURIOUS PRAXIS

화장로 앞 홀의 경우, 벽과 바닥의 모서리를 둥글려서 마감했는데, 맞은편 상부의 지붕과 벽체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모습과 조응하고 있습니다. 유선형의 천장 표면에는 조명이 향하도록 계획되었습니다. 흰색 천장에 빛이 닿으니, 날아갈 듯 가벼운 느낌입니다. 보통, 화장로 앞에서 유족의 슬픔은 가장 정점에 달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바닥과 벽, 천장과 기둥과 문 등의 건축요소가 제각각 역할을 담당하며, 깊은 애도의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습니다.


한편 화장로로 이어지는 문은 주변의 벽과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닫혀 있을 때는 화장로의 존재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데, 이것은 화장로가 일렬로 늘어서 있는 모습을 유족에게 느끼게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조차, 배려가 느껴집니다.


2006년 개장 후 10여년이라는 세월을 넘겨서 사용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정도로 나이 들어보이지 않습니다. 건축물의 디자인 자체가 어느 시점의 단편적인 유행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공간을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 매일 매일

정성을 기울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영락없는 건축학도들 © 2023 CURIOUS PRAXIS

이곳, 명상의 숲 화장장은 보통 오전 9시에서 9시 30분 사이 방문객의 관람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에는 자유롭게 시설을 둘러볼 수 있고, 사진도 맘껏 찍을 수 있습니다. 방문전에는 웹사이트에서 미리 예약해야 하고, 장례의식이 있는 날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제가 방문한 날은 저 말고도 한 무리의 건축학도들이 함께 답사를 하였습니다.

명상의 숲 지도 © 2023 CURIOUS PRAXIS
강아지와 함께 공원을 산책중인 주민  © 2023 CURIOUS PRAXIS
© 2023 CURIOUS PRAXIS

화장장에서 나와 건물 주변을 걸어 다니며 연계된 묘역도 함께 둘러봅니다.  마침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러 나온 주민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다시 한번, 호수 건너편에서 화장장을 바라봅니다. 마음에 드리워지는 어두움이나 차가움을 누그러뜨리는 힘이 건물에서 느껴집니다. 고요하게 마음을 가다듬으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숲과 같은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건축가 이토 도요의 마음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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