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타
보고타로 향하는 버스 안. 옆 자리에 두툼한 군복을 입은 군인 아저씨가 혼자 여행하는 나를 전쟁터 한복판에 있는 아이를 보듯 무척이나 신기해한다. 그는 이런 위험한 여행을 하는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수차례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걱정 어린 눈길을 잔뜩 보냈다. 계속해서 번역기를 써가며 '얼마나 여행을 할 건지', '걱정이 되지 않는지'와 같은 것들을 꼬치꼬치 물어보았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 걱정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행에서는 나를 향한 뜨거운 관심이 전혀 귀찮지 않다. 자신이 살아가는 데 전혀 도움이 될 리 없는 일개 스쳐가는 (가난한) 여행자에게 보내는 호기심은 무척이나 순수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눈꺼풀이 무거운 순간에도 미소 지으며 친절히 답할 수 있게 되는 거다. 배낭여행은 비록 몸은 불편할지라도 의심 없이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호의가 지친 마음을 스르르 녹게 만든다.
그는 추운 버스 안에서 본인이 덮고 있던 담요를 한 꺼풀 열어 무릎에 덮어 주었다. 그러자 금세 따뜻한 온기가 옮겨져 왔다. 국경을 넘으며 심란했던 마음이 비로소 완전히 진정되는 듯하다.
그는 내가 묵으려는 호스텔이 혹시 마약소굴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앞장서서 인포메이션 직원에 성큼성큼 걸어가 주소를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성큼성큼 큰길로 가 직접 택시를 잡아 가격을 알아보고는 택시기사님과 이야기가 잘 되었는지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미소 지으며 안심한다는 표정을 보였다. 그는 메모지에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 메일 주소를 적어 주며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해라고 말했다. 이름처럼 천사 같은 가브리엘 아저씨. 얼굴은 가물가물하지만 이전에 비정상회담에 나왔던 이집트에서 온 새미와 닮아 눈이 동그랗고 선한 인상으로 기억한다.
늦은 저녁 도착한 보고타의 호스텔 문을 여니 태극기가 벽 한가운데 걸려 있었다. 그리고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거실 겸 주방인 작은 공간에 대여섯 명 정도의 한국사람들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라 분명 한인 숙소가 아니었는데?' 여행을 하며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라 반가움보다는 당혹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갑작스러운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상대 쪽도 놀란 것 같다. 하지만 이내 '한국 사람이세요?'라며 먼저 맞아주셨고 '네, 안녕하세요.'라며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여행 초기로 다시 리셋이 되는 기분이다.
"어디서 오는 길이세요?"
"아 저는 베네수엘라에서 바로 넘어왔어요."
대답이 끝나자마자 미리 맞춘 듯 동시에"우와~"하고 탄성이 터졌다. 어떤 분은 베네수엘라에 가는 게 가능하냐며 되묻기까지 했다. 그런 반응을 보니 이렇게 무사한 건 역시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호스트인 존의 안내로 4명이 함께 쓰는 여자 도미토리에 짐을 풀었다. 모두 한국사람이라 다시금 한인숙소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영어를 쓰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는 한국 사람을 만나면 더 편하고 즐거워야 하는데 어쩐지 더 굳어버렸다. 근 세 달 가까이 한국인을 본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뭐 점점 익숙해지겠지 하며 짐을 대충 풀어 침대 옆에 펼쳐두었다. 새로운 숙소에 무사히 도착하는 날이면 긴장이 완전히 풀려버려 아주 깊이 잠들게 된다.
다음날 늦은 아침까지 실컷 침대에서 늑장을 부리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주섬주섬 나갈 준비를 했다. 보고타는 남미 여행지 중에 꽤 큰 대도시에 속했기에 한낮의 보고타는 활기차고 바쁘게 움직였다. 도시는 어디든 특유의 북적거리고 정신없는 분위기가 있다. 게다가 직장인의 점심시간이 겹쳐버리는 바람에 길에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모두가 방금 전에 회사에서 일을 하다 나온 사람 같지 않게 표정이 밝고 생기가 넘쳤다. 빨간 트롤리버스도 신나게 움직인다. 보고타는 특이하게도 세계의 대도시중에 유일하게 지하철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교통체증도 막심하다고 하는데 나처럼 며칠 관광하는 사람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엄청 불편한 일인 것 같다.
나는 이곳에 상주하는 직장인이나 대학생이 아니니 머리 아프게 해야 할 일이나 마쳐야 할 공부가 있는 것도 아니라 보고타에서 보낸 일주일이 무척이나 여유로웠다고 기억된다. 어쩌면 힘들게 올라야 할 산이 있는 것도 가는 길이 험한 폭포나 사막도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매일같이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카페에서 보낸 시간들이 그런 인상을 남겨주었다.
보고타에서는 무료로 오픈하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아 질리도록 들릴 수 있었다. 길을 걷다가 간판에 'museo'라고 쓰여 있으면 '어디 한 번 들러 볼까?'하고 곧장 들어가서 구경하는 식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콜롬비아 원두는 유명하지 않은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시간을 때우면 잠시나마 고단한 배낭 여행자의 신분을 잊을 수 있다.
보고타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볼리바르 광장은 이제껏 내가 봐왔던 광장 중에서 가장 컸다. 광장은 대성당, 의회, 대법원, 시청, 대통령궁과 같은 주요한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 중앙에는 시몬 볼리바르 동상이 하늘 높이 우뚝 세워져 있다. 그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으로 무장투쟁을 통하여 식민지였던 파나마, 에콰도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페루, 볼리비아를 스페인으로 독립시킨 대단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볼리바르 광장은 콜롬비아뿐만 아니라 페루, 볼리비아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물론 보고타만큼 크지는 않지만.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고풍스러운 멋진 건물이나 동상보다는 사람 수를 훨씬 웃돌아 보이는 비둘기의 개체수였다. 비둘기에 시선이 뺏겨 동상이 있는 건 한참 뒤에 알게 될 정도였다. 같은 방을 쓰는 한국인 언니는 느릿느릿 걸어가던 뚱뚱한 비둘기가 다가오는 택시를 전혀 피하지 않고 걸어가는 걸 보곤 '어라 위험하겠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비둘기가 택시 바퀴에 말려들어가는 끔찍한 장면을 봤다고 했다. 말로만 전해 들어도 눈이 질끈 감긴다.
광장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사랑스러운 보테로 미술관이 나온다. 페르난도 보테로는 남미를 대표하는 미술가로 그의 작품은 모든 게 뚱뚱하다. 여자, 남자, 동물 심지어 꽃과 과일까지도. 보테로는 자신은 뚱뚱하게 그리는 게 아니라 확장해서 그릴 뿐이라고 했다. 어떤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그의 작품관 덕에 이곳에서는 무척 흥미롭고 재밌는 그림과 조각을 잔뜩 구경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 뚱뚱한 모나리자 옆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확인해 보니 나도 모나리자처럼 푸둥푸둥 살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이건 호스텔에서 아침식사로 나오는 빵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이다. 그것도 버터를 잔뜩 발라서.
보테로 미술관 중앙은 분수와 정원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그 덕에 다음으로 이어진 건물로 가기 전에 따스한 햇살을 쬐며 리프레쉬할 수 있다. 멋진 작품들을 감상하여 기분이 한층 들떠있었고 유독 하늘이 푸르르고 구름이 포근하여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유유자적함을 한껏 느끼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상기된 표정의 콜롬비아 학생들이 마치 미지의 생명체라도 발견한 것처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국사람이세요?"
다른 학생들보다 한 발자국 앞서 있는 밝고 건강한 미소의 여학생이 유창한 한국말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네. 안녕하세요. 한국말을 잘하시네요?"
한국말을 이렇게 잘하는 남미 사람은 처음 봐 나 역시 무척 신기했다.
"네 공부하고 있어요. 같이 사진 찍어도 되나요?"
뒤에 있는 네다섯 명 정도의 학생들이 기대에 찬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 네, 뭐. 좋아요."
학생들은 입을 모아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나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실 남미에서 사진 요청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로라이마 산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첫날 10대로 보이는 소녀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키가 크고 굉장히 수줍은 표정을 하는 소년을 가리키며 친구가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데 같이 찍어줄 수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꽤 당황스러운 요청이었지만 요구에 응해주었다.
남미에서는 어떤 이유인지 한국인과 같이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저기, 저와 사진을 찍고 싶은 이유가 뭐죠?'라고 물어볼 만도 했지만 왠지 민망하여 물어보지 않았다. 한류 열풍이 남미까지 간 건가? 싶지만 그런 것과 나는 별로 상관없지 않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상대 쪽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하지만 잔뜩 기대한다는 듯한 눈빛으로) 부탁하면 거절하기가 힘들다. 이후에도 그런 부탁이 많았고 모두 응해준 탓에 지금도 내 사진은 남미 곳곳에 떠돌고 있을 거라 예상된다. 혹은 며칠 안 가 '이런 사람이랑 왜 찍은 거야' 하고 지웠을 수도 있지만.
신이 난 학생들과 한창 사진을 찍는데 익숙한 사람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엔젤폭포로 가는 길에 만난 일본인 할아버지 이지마상이었다. 이지마상은 우리와 달리 단체로 팀을 짜서 움직이지 않고 개인적으로 투어를 신청하여 일본어를 잘하는 가이드와 단 둘이 움직였다. 스페인어도 영어도 서툰 이지마상은 사쿠를 보며 상당히 반가워하며 아주 길게 대화를 나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자유롭게 남미를 여행할 수 있는 건 재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정도의 재력이 없으니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이지마상도 나를 기억하는지 활짝 웃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그는 일본 특유의 힐링 영화에 나오는 인물과 같은 인상이다. 이야기도 제대로 나누지 않은 잠깐 스친 인연일 뿐인데 또 다른 나라에서 이렇게 우연히 만나니 정말 반가웠다. 어느 숙소에서 지내냐는 질문에 그는 근처 호텔에 투숙 중이라고 했다. 역시 도미토리를 전전하는 나와는 다르다.
페이스북으로 사쿠와 연락이 닿았다.
사쿠는 아직 알롱과 함께 있었고 알고 보니 내가 머무는 호스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투숙하고 있었다. 우리는 3시에 황금박물관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같은 방을 쓰는 선영언니와 함께 겨울 점퍼를 사러 쇼핑몰에 갔다. 존의 어머니께서 싸고 괜찮은 옷이 많다고 추천해주신 곳이다. 내가 가진 옷은 얇은 옷뿐이라 늘 버스 안에서 추위에 떨었기에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겉옷을 장만하고자 마음먹었다. 쇼핑몰을 빙빙 돌다 벽에 걸려있는 가죽점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안쪽에 인조털이 달린 짙은 회색빛의 인조가죽점퍼였는데 가격은 오만 원으로 배낭여행자에게는 꽤나 사치스러웠다. 조금 망설여졌지만 사장님이 하나밖에 안 남았다고 했고, 언니가 나와 정말 잘 어울린다고 해서 충동적으로 구매했다(그래도 여행 내내 잘 입고 다녔으니..).
쇼핑을 마친 후 언니는 장을 보러 갔고 나는 약속시간보다 이십 분 일찍 도착해버려 박물관 입구 계단에 쭈그러 앉았다. 기다리는 동안 문득 친구들과의 재회가 어색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여기서는 어떤 목적지까지 함께 도달해야 하는 미션이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정말 '보통 친구'처럼 만나는 건 처음이니까(이렇게 쓰고 보니 표현이 이상하다).
이런 잡생각으로 멍하니 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저 멀리서 알롱이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고 말았는데 그는 엄청 시크한 표정으로 앉아라는 듯 손을 휘휘 위아래로 움직이며 자연스럽게 내 옆에 나란히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콜롬비아 친구와의 약속으로 인해 뒤늦게 합류하는 사쿠가 멀리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알롱과 나도 손을 흔들며 그를 반겨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먼저 황금박물관을 구경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황금박물관 역시 보고타를 대표하는 관광지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재회장소 이상의 감흥을 주지는 못하였다. 눈앞에 번쩍이는 무수히 많은 황금과 세밀한 세공이 신기하긴 했지만 가질 수도 없는 차가운 황금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우리는 박물관을 나와 어디로 들어갈지 정하고 있는데 오후 내내 우중충했던 하늘에서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수수 내리는 비에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몸이 으슬으슬 추워졌다. 당황한 우리는 일단 걷다 보면 카페가 나오겠지라고 생각하며 일단 길을 나섰다. 하지만 거리마다 잘 보이던 카페들이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보이질 않았다. 여기는 커피의 나라가 아니었나?
빗줄기가 점점 더 거세게 몰아쳐 지쳐갈 때 우리 눈앞에 노란 불빛이 켜져 있는 자그마한 카페가 나타났다. 카페는 테이블이 서너 개 정도의 작은 크기였고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마치 우리만 기다렸다는 듯 따스하고 소박한 카페였다. 작은 라테를 시켰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단돈 800원밖에 하지 않는다.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아서야 여유롭게 서로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었다. 베네수엘라에서 헤어졌을 때는 어쩌면 그들을 마지막으로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는데 이렇게 얼마 안가 만날 줄이야. 반가워서 마음이 방방 뜨기보다는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편안하여 오히려 더 좋았다. 살아가면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관계는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머리 위에 말풍선으로 '아~ 정말 즐겁다'라는 생각이 둥둥 떠다녔다. 서로 모국어가 달라 영어로 대화하지만 그러한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물 흐르듯 대화가 흘러갔다. 영어를 유창히 잘하는 두 사람이 나를 무척이나 배려해준 덕이다. 우리는 각자 나라의 독특한 문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사쿠는 일본 사람이 왜 이렇게 스미마셍을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알롱은 한국에서 '밥 먹었니?'가 인사인 게 신기하다고 했다), 남자와 여자 간의 생각 차이, 마침 티브이에서 방영하는 스페인어 더빙판 시크릿 가든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배낭여행을 온 것을 잊을 정도로 일상적이고 따뜻한 이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며칠간 보고타에 머무르며 쉬는 동안 내 마음이 조금 약해졌나 보다.
그렇게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어느새 하늘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여전히 많은 비가 내린 탓에 우리는 호스텔이 모여있는 거리까지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우산을 쉽게 살 수 있는 대도시임에도 아무도 우산을 사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우리 셋 모두 비를 맞으며 고생하는 여행에 익숙해졌나 보다. 사쿠와 알롱의 숙소는 내가 머무는 호스텔 보다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먼저 그들을 보내야 했다.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는 비 아래에서 우리는 흠뻑 젖은 얼굴로 포옹을 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악수만 나눴던 사쿠와도 포옹을 하는데 거의 눈물이 흐를 뻔한 찡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오랫동안 이들을 만나기 힘들걸 알았는지도 모른다. 여행에서 이런 순간이 올 줄은 미처 알지 못했기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밤늦도록 비는 그치지 않았다.
사쿠와 알롱이 각자 이별 선물을 챙겨줬다ㅎㅎ