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소댕 Jun 05. 2024

러시아 딱딱했던 단어에 깃든 순박한 사람들

친구가 결혼을 했다. 러시아에서 러시아 사람과.

호주는 브라질에 이어서 세계에서 6번째로 큰 나라이다. 면적 상 가장 큰 나라는 러시아, 그리고 캐나다. 시드니에서 상하이까지 중국동방항공으로 10시간을 이동. 그리고 16시간 레이오버 이후 바쁘게 모스크바행에 몸을 실어 10시간을 또 가면 러시아의 수도, 크렘린 궁과 테트리스 궁전으로 유명한 성 바실리 성당에 도착한다. 그리고 오늘 방금 그곳에서 또 다시 상해로 시드니에 도착한 참이다.


러시아는 매우 불편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에 반대하여 대러시아 경제제재를 시작해 Visa, Mastercard의 사용이 중지되었고 그래서 모든 결제는 USD를 러시아로 가져가 현장에서 환전을 해야한다. 은행은 또 어찌나 서류가 많고, 항상 여권과 체류증을 소지해야하며 모든 쇼핑몰과 대중교통 수단에 타기전 짐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음식은 묘하게 입에 물렸으며, 러시아의 카카오맵인 얀덱스맵은 내 위치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항상 튕기기 일쑤! 게다가 영어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으니 말은 안통하는데다가 각종 구글과 SNS을 접속하려면 현지 SIM과 더불어 AdGuard VPN을 따로 Subscribe 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러시아가 매우 사랑스러워졌다.


이 모든 불편함은 오히려 내가 감내 가능한 수준이였으며 못지 않게 도움을 주려했던 손길들과 휴양지에서 왕왕 일어나는 바가지 씌우기(?), 또는 강매하는 길거리 판매상을 상대할 필요가 없었기에 오히려 크고 깨끗한 도로와 감탄이 나오는 건축물 그리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디저트가 못내 그리워질 예정이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트위터의 짤 내용 중, 러시아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도움을 준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제 나도 몇 가지 예시를 들어 줄 수 있다. 그 중 하나로는 모스크바의 카잔스키 역에서 위성도시인 랴잔 지역으로 이동하려는데 아무리 봐도 내 티켓의 플랫폼을 찾지 못해, 두리번 거리고 있자니 험악한 표정의 청소부 아저씨가 뭐라뭐라 소리치기에 티켓을 들어 쓱 보여주니 10번 플랫폼이라며 손가락으로 가르쳐 준다던지, 호텔 체크인을 하는데 아주 예쁘고 어린 직원이 나는 영어도 한국어도 못하지만 안녕하세요!를 할 줄 안다며 아주 수줍게 웃던 일이라던지.


러시아 결혼식의 주인공인 J의 신랑인 M은 러시아 사람들은 매우 잘 웃지 않는다고, 그리고 친구의 의미가 매우 좁고 깊다고 했다.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니 만난 지 얼마 안된 사람은 '친구'라는 범주가 아닌 그냥 '아는 사람' 정도라고 한다고 했다. 직접 오기전에 미디어에서 접한 러시아와 그 나라의 지도자는 매우 딱딱하고 엄한 인상이었기에 모두가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잘 알지 모르는 사람에게 웃는 걸 바보같다고 생각한다고 들었는데 이게 왠걸. M 너 우리한테 거짓말한거야? 굼 백화점 바로 앞 붉은 꽃들로 장식된 식당 Bosco Cafe 종업원도, 유명한 고급 레스토랑인 카페 푸쉬킨 직원들도, 그리고 가성비 좋은 러시아 국민음식 블린을 파는 쩨레목의 직원들도 잘 웃어만 주던걸. 겉으로 봤을땐 러시아인이건 호주인이건 크게 눈에 띄일만한 특징도 없었고, 오히려 수도인 모스크바 사람들은 옷을 굉장히 잘 입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불곰국과 보드카는 맞지만 그 무표정 뒤에 숨어있는 사람들은 매우 따듯했다. 톨스토이가 집필한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과 한 때 유럽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이었던 모스크바는 이곳이 위대한 볼쇼이 발레의 시작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크렘린 궁은 거대했고, 국영 백화점이었던 굼 백화점은 유럽 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안타깝지만 미국이나 호주같이 어린 나라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오래된 역사의 고고함을 자랑한다.



오지 않았으면 모를 일들. 무지함에 가려 저지를 앞으로의 실수들이 두렵다. 선입견에 가려져 두려워했고, 발음이 어렵다는 이유로 단 한번도 즈드라스부이쩨(안녕하세요)를 제대로 내뱉어본 적이 없는데 결혼식 참석 둘쨋날에는 먼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말을 걸어주던 사람들이 고마웠다. 직접 겪어본 러시아의 결혼식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나이지리아의 속담 처럼, M을 키워온 모든 사람들. 그의 부모님, 조부모님, 친척분들과 마을 사람들 그리고 그의 친구들에게 둘러쌓여 따듯한 말과 포옹 그리고 술과 노래와 문화가 함께 한 축제. 오늘은 피곤해 길었던 이틀의 결혼식 썰을 풀어보고 싶지만 이만 줄이고 내일로 미뤄야한다. 이 사랑스러운 러시아를 좀 더 알려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이 시국에 러시아 여행을 간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