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중세 마을 생 길렁 르 데세흐.(Saint-Guilhem-le-Désert, 귀엠 으로 읽기도 한다고. 서양 이름 중 기욤 이란 이름의 기원이 되는 성인)
데세흐란 영어의 Desert, 즉 기원후 804년 이곳에 수도원이 세워지기 전까지 마치 사막처럼 버려져 있던 곳이란 데에서 기원한다. 이 수도원에 예수 그리스도가 매달렸던 진짜 십자가의 조각이 있다고 믿어져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 순례지에 포함되어 있는 곳이다.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엔 Le point du Diable-악마의 다리-라는 곳이 있다. 이곳을 처음 지을 때 악마의 도움을 받아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했는데, 여차저차 하여 그것을 잘 수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화가 난 악마가 이곳에서 수시로 인간의 영혼을 가져가는 곳이라는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가 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지금 난 다리의 악마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엄마, 배고파~”
“엄마, 더워~”
“엄마, 언제 가?”
내겐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엄마 3종 세트 질문은, 여행 내내 내 영혼을 좀먹을 악마 같은 녀석들이다.
급하게 근처 식당을 검색했다. 하지만 코로나의 여파로 인해서인지, 평이 좋은 식당이라도 막상 가보면, 문을 닫은 경우가 꽤나 많다.
“엄마, 더ㅇ..”
“... 아! 그냥 여기라도 앉자!”
더워 악마가 튀어나오려는 것 같아 뭐라도 수습하려고 광장에 있는 적당한 테이블에 앉았다. 후.
하지만, 구글 리뷰에 별이 2.4점인걸 보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리뷰수 54개인데... 주욱 훑어보니 여행자의 함정, 달아나?
결국, 새로운 식당을 찾아 나섰고 그 길에 무서운 악마 3종 세트가 차례로 나와 내 영혼을 요청했다.
마을에서 나와 아래로 좀 내려가야 찾을 수 있었던 식당은 입구가 너무 허름해 보여서 살짝 불안했다. 하지만 이 레스토랑의 진가는 안 쪽 식당으로 들어갔을 때 알게 되었다. 깊은 계곡 위에 걸쳐져 있는 식당이었던 것이다.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물은 (사진 상으론 녹조처럼 보이지만) 의외의 맑음이 있어 바위가 어느 정도 비쳐 보인다. 이 물이 하류로 갈수록 푸른빛 물과 섞이며 에메랄드빛 흐름을 만들어 낼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한결 가벼운 기분으로 다시 마을로 천천히 걸어왔다. 꽃이 흐드러진 우물의 차갑고 청량한 물에 손을 씻자 이제야 가출했던 영혼이 다시 돌아온다. 평점은 안 좋아도 카페와 분수가 산속의 시원한 여름 풍경을 연출한다. 이제야 아기자기한 가게들의 귀여운 물건들과 팔랑팔랑 신기한 장난감 나비가 눈에 들어온다.
수도원은 마치 미드 왕좌의 게임의 세트장을 보는 듯한 절제된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이를 오밀조밀한 마을길과 소박한 중세 가옥이 둘러싸고 있다. 현재도 인구 300명 밖에 안되는 이 작은 마을에 쌓인 시간이 유산이다.
어딜 봐도 보이는 푸르른 나무들이 사막이라는 지명을 무색하게 한다. 이 아름다운 곳에 붙여진 황량한 이름이 야속하다.
여행에선 내가 아는 만큼 보이고 여유가 있는 만큼 느낄 수 있다. 풍족하지 않은 내 마음의 여유를 바닥까지 퍼가는 악마들을 자주 보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