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좋은 대학 입학 그리고 행복과의 관계 (2)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을 가를 때 흔히 다수와 소수를 구분해서 다수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신체적 질병인 경우는 사례도 없거니와 그 질병의 신체적 증상이 뚜렷하게 때문에 그에 해당되지 않고 어떤 작업이나 과제에 대한 해결도 그 해결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소수의 성공을 비정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심리적 문제만큼은 다수에 속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판단을 하곤 합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심리적 불안을 잠재우가 위해서고 다수의 선택에는 내가 그 이유를 몰라도 그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론적 판단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소수에 속한 사람들을 좀 이상하거나 괴팍스러운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선택에는 그 선택으로 인해 발생하는, 또는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결과가 따릅니다. 좀 극단적인 예이지만 모레가 중요한 시험 날이어서 몹시 불안한 마음 때문에 작심하고 잠을 자지 않으면서 공부에 집중하려 한다면(선택) 그 시도는 신체적인 한계 때문에 성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작 시험날 피곤하고 지친 몸과 정신 상태 때문에 제 실력을 십분 발휘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결과) 이와 마찬가지로 자녀로 하여금 무조건 공부에만 집중하게 사실상 강요한다면 아이는 지루함과 피곤함 때문에 학습 의욕도 거의 소진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서 짜증이나 화가 나기도 하지만 다른 친구들과의 비교 때문에 옆에서 뭐라 하지 않아도 마음이 몹시 급해지고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이때 적지 않은 엄마들은 "그럼 어떡해, 남들 다 그렇게 시키는 공부를 내 아이에게 시키지 않았다간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만큼 지금 불안해 죽겠는데"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자녀가 살고 있는 열악한 환경, 그러니까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나서 학원에 가서 컵라면으로 저녁밥을 때우면서 또 공부를 하고 캄캄한 밤에 집에 돌아와 다음날 한두 시까지 학원 숙제를 주말도 반납한 채 매일 같이 반복해야 하는 환경 또는 조건을 생각해 본다면 행복은커녕 만성적인 노이로제와 심한 욕구불만으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엄마들의 마음이 불안해지진 않을까요? 또는 그렇게 엄청난 양의 공부 때문에 과부하가 걸린 아이가 학교 수업만이 아니라 학원 수업의 진도를 따라가면서 그 많은 공부의 양을 제대로 소화해 내는지, 혹시 형식적으로만 학원 수업을 듣고 나서 반강제 식의 학원 숙제를 졸린 눈을 비벼가면서 얼른 끝내고 자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요령을 피워가면서 한다고 상상한다면 역시 엄마들의 마음이 불안해지진 않을까요?
신문이나 방송 그리고 제가 참여하고 있는 자녀 교육과 관련된 시민단체의 토론회를 통해서 자녀,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이 자녀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불안해하는지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불안을 해소해 줄, 더 정확히 말해서 "완벽하게" 해소해 줄 방법의 타당성과 현실성인데 그저 불안을 잠시 잠시 잠재우기만 할 뿐 현실성도 타당성도 거의 없는 방법으로는 자녀의 행복은 고사하고 성적을 올리는 데도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마약처럼 불안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다수의 편에 속하더라도 그런 선택은 객관적인 사실이나 증거에 기반한 주관적인 신념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고 막연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녀의 성적이 좀처럼 향상되지 않는다면 다시 더 불안해진 마음 때문에 아이로 하여금 공부에 더 매진할 것을 요구하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녀와의 정서적 관계도 점점 더 악화될 위험도 존재합니다.
오래전에 저는 프랑스 정신분석학자인 라캉이 사용한 개념인 주이상스(jouissance)라는 개념을 설명드린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어로 원래 "향유"나 "즐긴다"를 뜻하는 주이상스에 라캉은 "선택"이라는 뜻을 포함시켰는데 이 말은 여러 가지 가능한 선택지들 중에서 내게 가장 큰 즐거움이나 이득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하나의 선택지를 고르는 것을 뜻합니다. 이를 갈등 상황에 대입해 보면 이수일과 심순애 식의 유치한 신파조로 얘기할 때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택하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택하자니 다이아몬드가 탐이 나는구나" 같은 갈등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은 당연히 선택하지 않은 다른 선택지의 이점을 포기해야 함을 뜻합니다. 제가 이 얘기로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인간의 삶에서 불안은 늘 존재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불안을 완전히 없애버리려는 헛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도를 하지 말고 막연하거나 근거 없는 집단적 판단(?)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의 조건들을 고려하면서 게 중에 가장 나아 보이는 선택을 하고 중요한 점은 그 선택으로 말미암아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불이익에 눈 감지 말고서 오롯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인데 이때 가장 핵심적인 점은 그 선택이 100점짜리 정답이 아니기에 발생할 수 있는 불안의 존재를 정직하게 인정할 뿐만 아니라 현실 속 조건들 속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애써서 견뎌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다른 글에서도 학습의 효율성에 대한 심리학 이론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학습에 집중할 때 어느 지점(시간과 노력의 정도)에 도달하면 학습의 효율성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그런데 이때 집중력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선행 조건인 동기나 의욕도 중요한 변수로서 학습에 대한 동기나 의욕이 적다면 당연히 학습에 대한 집중력 또는 몰입도도 낮을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서 학습의 효율성도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한국 교육의 특성상 사지 또는 오지선다형 문제를 맞히기 위해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면서 무조건 외우기만 하는 학습이 생각, 추론, 판단 그리고 비판이나 의문 제기 같은 교과서적인 고차원의 학습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집중력이나 몰입도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고서 그저 외우기만 하는 학습의 특성상 지루함과 그로 인한 피로감 때문에 학습의 효율성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그렇게 달달 외워서 좋은 성적을 얻었더라도 이해를 바탕으로 무슨 내용인지를 파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습한 내용은 시험이 끝나면 담배연기처럼 금세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해독이 거의 불가능한 암호처럼 기억 속에 파편처럼만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말로 암기 학습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 이해를 바탕으로 학습을 했을 때 그 지식이 다른 기존의 지식들과 연관되어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저장된 기억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더 쉽고 더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기 때문에 암기식 학습도 상당히 중요하지만 오로지 암기만 하는 학습은 효율성 측면에서만 아니라 동기 유발의 측면에서도 해롭고 이런 지루하고 힘든 암기식 학습만을 오랫동안 강요당할 때 아이들로 하여금 심한 욕구불만을 느끼게 해서 성격 형성에도 이로울 것이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함입니다. 이 점은 자녀의 교육에 대한 태도에도 적용할 수 있을 텐데 자녀의 미래에 대해 부모, 특히 엄마가 불안해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자녀의 상태, 즉 신체적 정신적인 한계와 학습에 대한 동기나 의욕 등을 감안해서 그리고 중요한 점은 엄마가 일방적으로 알아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원에 다닐 의향과 장소 그리고 학원에서 꼭 보충해야 할 과목 등을 선택할 때 자녀와 먼저 의논해서 필요하다면 엄마가 속으로 미리 잠정적으로 내린 결정을 일부 변경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좀 유치한 예이겠지만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식사량과 함께 좋아하는 반찬들이 있어야 할 텐데 이런 점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배가 찼는데도 더 먹기를 강요하거나 좋아하는 반찬은 차리지 않고 몸에 좋다고 소문이 났지만 좋아하지 않아서 끌리지 않는 반찬만으로 밥 먹기를 강요한다면 밥을 먹는 행위는 더 이상 맛있게 즐기며 먹는 즐거운 행동이 아니라 짜증 나고 힘든 행동으로 변질되는 것처럼 공부는 자녀의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개인적인 한계를 훌쩍 넘어서는 고통으로 변질해서 효율성은커녕 피하고 싶은 과중한 부담으로만 느껴질 위험이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