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바이오로직스가 '송도'로 간 진짜 이유
신생 바이오 업체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
"업종별로 클러스터가 형성되는 한 가지 이유는 평판이다."
지난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비지트 배너지 MIT 경제학과 교수는 책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에서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되는 가장 큰 이유로 '평판'을 뽑았다. 신생 소프트웨어 기업이 옥수수밭 한복판에 있다면 고객들이 미심쩍어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사람들은 옥수수밭에 있는 소프트웨어 기업보다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기업에 더 큰 신뢰를 보낼 가능성이 크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쌓아 올린 명성과 긍정적인 이미지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생 기업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에 설립된 직원 50명 규모의 신생 바이오 업체인 롯데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 클러스터 도시로 떠오르고 있는 송도를 '메가 플랜트' 부지로 선정한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송도에는 글로벌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업체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위치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기준 국내 바이오업체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연간 매출이 3조 원을 돌파하는 등 대표적인 글로벌 CDMO로 자리 잡았다. CDMO 후발주자인 롯데바이오로직스 입장에서는 빅파마(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의 관심과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이 같은 후광과 명성이 필요하다.
합법적으로 후광과 신뢰를 공유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공간과 장소'를 공유하는 것이다. 송도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말고도 국내 바이오시밀러 선두주자인 셀트리온과 신약 개발업체인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메이저급 바이오업체들이 이미 둥지를 틀고 있다. 또 다른 대형 CDMO업체인 SK바이오사이언스까지 송도에 대형 R&D센터를 짓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에 있어서 송도는 이른바 '잘 나가는' 바이오 업체들의 명성과 신뢰를 공유받을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다.
물론 국내 바이오 클러스터가 송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송과 과천 등 다른 지역들도 있다. 특히 오송은 질병관리청과 식약처 등이 인접해 있어 행정업무 처리 등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송에 있는 바이오업체들은 주로 대웅제약과 같은 오래된 제약사들이다. CDMO가 메인 사업인 롯데바이오로직스와 사업적 성격이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송에 갔을 때 얻을 수 있는 기존 업체들의 평판과 신뢰가 그리 높지 않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원하는 미래상은 삼성바이오로직스나 SK바이오사이언스 같은 세련되고 미래지향적인 글로벌 CDMO 업체다.
"3조 원짜리 메가 플랜트 부지로 송도를 선택한 이유가 어떻게 되나요?"
롯데바이오로직스 홍보팀 담당자에게 송도로 최종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예상한 대로 원료 수출입에 유리한 항만 인접 등의 이유를 댔다. 대부분의 언론사 분석 기사도 홍보팀이 설명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배너지 교수는 신생 기업이 그 업종의 선두업체가 자리 잡은 클러스터에 공장을 짓는 또 다른 이유로 손쉬운 전문 인력 충원을 든다. 배너지 교수는 "동종 기업들이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으면 바로 근처에서 사람을 구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의 통찰력은 이번 롯데바이오로직스 사례에도 적용된다. 이미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인력 유출 문제 등을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롯데바이오로직스에 자사 인력을 빼가지 말라는 내용증명 형식의 '경고장'을 세 번째 보내기도 했다. 바이오 분야처럼 R&D 기술력이 회사의 명운을 결정할 수 있는 업종에서 인력 유출에 따른 업무기밀 침해 문제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업계에서는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송도에 메가 플랜트를 준공하게 되면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만큼, 인력 유출에 따른 두 회사의 갈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영리한 선택은 합리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결정이 회사의 성공적인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빅파마들을 고객사로 유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결국 생산능력과 기술력이다. 송도라는 바이오 클러스터 입주에 따른 좋은 평판은 최종 목표로 가기 위한 일종의 교두보로 작용한다. 롯데라는 국내 재계 5위 그룹의 후광(실제로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자신들의 영문 회사 소개서와 홈페이지에서 롯데그룹의 계열사 수와 재계 순위를 강조하고 있다.)과 송도라는 위치적 후광을 얻은 롯데바이오로직스는 과연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위협하는 차세대 CDMO 업체로 성장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