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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안 Aug 23. 2019

끝나도 아직 끝나지 않는 것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의 프랑스 원재는 <Jusqu'à la garde>로 '보호받기까지'라는 의미다.  그리고 영어 제목은 '양육권', '보호권'라는 의미의 <Custody>다. 각기 다른 이 세 가지의 제목은 이 이야기를 잡아내는 키워드로 사용된다. 미리 말하자면 이 영화는 <Custody>으로 시작하여 <Jusqu'à la garde>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 뒤, <아직 끝나지 않았다>로 마무리한다. 이 영화가 전해주는 강렬하고 시사적인 체험을 이 세 가지 키워드로 이야기하고 싶다.


Custody


 영화는 한 부부의 재판으로 시작된다. 남편의 폭력성을 근거로 자신과 아이들로부터 접근 금지처분을 원하는 아내와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남편을 보여준다.  재판관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이 재판은 관객에게 두명의 부부 사이에서 진실을 말하는 자와 거짓말을 말하는 자가 누구인지 질문한다. 하지만 정말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진실을 말하는지 재판만 봐서는 도저히 알아내기가 어렵다. 아니,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법적인 시선으로 이들을 아무리 바라보지만 진실은 재판장에 없다.

 양육권, 보호권이라는 단어가 주는 견고한 사회적 뉘양스는 마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이 이들을 지켜줄 것 같은 안정감을 준다. 재판관은 아내와 남편 사이의 대립을 매우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격주 주말마다 남편 앙투앙(드니 메노셰)와 아들 줄리앙(토마 지오리아)이 만나는 것으로 재판을 끝마친다. 관객은 이 재판 결과에 대해서 아직 이견을 갖기 어렵다. 앙투앙과 미리암(레아 드루케) 중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 결과는 어떻게 보면 가장 합리적인 결과라 말할 수도 있다.

 양육권(custody)을 가리는 재판은 이제 끝났다. 이제 진실과 마주하기 위해서 보호받기까지(Jusqu'à la garde)의 과정을 볼 차례다.


Jusqu'à la garde

 앙투앙이 줄리앙을 데리러 자동차를 타고 온다. 앙투앙의 거대한 체구에 비해 조그만 앙투앙의 경차에 줄리앙을 태우고 이동한다. 줄리앙은 차를 타고 줄곳 앙투앙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저 경멸의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줄리앙의 증오가 담긴 눈빛은 곧 불안의 눈빛으로 변하게 된다. 작은 경차에 꽉 차도록 앉아있는 앙투앙과 격하게 운전하며 좌우로 흔들리는 차량에 의해 줄리앙의 작은 몸집은 힘없이 휘청거린다. 주말을 앙투앙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앙투앙은 줄리앙에게 바뀐 미리암의 전화번호를 캐묻는다. 이때의 줄리앙의 눈빛은 공포가 서려있다. 반복되는 폭력성에 의해 주입되듯 학습되어버린 끔찍한 공포가 작은 차 안을 가득 채운다.



 앙투앙의 폭력적인 성향은 영화가 흘러갈 수록 점차 거칠고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줄리앙에게 협박하여 얻어낸 집주소와 열쇠로 미리암이 살고 있는 집을 들어가고, 딸아이의 파티에 찾아와 미리암을 겁박한다. 서서히 앙투앙의 본모습이 들어날 수록 재판장에서의 그의 모습이 얼마나 거짓되고 가식적인 모습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진실은 재판장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제 진실을 알게된 관객은 이제 그 진실에 의해 짓눌리며 영화를 봐야한다. 앙투앙이 아내와 아들을 해치지 않을까 마음을 조아리며 그들의 시간에 함께한다. 리얼 타임으로 연출된 마지막 극후반부 장면은 앙투앙이 타고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소리에도 공포를 느낄만큼 예민하게 반응된다. 미리암이 들은 작은 엘리베이터 소리, 문을 발로 차며 소리치는 앙투앙, 갑자기 발포된 소총에 의해 귀가 다친 줄리앙의 울음소리 이 모든 것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되어 가정폭력의 끔직한 현실을 체험시킨다.


 다행스럽게 옆집 할머니의 신고로 앙투앙은 잡혀가지만, 욕실에 웅크려 누운 줄리앙과 미리암의 울음 소리는 방금까지의 공포를 끝내지 않고 이어나아간다. "끝났다"며 말하는 미리암의 목소리와 경찰의 말에도 관객은 아직 끝나지 않은 무엇을 느끼며 계속해서 불안함에 휩싸인다. 보호받기까지(Jusqu'à la garde)의 이 과정은 리얼리즘이 지닌 강력한 체험성을 통해서 가정폭력의 실체를 체험시킨다. 하지만 미리암의 "끝났다"는 말에도 안심할 수 없는 우리에게는 아직 한 가지가 더 남아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영화는 감독 자비에 르그링의 첫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아직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정폭력에 대해서 시급히 그 심각성을 알리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이 영화는 '가정폭력'에 대한 가장 메세지를 지닌다. 영화의 처음처럼 법적인 처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법의 사각지대을 말하고, 영화의 중후반처럼 그 속에서 이뤄지는 가정폭력의 끔찍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다. 아직 끝나지 않는 현실의 가정폭력은 영화처럼 엔딩크레딧과 함께 뚝 끊기지 않는다. 아직 끝나지 않은 수많은 가정폭력의 현실은 영화가 끝나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 영화는 신고한 할머니의 닫힌 문 이후로도,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그 시간에도 영화의 소리는 끝내지 않는다. 아직 끝나지 않는 무엇을 감각하길 바라며 소리를 이어나간다. 그것은 영화 외부의 소리로 이 시간에도 분명 존재하는 가정폭력의 그림자이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본 사람들이 영화가 끝난 이후로도 우리를 옥죄는 무엇을 느꼈기를 바란다. 영화는 끝나도 현실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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