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여름은 우리의 마음에 고스란히 남습니다
온전히 여름을 제주에서 보내기 시작한 것은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제주 한 달 살기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긴 여정을 꾸려 차를 배에 싣고 가서 여러 날을 제주에 머물면서 일상을 살듯 여행을 했다. 그 아이가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어 해마다 초여름의 향기가 짙어지면 "엄마, 제주도 생각나. 제주에 가고 싶어."라고 이야기를 한다. 어떤 기억이 해마다 여름이면 널 그곳으로 부르는 걸까.
어떤 날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고, 어떤 날은 억새가 흐드러지게 핀 중산간 도로를 달려 오름에 오르기도 했고, 노을 지는 시간, 해 뜨는 시간을 맞춰 용눈이 오름에 오르기도 했고, 어떤 날은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기도 했고, 제주의 화가들을 만나러 미술관을 다니기도 했고, 세화 오일장에서 장을 봐와서 저녁을 먹기도 했지. 비가 내리거나 맑은 날이거나 자주 카페에 가서 차를 마셨고, 숨은 맛집을 찾아 기다리는 지루함도 마다하지 않았고, 제주 비경을 찾아 제주 삼나무 숲길을 따라 운전하며 여기저기 잘도 다녔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게으름을 실컷 부린 날도 있었다.
하루의 끝은 바다였다. 제주에선 이런저런 일을 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였지만, 여름의 제주에서는 매일 바다에 갔다. 여름에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일이 바로 제주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었으므로. 물때를 살펴 아이들이 놀기 좋은 시간대를 찾아갔다. 가서는 가만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일도 좋았고, 부드럽고 시원한 적당한 온도의 바닷물에 들어가는 일도 좋았다. 바다에서 실컷 놀다가 지겨워지면 뭍에 나온 게나 미역을 잡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도 큰 즐거움이었다.
여행의 시작이 있으면 언제고 여행의 끝이 돌아온다. 시작은 언제나 설레지만, 긴 여행의 마지막은 아쉽기만 하다. 좀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에 시간이 더디 가길 바라지만 집으로 돌아갈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끝이 있어야 다시 시작이 있다. 그래야만 다시 설레고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일까. 나는 늘 제주에서의 마지막날엔 지는 해를 바라보며 다음을 생각했다. 다가올 다음 여름을. 그렇게 해마다 제주에서 보낸 여름의 기억을 차곡차곡 마음에 담았다. 켜켜이 담긴 기억은 모두에게 곧 그리움이 되었다. 그 그리움이 해마다 여름이면 우리를 부르겠지. 여름이 남아있는 그곳, 제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