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스포츠에서의 자기 통제.
운동선수가 일정 궤도에 올라서면, 기량을 유지하고 또 발전시키기 위해 2배 3배의 노력을 기울인다. 무엇이든지 실력이 팍팍 성장할 때는 고통스럽지만 재미가 있다. 육상선수가 작년 시즌 기록을 10초 단축했다면 (기록경기에서 10초는 어마어마한 성장이다) 훈련이 제아무리 고통스러웠을 지라도 자신이 부쩍 성장한 사실 자체가 스포츠를 즐길 이유로 충분하다.
기량이 부족할 때야 자신보다 뛰어난 선수들이 사방에 있기 때문에 그 선수들을 바라보고 훈련하면 되지만, 무림고수 (경지에 오르면) 가 되어서 싸워야 할 존재는 오롯이 어제의 내가 된다. 그리고 기량이 일정 수준 이상 으로 올라서면 그때부터 실력은 눈에 띄게 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목표의 기준이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자신의 기량이 늘 부족한 것 같은 느낌에 시달린다.
기량이 비약적으로 늘지 않는다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완성단계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마라톤 경기를 예를들면, 선수가 초반의 기록을 마지막까지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힘을 일정하게 쓰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많이 써야 한다. 그래야 속도가 유지된다. 단순히 더 빨리 달리고 싶다고 해서 기록이 단축되는 것도 아니라 불필요한 동작을 줄이고 선수의 신체와 정신을 더 정교하게 다뤄야 하는 것이다. 오래 뛰기 위해서는 움직임이 단순해져야 한다.
그래서 선수들이 기량이 늘지 않는 다고 느낄 때 크게 두 가지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 첫 번째는 절대적 훈련량을 늘리는 방법이고 나머지는 훈련량을 줄이는 방법이다. 대게 기질적으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연습 때나 시합 때 긴장을 많이 하거나 불안한 유형은 절대적인 훈련량을 늘림으로서 심리적 안정을 찾고, 반대로 타고나기를 느긋하며, 매사에 걱정이 별로 없는 성격의 선수들은 훈련량을 조절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 실력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훈련량을 기존보다 조금 줄인다고 해서 기량이 드라마틱하게 퇴보하지 않기 때문에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실력이나 성적에 큰 변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과도한 불안감 의한 오버트레이닝은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거나, 심리적 번아웃이 와서 훈련 자체의 동기를 잃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다.
하지만 선수들이 훈련량 조절을 스스로 하도록 결정하도록 계속 내버려 두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지 않을 만큼 적당히 훈련하기도 하며 (예외도 있지만) 경험이 많은 선수들은 적은 노력으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젖어 훈련량을 점점 더 줄여가게 된다. 그러면 최소한 소화해야 하는 훈련과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선을 넘지 않는다. 이러한 전략아래, 한해, 두해 지나서 어쩌면 운동선수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신체적 단련을 게을리하는 동안 후배들의 경험은 쌓이고 기술적, 체력적으로 탄탄해진다. 고로 훈련을 게을리한 좋은 선수들은 그동안의 약빨이 다함으로써 흔히 말하는 '세대교체'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수년간 정상에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굳건히 최고의 성적을 내는 선수들을 보면, 어쩌면 실제로 훈련량을 줄였음에도 정상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기적으로는 가능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두 번 말하면 입 아프 긴 하지만, 노력이라는 것이 꼭 훈련량 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들의 노력에는 훈련법의 끊임없는 변화, 그리고 병적인 자기 통제도 아주 큰 기여를 한다.
다시. 선수의 실력이 일정 수준에 올라서서 더 이상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을 때 선수들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훈련량을 늘리는 것도, 줄이는 것도 아니다. 선수가 해야 할 일은 얼마만큼 훈련 이외의 방해 요소를 통제하는는 일이다. 실제로 내가 국군체육부대에서 선수생활을 할 때, 훈련 환경은 아주 열악했고 (부대에 아이스링크장이 없었다) 훈련량도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현저히 부족했다. 하지만 물론 전국대회 수준이긴 해도 줄어든 훈련 스케줄에 비해 기량을 잘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같은 시간에 충분히 자고, 잘 쉬고, 같은 시간에 밥을 잘 먹을 수밖에 없는 군대 질서 덕분이라고 믿는다.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트레이닝은 기대할 수 없는 환경에서 조차 일상의 크고 작은 불필요한 일들을 제거함으로써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에서 연습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태릉 선수촌 같이 일정 부분 생활이 통제된 환경에서 훈련하지 않는 이상, 선수들이 스스로 훈련 이외의 스케줄을 능숙하게 통제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훌륭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엘리트 스포츠 현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동의하겠지만 모든 선수들이 그런 자기 통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선수를 위한 훈련 여건은 장비의 발전, 인식의 변화로 점점 좋아지고 있다 (과학적 트레이닝 방법, 재활여건, 부상관리, 스포츠 인권 신장 등등).
은퇴를 하고 든 생각이지만, 성인 선수가 되어 마주하게 되었던 수만 가지의 일상적 유혹들 (주말 약속, 술, 인간관계)을 내가 실제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오롯이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있었던 것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나에게 주었던 쓸데없는 행동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러한 쓸데없는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서 불필요한 결과를 만들어 내었는지 생각해보면 아쉬운 선택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선수를 믿어주는 것도 지도자나 부모의 역할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수의 인간적인 부분 (존엄성)을 믿어줘야 하는 것이지, 잘못된 훈련을 방치하고 불필요한 일상적인 부분들까지도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오히려 도움을 줘야 하지 그저 믿고 맡길 일은 아니다. '너는 잘하는 선수니까 걱정 안 해, 아무렴 다 잘하겠지.' 라던지, '선수면 자기 관리는 기본으로 해야지.'와 같은 말은 코치나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말과 같다. 진짜 좋은 사회적 지지자 라면, '넌 실력은 진짜 최고인데, 휴식하는 법이 조금 잘못되었어.' '최소한 8시간 정도는 잠을 자는 것을 노력해봐.'와 같은 말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선수의 기분이 상하더라도!). 자기 통제가 안 되는 선수들을 향해, '쟤가 저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라며 속 편한 소리 하지 말란 이야기다. 선수의 인권보장이라는 말에 숨어 그들의 본질적 게으름을 용인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선수들은 올림픽 시즌이나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실행하는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이 좋은 성과를 보장해 주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하루의 일상을 얼마만큼 통제하고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피겨 불모지에서 김연아가 나왔고, 수영 불모지에서 박태환이 나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환경 탓과 기량 향상은 아무 관계가 없다. 대신 열심히 훈련하고, 잘 먹고, 잘 쉬는 이 루틴을 오랜 시간 자신의 생활에 체화 시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슈퍼 엘리트 선수로서 경쟁의 압력을 견디고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하루하루 해내야 할 일상적 성취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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