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 님(Nîmes)과 함께

by 제이와이

‘무리’라는 부제의 이번 대 장정엔 내 의지가 가장 강력하게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코로나로 인해 억눌렸던 여행에 대한 열망+어쩌면 이번 여름이 유럽에서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은 가능한 많은 걸 일정 안에 구겨 넣으려는 욕심으로 표출되었다.

결국 이 욕심의 부작용은 아주 작은 발단으로 시작되었다. 모기였다.


님(Nîmes)의 숙소는 좋게 말하면 제대로 유러피안식, 겉으로는 쪽문만 보이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는 긴 통로 공간을 옆집의 정원과 공유하는 구조였다. 어둡고 눅눅하다는 이야기. 유럽 갬성 인테리어로 가득한 숙소에서의 첫날, 아이들이 모기에 대량으로 물려버렸다.(누구 피가 신선한지는 모기들이 제일 잘 아는 법이다)


보기엔 좋지만...

한국인에겐 생소한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 님(Nîmes)엔 잘 보존된 로마시대 유적들로 가득하다. 현재까지도 멀쩡히 사용되고 있는 로마시대 신전(Maison Carrée)과 경기장(Arena) 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많이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


이 바쁜 와중에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소녀들... 그 괴로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뜨거운 숟가락 요법(뜨거운 물에 데운 숟가락으로 부위를 마사지하면 가려움이 가라앉는다...)도 거부하고 약을 발라 주면 따갑다며 아우성인 이 쪼꼬미들로 나의 짜증 게이지는 수직 상승했다.


그리고 이 오래되고 아름다운 도시에서 피할 수 없는 한 가지는...

바로바로 주차난!

일방통행과 비좁은 도로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한층 높은 단계의 헬 주차는 남편의 체력 게이지를 급속히 깎아냈다. 로마시대엔 주차(주마,라고 해야 하나?), 괜찮았나요?


마치 케이크에 올려진 체리처럼, 날씨가 방점을 찍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


숙소 앞 길이 좁아 정차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어딘가 자리가 있는 곳에 일단 주차를 해 놓고 짐들을 하나하나 손수 옮겨야 했다. 그 와중에 비와 울퉁불퉁한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보도 블록의 하모니. 겪어봐야 아는 짜증스러움이다.


님에 도착한 두 번째 날, 비가 그칠 때를 기다렸다 겨우 나와 시내를 한 바퀴 휘돌았다. 징징거리는 애들에 골골거리는 남편, 여긴 꼭 가봐야 해!라는 나, 치고는 그럭저럭 선방한 하루였는데,



그런데, 그만 나의 삐뚤어진 욕망이 삐져 나왔다.


“아비뇽(50분 거리)에 가봐야 해.”

“내일 가자ㅡ”

“내일은 다른 데 가야 해. “

“....”

“가서 저녁만이라도 먹고 오자. “


결국 그렇게 내 욕심대로 아비뇽에 갔다.

저녁으론 맥도널드를 겨우 먹었고, 아비뇽 유수로 유명한 교황청만 대강 보고 온 수박 겉핥기 아니 수박 만져보기 정도의 관광(?)을 하고 지친 몸을 끌고 숙소로 컴백했다.


얼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낸’ 하루인데도,

지금의 이 헛헛한 마음은 뭘까.


내가 이번 여행을 통해 얻으려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아니, 애초에 무엇을 ‘얻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던가? 낯선 곳에서 새로운 풍경과 문화를 느끼며, 가족과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가고자 했던 느슨한 여행자였던 난 어느덧 마치 숙제를 하듯 하루를 시작하고, 이 순간을 즐기기보다는 그다음엔 또 뭘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가족들을 인솔하는 데 있어서도 내 시간과 비용과 노력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려는 최고경영자처럼 굴었던 것이다.


조금 놓칠 수도 있어. 그리고 천천히 가도 돼.


백신을 맞고서 다시 회복하듯 조금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빨강머리 앤>의 앤이 말하길 여행이란 집이 좋다는 것을 알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린 긴 여행을 마치고 함께 집으로 돌아갈 것이고, 앞으로 오래도록 이 시간들에 있었던 고생스러움과 짜증스러움을 소재삼아 즐겁게 이야기 나눌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여행은 내게 목적보다 여정 자체에 의미를 둔 여행이다. 그저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다면 목표 달성이다. (아마 옆에서 고생스레 운전하고 있는 사람은 실소할지도 모르겠다. 집 떠나서 이게 무슨 코코=개 고생이냐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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