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게 된 점포는 최근 A 그레이드로 올라선, 권역 내 매장 규모와 매출이 다섯 손안에 드는 지점이었다.
협력업체 포함해 180명이 넘는 사원이 근무하며 100명을 동시 수용하는 직원 식당도 갖추고 있다. 매장 근무 직원은 파트너라고 적힌 명찰을 달고 있기에 겉으로 봐서는 다 똑같은 직원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MD2팀의 유일한 pt로, 정규직 사원들과는 달리 Staff35라는 직급으로 입사한 기간제 계약직이다. 나와 같은 계약직의 분포는 팀당 1명~2명. 1층의 신선, 가공 파트는 제조사들이 파견한 직원들이 협력업체 사원이라는 이름으로 근무하기에 여기는 보통 정규직 관리자들이 이들과 소통하며 매장을 운영해 나간다.
어떻게 내 주위의 이 모든 분들이 정규직일까.
정규직 사원은 61세까지 정년이 보장되지만, 남자 관리자의 경우에는 애석하게도 55세 정년으로 차이를 둔다. 점장일지라도 예외가 없는데, 그래서 보통 점장으로 발령이 나서 점포 두세 군데 인사이동 후에는 퇴직을 맞이한다.
정규직 사원은 매년 15개의 연차와 5개의 연중 휴가가 부여된다. 상반기 성과급이 있으며, 설 추석 명절에는 기본급의 100% 상여금이 지급된다. 의료비와 자녀 학자금(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을 지원받을 수도 있다.
2007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마트 내 비정규직 1만 5천여 명은 정규직 사원으로 전환되었다. 기존 정규직 사원과의 구별을 위해 신규 직급(전문직 사원)을 별도로 만들었지만, 그래도 정규직이 되면서 정년보장이나 의료비 지원 같은 최소한의 안전망이 생겨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팀원들은 연차와 대휴(대체휴가-한 달에 있는 국경일이나 연휴만큼 대휴가 발생한다)를 사용하면서 평균 16일 정도 근무했다. Staff35인 내 경우에는 3개월 전까지 연차가 0이기 때문에 평균 근무일수가 23-24일이 되었다.
MD2팀은 ‘패션문화’라고 불리며, 여성복, 남성복, 아동복, 언더웨어, 스포츠, 골프, 피혁잡화, 섬유잡화, 완구, 문구가 한 팀으로 묶여 있다. 휴게실에서의 휴식타임이 되면 이 팀 저 팀이 한 데 모인다. 아무 생각 없이 소파에 앉아 여사님들의 에피소드를 듣다가도 정년이 보장된 그들과 6개월 계약직인 내 처지를 생각하면 괜스레 홀로 숙연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정규직과 계약직은 어떤 부분이 다를까.
# 사원증
정시출근과 정시퇴근을 자랑하는 우리 마트는 오후 5시 15~20분 전부터는 매장 내 근무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안 보인다. 마감조 근무자들은 4시 30분부터 저녁을 먹으러 가고, 오픈조 직원들은 옷 갈아입고 퇴근하려고 락커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퇴근과 석식 후 휴식으로 왁자지껄한 락커는 55분을 기점으로 썰물 빠지듯 사원들이 사라지는데... 그들은 마그네틱 사원증을 갖고 있어서 이걸 비콘 기기에 태그 하면 4:58분이 5:00가 되는 마법이 일어난다. pt인 나는 그걸 모르고 처음에 같이 센싱을 했다가 급여근태 담당에게 정시퇴근 지켜달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 J야, 집에 가자.
- 저는 지금 가서 찍으면 58분에 찍혀서 안돼요, 먼저 가세요.
- 사원증 안 줘? 총무한테 만들어달라고 해.
그 말을 듣고, 다음날 창고를 지나가던 지원팀의 총무K를 불러 세웠다.
- K님 문화패션 스태프인데, 저도 사원증 만들 수 있나요?
- 으음, 제가 알기론 안될 텐데. 스텝은 사원증이 안 나와요. 스마트폰 앱으로만 센싱 하셔야 돼요.
# 근무복
- 자기는 추위를 많이 타나 보네.
- 겨울에도 추위 별로 안 타는데, 열이 많아서 매장에 들어가서 일하면 늘 덥네요.
- 근데 왜 겨울 조끼를 입고 있어. 여름 조끼로 바꿔 입어. 이건 매쉬로 되어 있고, 깃도 없어서 훨씬 시원해. 우리는 겨울에도 답답해서 그거 못 입어.
마침 사무실로 들어가는 총무K를 발견하고 냉큼 뒤를 따랐다.
- K님 저 여름 조끼 받을 수 있을까요? 이건 통풍이 안돼서요.
- 아, 언제 입사하셨죠?
- 저요 3월에 입사했는데요.
- 잠시만요, 비품 담당한테 한번 물어볼게요. (-통화 중) 스태프분이요. 문화패션에 있으신 분이요. 여름 조끼 받으러 오셨는데 어떻게 할까요? 아 6개월은 그렇죠,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내려놓은 뒤) 원래 스탭은 근무복 하나만 지급인데.
- (...) 그럼 이거 세탁해서 도로 드릴게요, 여름 조끼 받을 수 있죠?
- (.....) 그럼 퇴사할 때 일괄 반납해주세요. 여름 조끼는 두벌씩 지급되니까 나중에 3벌 같이 반납하시면 되겠네요.
근무복 하나에도 엄격한 룰이 존재했다. 이 근무복을 개인적으로 유용할 생각은 없는데 괜스레 설움이 밀려왔다.
# no image
꽃 이름으로 시작되는 사내 앱(app)이 있다. 여기에는 회사의 조직도와 거기에 속한 부서원들이 소개되어 있고, 연락망을 통해서 문자나 전화를 바로 보낼 수 있게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부서원 소개란에 걸린 모습은 하나같이 똑같았는데,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던 8년 전 검은 정장을 갖춰 입고 찍은 모습들이 근사해 보인다. 20명의 사원들을 하나씩 지나 아래로 아래로 스크롤을 쭈욱 내리면 가장 마지막에 pt사원인 내가 나온다. 나는 사진도 없고, 배경도 없고, 그야말로 그림자 같은 사람 모습 음영만이 걸려 있다. 직군 진열pt. 잠시 스쳤다 가는 인력. 계열사 채용 사이트에서 입사 지원서를 적을 때 쓴 증명사진이 있다. 그거라도 연동해서 걸어주면 좋을 텐데. 나는 그림자 인력처럼 그렇게 회색 음영 인간으로 사내 앱에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